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학기가 진행되면서 박 교수와 준혁의 관계는 묘하게 발전했다. 준혁은 매 수업마다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고, 박 교수는 그에 답하면서도 학생의 오만함이 걱정되었다.
"교수님, 공자의 시대와 지금은 다릅니다. 당시에는 책이 귀했으니 배우는 것 자체가 중요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지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는 사색 능력이죠."
"이 학생, 당신은 위험한 길을 가고 있어요."
박 교수는 수업이 끝난 후 준혁을 연구실로 불렀다.
"준혁 학생, 당신은 똑똑합니다. 하지만 겸손하지 못해요. 배움을 경시하는 태도는 결국 당신을 위태롭게 만들 겁니다."
"교수님, 저는 이미 실패를 겪었습니다. 맹목적으로 배우기만 하는 것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죠. 이제는 제 생각을 믿고 싶습니다."
"경험이 당신을 현명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군요. 하지만 그 경험 또한 배움의 한 형태입니다. 당신이 실패에서 배운 교훈, 그것도 학습이에요. 문제는 당신이 그 하나의 교훈을 절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준혁은 입을 다물었다.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당신에게 과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한 달간 매주 논어의 한 구절을 선택해서, 그것에 대한 당신의 해석을 쓰세요. 단, 어떤 해설서나 참고자료도 보지 말고, 오직 원문과 당신의 생각만으로요."
"그건 제가 원하던 바입니다."
"그리고 한 달 후, 당신의 해석과 역대 학자들의 해석을 비교해봅시다. 그때 우리 다시 이야기합시다."
준혁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주, 준혁은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를 선택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었다. 준혁은 이렇게 해석했다.
"현대 사회에서 이 구절은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두 번째 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선택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이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반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과거의 사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통찰을 얻으라는 것이다. 마치 스타트업이 기존 산업의 문제점을 찾아 혁신하듯이."
세 번째 주,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를 선택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겸손하게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네 번째 주, 박 교수는 특정 구절을 지정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준혁은 이번에는 신중하게 접근했다. 이 구절은 그와 박 교수 사이의 논쟁의 핵심이었다.
"공자는 균형을 말했다. 하지만 각 시대마다, 각 개인마다 필요한 균형점은 다르다. 정보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사(思)'의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 배움에 70%, 사색에 30%를 할애하는 것보다, 배움에 30%, 사색에 70%를 할애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