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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원래 이렇게 일하는 것인가

사무관의 추억 - 2

by 사무관과 변호사

저번 글에서 나는 평창올림픽조직위의 기존 직원들이 수습사무관들을 마구 굴리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내가 '공무원' 내지 '사무관'이라는 직업에 실망한 이유는 그 한 가지뿐이 아니었다.


나는 평창올림픽조직위의 일처리가 대부분 엉성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보았던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나를 포함한 수습사무관들을 파견받을 당시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수습사무관들의 숙소를 고려해놓은 상태가 아니었다. 당연하다. 애초에 수습사무관 파견 자체가 치밀한 계획 하에 결정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사무관들의 숙소로 처음 검토된 곳이 바로 횡계차고지 운전자숙소였다.


그런데 횡계차고지 운전자숙소는 이름만 '숙소'이지 실제로는 숙소로 쓸 수 없는 건물이었다. 시설이 매우 열악한 데다가 전기, 가스, 수도 모두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시설 수준은 군대의 옛날 침상형 생활관을 생각하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결국 지원을 나온 군인들이 횡계차고지 운전자숙소를 사용하게 되었다. 수습사무관들이 파견될 당시에는 전기, 가스, 수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군인들이 지원을 나왔을 당시에는 연결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는 지어놓았으니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너무 날림으로 지은 건물이라 사용 자체가 위험했다는 점이다. 결국 지원을 나왔던 군인 1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화면 캡처 2025-10-26 215333.png


원래 샤워장 유리는 잘 깨지지 않는다. 사람이 샤워장에서 미끄러지기 쉬운 점을 고려하여 강화유리로 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횡계차고지 운전자숙소는, 정말 황당하게도, 강화유리가 아니라 일반유리였다. 저번 글에서 말했듯이 예산절감을 최우선목표로 했던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 숙소 건설비를 아끼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숙소 건설비는 절감하더라도 안전 관련 비용은 아껴서는 안 된다. 샤워장에 일반유리를 설치할 바에는 아예 유리를 설치하는 편이 낫다. 담당 직원(높은 확률로 공무원)은 대체 왜 이런 상식적인 판단이 어려웠을까. 어차피 잠깐만 있다가 지나갈 파견조직이니 일을 대충 해도 돼서일 수도 있고, 횡계차고지 운전자숙소가 열악하더라도 담당 직원 본인이 묵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담당 직원이 아닌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가 없다.


이 사건은 나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담당자의 무신경한 일처리로 사람 한 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 자성하거나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어차피 올림픽은 이제 거의 끝났고, 한 두달 뒤면 원대복귀할텐데 무엇하러 거기에 신경을 쓰겠나. 내 동기가 사망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의 일처리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때부터 직업으로서의 공무원에 실망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건 파견자들로 이루어진 임시조직이어서 생기는 한계이고,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의 근무가 끝나 부처에 배치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행정고시를 공부하던 때부터 '중앙부처'라고 하면 항상 무언가 '큰 일'을 한다는 이미지, 일을 잘 한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도 실제의 중앙부처는 일반적인 공무원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렇게 2018년 4월, 나는 평창올림픽조직위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세종으로 향했다.



그러나 중앙부처에서의 삶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번에는 결이 다른 실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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