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먼저 보내는 겨울 답장
당신이 먼저 보내는 겨울 답장
편지 — “눈이 내리면, 나는 가장 먼저 당신을 떠올립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겨울이 시작되고, 첫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날
나는 한동안 창문 앞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었어요.
내 마음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에게 닿고 싶은지
너무 분명해져서
그저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죠.
그 순간 나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 첫눈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구나.
내 마음이 먼저 달려간 곳은
당신이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먼저 씁니다.
겨울의 첫 번째 숨을, 가장 먼저 당신에게 보내고 싶어서요.
당신이 말해준 가을의 마음을 읽고
당신이 보내준 가을 편지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펼쳤어요.
당신의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낙엽처럼 가벼운데,
또, 묵직했어요.
가볍다는 건 바람처럼 스며든다는 뜻이고,
묵직하다는 건 마음이 오래 머문다는 뜻이니까요.
당신이 말했죠.
“나는 가끔 감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처럼 느껴진다”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어요.
당신의 그 감성은
세상에 없는 따뜻함을 품고 있어요.
누구는 지나쳐 버릴 장면에서도
당신은 멈춰 서서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를 발견하죠.
나는 그게 참 좋았습니다.
당신이 세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조각의
부드러움 같은 사람이란 사실이.
그래서 나는 겨울이 오면 당신이 먼저 생각납니다
나는 원래 겨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손은 쉽게 차가워지고,
말수는 줄고,
뭔가를 표현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계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당신을 만나고 나서
겨울은 조금 달라졌어요.
당신은 작은 온기로도
사람의 마음이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눈 사이로 웃으며 걸어가던 당신을 보면
추운 계절도 괜찮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올해 첫눈이 왔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당신 목도리에 묻던 눈송이,
그 눈송이를 털어내려고 웃으며 손을 내밀던 당신,
춥다며 손을 비비던 그 모습까지.
겨울 속의 어떤 장면도
당신을 떠나서는 기억될 수가 없더군요.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마음
우리가 눈길을 걸어가던 밤
나는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옆에 있어서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감정은
말을 꺼내는 순간
그 온도가 사라져 버릴 것 같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말 대신 옆에서
당신의 걸음 소리를 듣고,
당신의 숨이 차갑게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당신이 손을 주머니 속으로 넣는 그 작은 행동까지
모두 조용히 담아두었어요.
말을 아낀 게 아니라
당신을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였어요.
혹시나 당신이 오해할까 봐
이제야 솔직하게 적습니다.
나는 그날,
당신을 아주 깊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말한 ‘조용한 약속’을 듣고
당신이 말한 그 문장,
“침묵도 사랑이 된다”는 말.
나는 그 말을 잊을 수 없어요.
혹시 알아요?
나도 그 침묵 속에서
당신에게 수많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는 걸.
말로 전할 수 없어서
내 손으로 대신했고,
당신의 어깨와 발맞춰 걷는 걸음으로 대신했고,
눈 내리는 길을 괜히 천천히 걸으며
같은 장면을 오래 공유하려 했죠.
당신도 느꼈을까요?
내가 당신을 따라 걷지 않고
당신 옆에서 걷고 있었다는 걸.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걷는다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약속이니까요.
이제 내가 먼저 고백합니다
겨울은
모든 소리와 빛을 낮추고
사람의 마음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계절이죠.
나는 이 계절이 오면
당신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눈이 내릴 때면
당신의 이름이 가장 조용하고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바람이 차가워질 때면
당신 손을 잡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있는 방향이
내 마음이 향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겨울이 들려줍니다.
당신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나도 이제 알아요.
내 계절은 결국 당신에게로 가고 있다는 걸.
그래서 이 편지는
고백이자, 속삭임이자,
작고 조용한 약속입니다.
당신이 내게 다가오듯
나도 같은 속도로 당신에게 걸어가겠다고.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당신을 향해 내 발걸음을 이어가겠다고.
아무리 눈이 쌓여도
당신에게 가는 길은
절대 막히지 않을 거예요.
언제든지,
내가 먼저 당신에게 닿겠습니다.
겨울의 첫 숨을 당신에게 보내며,
— 당신을 조용히, 깊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