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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숨(3)

가을에 당신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by seungbum lee

가을에 당신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가을이 오면,

나는 이상하게도 당신을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름의 뜨거움도, 봄의 설렘도 아니라

낙엽이 천천히 떨어지는 이 계절이 되어서야

비로소 당신의 마음 깊은 곳이 보이는 듯해요.

그날 기억하나요?

우리가 함께 떠났던 가을 여행.

작은 산책로를 따라

불그스름한 단풍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날.




우리는 손을 잡지도 않았고,

크게 웃지도 않았지만,

그 어떤 날보다 서로에게 가까웠습니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죠.

불필요한 말들은 모두 떨어지고,

진짜 마음만 남게 만드는 계절.

당신은 산책길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떨어진 단풍잎을 하나 집어 들고 말했죠.

"참 신기해.

이렇게 아름다운데…

떨어지는 게 슬프지 않다니."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어요.

그 순간,

단풍잎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건

바로 당신의 옆모습이라는 것을

차마 말할 수 없었거든요.

가을 햇빛은

당신의 머리칼 위에서 금빛으로 퍼졌고,




당신의 눈동자 속엔
아득한 그리움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어요.
당신은…
아름답고 슬픈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세상의 작은 흔들림에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구나.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조금 더 당신에게 빠져들었습니다.
우리가 걸어 내려오던 돌길에서
바람이 한 번 크게 불어왔을 때,
당신은 코트를 당겨 여미며 말했죠.
"가을바람은
사람 마음을 괜히 솔직하게 만들지 않아?"
그 말이 내 마음을 깊게 찔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날 나는
온전히 고백할 수 없는 마음을
반쯤 꺼내어 바람에게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 솔직하게 만들지.
너와 걸을 때라면 더더욱."
당신은 잠깐 나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웃었죠.
그 웃음은 바람보다 더 따뜻했고,
낙엽보다 더 가볍게 마음 위에 내려앉았어요.
우리는 강가에 앉아

위를 떠다니는 은행잎을 바라보았습니다.
잔잔한 물살에 밀려가던 잎처럼
우리의 마음도 조용히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죠.
당신은 나지막하게 말했어요.
"가을은…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계절 같아."
나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미 알아.
내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그 말의 끝은
당신에게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가을바람이 몽땅 가져가 버렸을 테니까요.
가을이 깊어질수록
나는 당신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
당신의 침묵,
당신의 눈빛,
당신이 걷는 속도,
멈추는 순간들까지.
아마도 사랑이란
그 사람이 가진 계절을
천천히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가진 가을은
참 고요하고,
참 섬세하고,
참 아름다워서—
나는 그 안에 오래 머물고 싶어요.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창밖에서는 낙엽이 느린 속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그 하나하나가
당신과의 기억을 담은 작은 조각 같아요.
사랑하는 당신.
이번 가을이 다 지고
겨울이 찾아와도
나는 당신과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단풍이 붉어지는 속도보다 더 천천히,
바람이 스치는 체온보다 더 따뜻하게,
당신을 고백할 계절을 향해
나는 조금씩 다가가고 있어요.


언젠가 당신이
가을을 떠올릴 때,
그 잎 사이로 스치는 작은 고백이
내 이름이기를 바랍니다.


늘 가만히,
그러나 누구보다 깊게 당신을 바라보는
—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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