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7
지난 글에서 나는 대형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정확히는 ep)가 되려면 돈이 되는 사건을 많이 수임해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영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영업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영업 - 명함 돌리기, 술자리 만들기, 골프 치기 등등 - 과는 결이 다르다. 오늘은 변호사의 영업에 대해 내가 고민했던 내용을 써보려고 한다.
몇 년 전, 나는 다른 컨펌자(채용내정자)들 2명과 함께 파트너 변호사와 식사자리를 가졌다. 그 파트너 변호사는 이미 그 로펌만 30년 정도 다닌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대형로펌 변호사로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파트너는 식사 도중 우리에게 '변호사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첫번째 사람은 '웅변가'라고 답했다. 아마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변호사를 떠올린 듯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대중매체는 변호사를 주로 웅변가처럼 묘사하니, '변호사'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이기는 했다.
두번째 사람은 '문제해결사'라고 했다. 의뢰인이 어떤 문제를 안고 변호사에게 오면,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 역시 '문제해결사'가 일반적으로 변호사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답한 나는 '문제예방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문제예방?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부동산을 매매하면 대개의 경우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에 이르는 양도세가 따라온다. 그런데 이미 양도세가 부과된 다음 세액이 너무 높다고 다투는 것은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설령 세액이 일부 줄어들더라도 여전히 높은 세액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처음부터 부동산 양도세를 고려하여 부동산 매도전략을 구상한다면, 양도세를 아예 내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양도세가 감면될 수 있도록 부동산 매도시기를 조절할 수 있고, 갓 결혼한 사람들은 혼인신고 시기를 늦출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절세를 위해 다양한 전략들을 고민해볼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항상 양도세를 고려해서 부동산 매매를 결정한다.
그러나 부동산 양도세는 꽤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부동산 양도세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양도세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상담받기도 한다. 내가 말하는 '문제예방을 하는 사람'은 이처럼 문제(양도세 부과)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문제를 예상하여 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양도세가 부과되지 않도록) 상황을 설계(부동산 매도시기 등을 판단)하는 사람을 말한다.
내가 사례로 개인의 부동산 양도세를 들었지만, 기업으로 확장하게 되면 그 금액이 수천억 원에 이를 수도 있다. 또, 세금뿐만이 아니라 기업이 새로운 사업에 착수하였는데 규제에 위반되는 것인지, 만약 위반된다면 그 규제에 맞는 사업구조는 무엇인지 등 업무범위는 아주 넓어질 수 있다. 나는 기업법무를 주로 하는 대형로펌 변호사라면 이런 업무를 주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로펌에 들어와서 근무한 결과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한 컨펌자들에게 변호사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파트너 변호사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했다. 그는 내가 위와 같이 예를 들어가며 구구절절 설명했던 '문제예방을 하는 사람'을, '컨설턴트'라는 한 마디로 정의하고서는, 역시 직장생활을 하다 온 사람은 다르다며 웃었다.
다시 '영업'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러한 컨설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은 적다. 따라서 컨설팅을 잘 할 수만 있다면, 굳이 같이 술을 먹거나 골프를 치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수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컨설팅을 잘 해내려면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결국 전문성을 갖춰야 수임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전문성이야말로 변호사의 가장 강력한 영업수단이다.
그러나 전문성을 쌓는 과정은 길고 험하다. 새로운 법령이나 판례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산업의 트렌드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한다. 더욱이 산업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관행들은 단순히 책상 앞에서 법리만 검토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실제 사건을 맡아보고, 고객과 부딪히며, 시행착오 속에서 경험을 체화해야 한다. 전문성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과 노력이 축적되어야만 만들어진다.
게다가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수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도 그 전문성을 의뢰인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따라서 변호사는 의뢰인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결국 변호사의 전문성 있는 말 한 마디, 글 한 줄이 곧 영업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인간관계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술자리나 골프를 함께 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의뢰인이 안심하고 컨설팅을 의뢰할 정도의 신뢰관계는 필요하다. 전문성과 소통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신뢰가 최종적으로 수임 여부를 좌우한다. 그래서 나는, 진짜 영업이란 억지로 만들어낸 이벤트가 아니라, 전문성과 소통 위에 쌓아올린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 요소 - 전문성, 소통 능력, 신뢰 - 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변호사의 영업이 완성된다. 어느 하나만 뛰어나서는 부족하다. 전문성이 있어도 설명을 못 하면 인정받지 못하고, 소통을 빈번히 하더라도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 세 가지 축이 모두 맞물릴 때, 비로소 안정적으로 수임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변호사의 영업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기는 했지만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어쏘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뿐 자력으로 수임해본 적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깊이 있게 쌓아야 할지, 또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고 설명해야 할지에 대해 매일 고민한다. 마음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대형로펌의 냉정한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이 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나는 이 고민을 풀어내는 과정이야말로 변호사로서 성장하는 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