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와 예술이 숨 쉬는 도시
빛고을로 떠나는 여정
"광주 가본 적 있어?"
3월의 어느 주말, 민수가 물었다. 봄이 오는 계절이었다.
"광주? 5·18 그 광주?"
준우가 먼저 대답했다.
"맞아. 근데 광주는 5·18만 있는 게 아니야. 골목길들이 많대. 양림동, 대인시장, 충장로..."
서연이가 관심을 보였다.
"양림동? 거기 예술마을 아니야?"
"응. 옛날 선교사들이 살던 동네인데, 지금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래."
지혜가 검색을 시작했다.
"광주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1920-30년대 선교사 주택들과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있는 곳."
"그리고 대인시장도 가보자. 예술시장이래."
"예술시장?"
"시장에 예술가들이 입주해서 작업하는 곳. 독특하대."
"재미있겠다. 가자!"
다음 주 토요일 아침, 네 식구는 KTX를 탔다.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의 가파른 언덕길
"광주송정역까지 두 시간 반."
"가깝네. 생각보다."
기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경부선, 호남선을 거쳐.
"전라도다!"
창밖으로 평야가 펼쳐졌다.
"호남평야 넓다."
광주송정역에 도착했다.
"도착!"
역에서 나오니 따뜻했다.
"서울보다 훨씬 따뜻해."
"남쪽이니까."
택시를 타고 양림동으로 향했다.
"양림동부터 볼까?"
"좋아."
양림동, 시간이 멈춘 언덕 마을
양림동에 도착했다.
"여기부터가 양림동이네."
분위기가 확 달랐다. 조용하고 한적한 언덕 마을.
"서울의 성북동 같아."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갔다. 양쪽으로 오래된 집들.
"집들이 독특해."
한옥도 있고, 서양식 건물도 있고, 일본식 가옥도 있었다.
"여러 시대가 섞여있네."
첫 번째 목적지는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었다.
"1920년대 미국 선교사 집."
하얀 2층 양옥이었다. 깔끔하고 단아했다.
"100년 됐다는 게 안 믿겨."
안으로 들어가니 당시 가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타임캡슐 같아."
안내판을 읽었다.
"우일선(尤日鮮, 1897-1983). 미국 선교사. 1913년 광주에 와서 1968년까지 55년간 의료 선교 활동."
"평생을 광주에서..."
사택을 나와 골목을 더 올라갔다.
"호랑가시나무 집?"
독특한 이름의 카페였다.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곳.
"들어가보자."
안으로 들어가니 고즈넉한 한옥 마당이 있었다.
"예쁘다."
"커피 네 잔이요."
주인은 30대 남자였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5년 됐어요."
"왜 양림동에?"
"분위기가 좋아서요. 조용하고, 옛날 건물들도 많고."
"양림동은 언제부터 예술마을이 됐어요?"
"2000년대 후반부터요. 예술가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커피를 마시며 마당을 봤다.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저게 호랑가시나무구나."
"네. 이 집 상징이에요."
카페를 나와 언덕을 더 올라갔다.
정상쯤에 전망대가 있었다.
"우와!"
광주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광주 크다."
"저기 무등산도 보여."
한참을 전망을 감상하고 내려왔다.
골목을 걸으며 벽화들을 봤다.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펭귄마을?"
양림동의 별명이 펭귄마을이라고 했다. 언덕이 가파라서.
"정말 가파르긴 해."
대인시장, 예술이 꽃핀 재래시장
양림동을 나와 대인시장으로 향했다.
"택시 타자. 좀 멀어."
20분쯤 가니 시장이 나타났다.
"대인시장."
큰 재래시장이었다. 오래된 아케이드 건물.
"1950년대 시장이래."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 많다."
야채, 과일, 생선, 옷... 온갖 물건을 파는 가게들.
"전형적인 재래시장이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달랐다.
가게들 사이사이에 갤러리와 작업실이 있었다.
"저기 갤러리다."
'대인예술시장'이라는 간판.
들어가니 작은 전시 공간이었다. 현대미술 작품들.
"시장 안에 갤러리?"
"독특하다."
안내판을 읽었다.
"대인예술시장. 2008년 쇠퇴하던 대인시장에 예술가들이 입주하며 시작. 현재 30여 개 예술 공간 운영."
시장을 걸으며 예술 공간들을 하나씩 봤다.
화가 작업실, 도예 공방, 수공예 가게, 독립서점.
"재래시장과 예술이 공존하네."
한 작업실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작업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구경하세요."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3년 됐어요."
"왜 대인시장에?"
"임대료가 싸고, 분위기도 좋아서요. 그리고 시장 사람들이 친절해요."
"시장 상인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술가들 들어오는 거."
"처음엔 경계하셨죠. '애들이 뭐 한다고' 이런 느낌. 근데 지금은 잘 지내요. 서로 도와주고."
"어떻게요?"
"우리가 전시하면 상인분들이 와주시고, 상인분들 일 있으면 우리가 도와드리고."
작업실을 나와 시장을 더 걸었다.
한 골목에 독특한 공간이 있었다.
"방림창고?"
옛 창고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들어가보자."
안은 넓은 홀이었다.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는 공간.
"멋있다."
벽에 대인시장 역사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장이 많이 변했네."
점심시간이 되어 시장 안 식당에서 먹었다.
"떡갈비 먹자. 광주 음식."
'할매 떡갈비' 식당.
"떡갈비 네 개요."
"네."
주인은 60대 할머니였다.
떡갈비가 나왔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
"맛있겠다!"
한 입 먹었다.
"완전 맛있어!"
"부드러워."
식사를 하며 할머니께 여쭤봤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40년 했지."
"대인시장이 예술시장 되는 거 보셨겠네요."
"그렇지. 2008년부터. 젊은 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어떠세요?"
"좋지. 시장이 살아났어. 예전엔 손님도 없고 죽어가던 시장이었는데."
"예술가들 덕분이네요."
"맞아. 고마워. 우리도 살고, 애들도 살고."
민주와 예술의 도시
오후에는 충장로를 걸었다.
"광주 명동이래. 중심가."
넓은 거리였다. 상점들이 빼곡했다.
"사람 많다."
충장로를 걷다가 5·18 민주광장을 발견했다.
"여기구나."
넓은 광장이었다. 가운데 분수.
"1980년 5월, 여기서..."
모두 숙연해졌다.
광장 한쪽에 기념비가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읽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준우가 조용히 물었다.
"5·18이 뭐야?"
민수가 설명했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거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어."
"왜?"
"군부 독재에 저항했기 때문에."
"슬프다."
"응. 하지만 그 희생 덕분에 우리가 지금 민주주의를 누리는 거야."
잠시 묵념하고 광장을 떠났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가보자."
10분쯤 걸으니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우와... 크다!"
현대적인 건축물이었다. 독특한 디자인.
"5·18 민주화운동 기념으로 세운 문화공간이래."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 공연, 도서관 등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
"멋있다."
옥상 정원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보는 광주!"
광주 시내가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아름답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석양 보고 가자."
광장으로 내려와 석양을 봤다.
주황빛 하늘, 실루엣이 된 건물들.
"광주... 특별한 도시다."
"응. 슬픈 역사도 있고, 예술도 있고."
집으로 돌아가는 KTX 안에서 모두 조용했다.
"피곤해?"
"아니. 그냥... 생각이 많아."
"무슨 생각?"
"광주. 5·18. 민주주의. 예술."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광주 골목길, 민주와 예술이 숨 쉬는 도시'.
"광주는 복잡한 도시다. 슬픈 역사와 아름다운 예술이 공존한다."
"양림동은 선교사들이 만든 언덕 마을이다. 1920년대 서양 건축물들이 남아있고, 지금은 예술가들이 산다."
"대인시장은 재래시장에서 예술시장으로 변신했다. 2008년 예술가들이 입주하며 죽어가던 시장이 살아났다."
"40년 떡갈비 할머니가 말했다. '젊은 애들이 들어와서 시장이 살아났어.' 3년 차 도예가가 말했다. '시장 사람들이 친절해요.'"
"이것이 광주의 힘이다. 예술로 재생하는 것."
"하지만 광주의 본질은 따로 있다. 5·18 민주광장. 1980년 5월,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
"광주는 그 희생을 기억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민주광장으로, 거리 곳곳의 기념비로."
"슬픔과 아름다움. 역사와 예술. 기억과 창조. 이 모든 것이 광주다."
글을 다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댓글들이 달렸다.
"광주 꼭 가보고 싶어요."
"5·18을 잊지 말아야겠네요."
"대인예술시장 독특하네요."
한 달 후, 광주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광주 골목길 문화지도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실 수 있나요?"
민수는 수락했다.
6개월 동안 광주를 여러 번 방문했다.
양림동, 대인시장뿐 아니라 동명동, 계림동, 사직동까지.
광주의 모든 골목을 걸었다.
그리고 『광주 골목길 문화지도』가 완성됐다.
역사, 예술, 민주, 음식. 네 가지 테마로 나눈 지도.
출판 기념회가 5·18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의미 있는 장소에서 의미 있는 책을 낼 수 있어 영광입니다."
광주 시민들이 참석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광주를 이렇게 아름답게 기록해주셔서."
광주는 계속 변한다. 천천히, 의미 있게.
슬픈 역사를 기억하면서,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가며.
민주와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로.
민수 가족의 아카이빙도 2년을 넘어 3년차로 접어든다.
"정말 많이 다녔네."
"응. 서울부터 부산, 순천, 광주까지."
"내년엔 뭘 할까?"
"더 깊이. 그리고 연결하기. 각 도시의 이야기들을."
광주의 밤은 밝다.
5·18 민주광장의 불빛, 충장로의 네온사인, 대인시장의 따뜻한 조명.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사람들은 산다.
기억하며, 창조하며, 희망하며.
기록자들은 계속 기록한다.
빛의 도시를, 민주의 도시를, 예술의 도시를.
광주처럼. 슬프지만 아름답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