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소 앞에 멈춰선 이유
급식소 안에서 한겨울의 칼바람을 피해
길고양이 한 마리가 밖을 내다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다.
자동차 불빛을 받아 검은 고양이의 털은
턱시도처럼 또렷해 보였다.
혹시 놀라 달아날까 싶어 나는 차를 급식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웠다. 차에서 내릴 때도,
문을 닫을 때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다
조금이라도 더 몸을 녹일 시간을
고양이에게 남겨주고 싶었다.
골목 건너편 가로등의 푸르스름한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고양이는 불빛보다 소리에 더 민감했다.
차문이 닫히는 소리에 놀라 급식소 밖으로 뛰쳐나와
아래쪽 포도밭 너머로 금세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런 작은 배려를 종종 다르게 받아들인다.
고양이가 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이웃이 묻는다. “왜 그러고 있어요?”
“고양이가 급식소 안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만 기다려주려고요.”
“어이구, 털 가진 짐승이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그 말 앞에서 나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들이 어떤 겨울을 건너왔는지, 어떤 여름을 견뎌왔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는 더위를
털 가진 짐승은 어떻게 견뎌낼지에 대한 질문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동물에 관한 문제는
서로 다른 관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마찰은 쉽게 생긴다.
시골로 이사 온 뒤, 나는 대문 바깥과 뒷곁에
길고양이 급식소 두 곳을 마련했다.
서열이 다른 고양이들이
부딪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잠시라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 선택은 고양이를 향한
나의 작은 배려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