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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하자마자 '사무관뽕'이 빠지다

사무관의 추억 - 1

by 사무관과 변호사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다. 연휴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녔는데, 요즘은 아내와 산책을 나갈 때면 평창올림픽 후리스를 꺼내 입는다. 그 때마다 평창올림픽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서 오늘은 변호사로서의 기록은 잠시 미뤄두고, 사무관 시절 겪었던 일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사무관으로 처음 일했던 조직은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이하 '평창올림픽조직위')였다. 기간은 총 9개월, 2017년 9월부터 2018년 3월까지였다.


그 시기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막 연수를 마친 수습사무관이었다. 예년이라면 지방연수를 위해 전국의 광역자치단체로 흩어졌을 시기였다. 하지만 2017년은 달랐다. 평창올림픽을 몇 달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같은 대규모 국가행사는 대부분 임시조직인 'OOO 조직위원회'가 맡는다. 각 부처와 지자체에서 공무원들을 파견받고, 부족한 분야는 민간에서 채용한다. 평창올림픽조직위 역시 그렇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올림픽조직위는 보통 올림픽이 개최되기 한참 전부터 구성되어 운영된다. 이 기간에는 할 일이 많이 없지만, 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일이 많아지고, 올림픽이 개최되는 지역으로 사무실을 옮기게 된다. 평창올림픽조직위 역시 마찬가지여서, 원래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올림픽 개최 직전 일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무실도 서울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직원들이 이탈했다. 인력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예산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어서, 떠나는 직원들을 잡을만한 조건을 제시할 수도 없었고, 신규인력을 채용할 수도 없었다. 당시 새로 들어선 정부가 어떻게든 평창올림픽을 흑자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수습사무관들 지방연수 가봐야 어차피 놀자판인데, 평창올림픽조직위에 데려다가 일을 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공무원이니 평창을 보낸다고 해서 그만둘 리는 없다. 더군다나 수습사무관 인건비는 인사혁신처 예산으로 처리된다. 이 좋은 아이디어는 바로 채택돼서 나를 비롯한 국가직 사무관 전원이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 수습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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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근무지. 당시 초보운전이었던 내가 미련하게 야외에 주차한 탓에 차의 배터리가 나가버렸다)




한편, 연수가 끝나갈 때쯤의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사무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막연히 사무관은 정책을 만드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연수가 끝난 후 부처배치가 되면, '어딘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무언가 중요하면서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고시 합격자라고 떠받들어주니 나도 모르게 '사무관뽕'에 취해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 겪은 일들은 내 예상과는 꽤 달랐다.


평창올림픽조직위는 기본적으로 임시조직이다. 올림픽만 끝나고 나면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은 원래 소속되어 있는 기관에 복귀하거나(공무원),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다(민간 출신). 거기에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을 대책 없이 던져놓는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다.


아무리 공무원 조직에 인사관리라는 개념이 없다지만, 그래도 초임 사무관을 내던지듯이 마구 굴리는 경우는 잘 없다. 보통은 똑같이 행정고시 출신인 선배 사무관들의 업무를 도와서 인수인계가 되도록 인사배치한다. 인사부서에서 그런 배려를 하지 않더라도, 해당 부처의 선배 사무관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는 한다. 초임자가 부처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조직위 같은 임시조직은 그렇지 않다.


일단 공무원들의 입장부터 보자. 파견조직은 온갖 기관에서 파견을 온다. 중앙부처뿐 아니라 중앙부처에 소속된 지방청들, 전국 200여개가 넘는 지방자치단체들에서 온다. 이렇다보니 같은 기관 소속이라는 의식은 전혀 없고, 여기서 시간만 때우다가 원대복귀하자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수습사무관? 알 게 뭔가. 어차피 내가 소속기관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얼굴도 안 볼 사이인데 굳이 배려해줄 필요도, 인사관리를 고려할 필요도 없다. 사회생활 1년차인 수습사무관들은 어리버리하니까, 어떻게든 수습사무관들을 이용해먹자는 생각이 주류다.


민간 출신 직원은 더 하다. 같은 공무원 출신들은 그래도 '만에 하나'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민간 출신 직원들은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 퇴직하면 공무원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이 아예 없다. 아니, 애초에 사무관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수습직원1일 뿐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다른 기수와 달리 조금 독특한 시작을 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 일하던 기존 직원들이 처리하기 곤란한 일, 귀찮은 일, 징계받을 수도 있는 일,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모두 수습사무관들에게 떠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1년차들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인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어차피 몇 개월만 더 있으면 얼굴도 안 볼 사이인데, 그런 걸 뭣하러 고려하는가? 당장 나만 편하면 됐지.


다행히 그 당시 나는 어떤 부처에 배치될지 미리 정해져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부처에서 파견 온 사람들과 같이 일하게 되었고,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사람'임이 고려되었는지 어느정도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기피되는 곳에서 일했던 것은 다른 동기들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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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근무지는 야외에 있는 오버레이 텐트(쉽게 말해 가건물이다)였는데, 평창에 있는 산지에 있어서 기온이 매우 낮았다. 영하 20도 미만이면 라디에이터에 현재온도가 'Lo'로 표시된다는 걸 이 때 처음 알았다]




이런 분위기는 내 동기 중 한 명이 업무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진정됐다.


젊은 사람의 장례식에 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젊은 사람이 예상치 못하게 사망한 경우의 장례식은, 다른 장례식과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일반적인 장례식의 경우에도 분위기가 슬프기는 하지만, 상주도 잘 울지 않고, 조문객들도 고인과의 추억을 얘기하거나 상주를 위로하지, 슬퍼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러나 내 동기의 장례식은 분위기가 무거웠다. 상주는 통곡하고 있었고, 조문하러 온 내 동기들 중에도 엉엉 우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슬픈 분위기의 장례식은 가본 적이 없다.


한편, 평창올림픽조직위는 고인의 죽음과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연수를 갓 마친 젊은 사무관이 평창올림픽조직위에 배치된 후 주변에 과로와 업무스트레스를 호소해 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말이다. 참 공무원스러운 대처방식이었다.


이 때가 내 '사무관뽕'이 빠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 겪은 다른 여러 일들은 나에게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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