첫눈이 내리던 날, 당신에게
첫눈이 내리던 날, 당신에게
사랑하는 당신에게.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리던 오후에
나는 문득 당신에게 줄 말을 오래도록 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눈발이 천천히 내려앉는 것을 보고 있으니,
당신을 향해 품고 있던 감정도 그렇게 조용히 내려앉아
마침내 형태를 갖추는 듯했습니다.
당신은 말했죠.
"겨울은 마음이 가장 솔직해지는 계절 같아."
그 말이 첫눈처럼 내게 내려와
그날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았어요.
나는 오늘 그 솔직함을 꺼내어
당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눈 사이로 걸어가던 당신
기억나요?
작년 겨울 여행에서
우리가 눈을 맞으며 걸어가던 그 골목을.
당신의 코끝이 빨개지고,
목도리 안쪽으로 고요한 숨결이 흘러나왔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잠겼어요.
추위를 참고 버텨야 했던 순간조차
당신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따뜻함으로 변해버렸다는 걸.
걷는 동안 당신은 내 이름을
아주 조용히 불렀어요.
그 음성이 눈발에 섞여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온도로 들려왔습니다.
당신은 기억 못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그 작은 호흡 하나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따뜻함은 언제나 당신으로부터
겨울은 차갑고, 공기는 건조하고,
새벽은 길지만
나는 그 계절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과 걷는 겨울은
추위가 아니라 온기를 배우는 여행이었고,
당신의 목소리는
바람결을 녹이는 난로 같았고,
당신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숨을 들이쉴 수 있었어요.
사람들은 겨울이 스산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계절이
가장 따뜻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겨울이 되면 내 옆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알려준 '조용한 약속'
우리가 머물던 작은 펜션 창가에서
눈이 내리던 밤을 기억하나요?
밖은 조용했고,
세상은 하얗게 덮여 있었고,
우리 사이에는 말보다 긴 침묵이 흘렀죠.
그 침묵이 나는 참 좋았어요.
그것이 약속처럼 느껴졌거든요.
당신이 내 손을 가만히 잡았던 그 순간,
나는 어떤 말도 필요 없다는 걸 알았어요.
무언가를 맹세하거나,
끝을 다짐하거나,
영원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당신과 함께 있으면
기대는 약속이 되고
침묵은 사랑이 되고
눈은 두 사람의 고백이 되니까.
사랑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도 자라는 것이죠.
겨울의 끝에서 남기는 이 말
당신은 가끔 말하죠.
"나는 큰 말을 잘 못해. 서툴러."
하지만 나는 알아요.
당신의 작은 행동 하나,
낮은 목소리 하나,
맡겨지는 체온 하나가
어떤 화려한 말보다 더 깊은 진심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당신의 속도대로,
당신의 계절대로,
당신의 방식대로.
눈은 천천히 쌓이지만
한 번 쌓이면 쉽게 녹지 않잖아요.
우리도 그럴 거예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는 올겨울 내내
당신의 이름을 품어 안았습니다.
하얀 들판 위에 발자국이 하나씩 찍히듯
당신을 향한 마음도 그렇게
조용히 모양을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당신.
당신이 걸어온 모든 계절들 중
겨울은 당신을 가장 닮은 계절이라고 생각해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조용하지만 마음은 깊고,
눈처럼 단단하지만 누구보다 부드럽고.
나는 당신과 걷는 이 계절을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눈이 내린다면
그건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신호일 것이고,
바람이 차다면
그만큼 당신이 보고 싶다는 뜻일 것이고,
따뜻한 온기가 스며온다면
그건 당신이 내 곁에 있다는 증거일 거예요.
당신이 가르쳐준 그 조용한 약속을
나는 오래도록 지킬 겁니다.
늘 겨울의 숨결처럼
조용히, 깊게, 당신을 사랑하는
— 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