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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소통에 관하여 - 의뢰인의 입장

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9

by 사무관과 변호사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업무차 변호사를 만나본 적이 몇 번 있다. 그런데 내가 '선임'해본 적은 없다. 보통 기관에서 선임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 역할은 변호사에게 질의를 하거나(자문), 소송과정에서 변호사가 요구하는 자료를 정리해서 넘겨주는 정도(송무)였다.


그나마도 변호사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담당 주무관님들이 하거나, 기관 내 법무담당부서에서 했기 때문에 나는 변호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지는 않았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일을 맡겨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때의 경험과 지금의 시각을 함께 담아보려 한다. 오늘은 어떻게 해야 변호사를 잘 선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선임한 변호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써보겠다. 아무래도 변호사만 해본 사람보다는, 다른 직장을 다니다 변호사를 하게 된 나의 관점이 더 균형 잡혀있을 듯하다.




1. 변호사를 알아보기 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분명히 하자


본격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반드시 의뢰인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변호사를 선임할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법률자문을 맡길 때에는, 최소한 '우리는 현재 A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A 사업에 적용되는 B 법령의 해석에 대해 견해가 나뉘고 있다. 우리의 견해인 갑설은 ~~한 이유에 따라 B 법령을 C와 같이 해석하고 있고, 다른 견해인 을설은 ~~한 이유에 따라 B 법령을 D로 해석하고 있다. 귀 법무법인의 검토의견은 무엇인가?' 정도로는 정리하여 질의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에게 질의할 때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질의하는 게 보편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변호사 업무를 하다보니 위와 같은 형식을 갖춰 질의하는 의뢰인은 거의 없었다(오로지 법령을 다루는 행정기관만 위 형식으로 질의한다). 아니, 오히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을 궁금해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질의하고는 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이런 의뢰인들은 대개 '나의(상대방의) 어떠한 행동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데, 이 때 의뢰인의 의도는 실제로는 '손해배상을 할(받을) 수 있느냐'는 의미일 수도 있고, '형사처벌이 가능한가'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의뢰인이 어떤 결과를 우려하거나 기대하는지 모르면 방향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의뢰인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문제가 되지 않을까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걱정되는 것인지' 또는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것인지' 같은 질문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의뢰인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걸 깨닫고 말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2. 여러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한 후에 선임하자


사실 이건 기본적인 내용이라 쓸지말지 고민했지만, 지인을 통해 추천받은 변호사를 바로 선임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어 노파심에 작성하는 내용이다. 변호사 선임비용은 아무리 낮아도 수백만 원이다. 따라서 여러 곳을 방문해 상담받은 다음 나에게 제일 적합해보이는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있다.


대형로펌의 경우, 의뢰인에게 매번 '수임제안서'를 제출한다. 수임제안서는 보통 의뢰인이 처한 상황은 현재 어떠한데,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며(무조건 소송을 권하진 않는다), 만약 소송으로 갈 경우 우리 로펌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겠다는 내용이다.


개인 법률사무소나 작은 법무법인의 경우 의뢰인이 수임제안서를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 최소한 위와 같은 내용은 상담받아야 한다. 무작정 이길 수 있다거나, 열심히 해보겠다 같이 추상적인 내용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앞서 말했듯이, 구체적인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변호사를 알아보기 전에 의뢰인인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선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담을 받을만한 변호사는 어떻게 고를까? 변호사 상담만 해도 비용을 지불해야 되니 고민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 지인 추천을 받자. 지인이 추천한 변호사를 바로 선임하는 것보다는, 내 사건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우선 상담을 받아보고 마음에 들면 선임을 하고, 상담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내 사건이 지인추천 변호사가 잘 모르는 분야라면 전문 변호사를 소개받는 편이 낫다.


3. 변호사를 선임한 후에는, 일임하지 말고 나도 꼭 챙기자.


이건 자문보다는 송무(소송 수행)에 필요한 조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나면 '이제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믿음 자체는 필요하지만, 믿는다는 것과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다르다. 절차적인 부분은 변호사가 모두 알아서 처리하겠지만, 결국 변호사는 의뢰인의 대리인일 뿐이므로 사건의 '내용적인 완결'은 의뢰인과 변호사가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실관계이고, 사실관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의뢰인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제공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소송전략을 세우고 법적 논리를 구성할 뿐이다. 그런데 의뢰인이 사실관계에 관한 자료를 충분히 주지 않거나 오히려 잘못된 자료를 준다면,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도 제대로 된 주장을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변호사의 일(특히, 사실관계가 아닌 법리에 관한 내용)을 일일이 챙기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 사건의 사실관계가 정확하게 반영되었는지, 일부 사실관계가 누락되었다면 변호사의 실수인지 아니면 소송전략상 의도된 것인지 정도는 꾸준히 확인해야 한다. 그 외에도 사건의 진행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면 좋다.


이처럼 변호사 선임의 끝은 '일임'이 아니라 '협력'이다. 다시 말해, 좋은 결과는 변호사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과 변호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의뢰인의 입장에서 변호사를 어떻게 선임해야 하고, 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었다. 하지만 결국 (저번 글까지 포함해서) 이 글은, '변호사를 잘 쓰는 법'이라기보다 '변호사와 의뢰인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법'에 가깝다.


일을 하다보면 사건이 잘 안 풀리는 이유는 대부분 법률 문제가 아닌 동료 변호사 또는 의뢰인과의 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의뢰인과 변호사가 서로를 '문제를 함께 풀어갈 사람'으로 대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의뢰인의 사건이 보다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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