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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과 변호사, 조직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5

by 사무관과 변호사

공무원은 어느 기관에 있든 조직문화가 대체로 비슷하다. 그래서 공무원을 어느정도 해본 사람은 새로운 행정기관으로 가더라도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다.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로펌들마다 분위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암묵적으로 공유되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하겠지만) 공무원과 변호사는 조직문화가 매우 다르다. 어느 쪽이 옳다거나, 합리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지난 글에서도 여러 번 말했듯이 나는 직업적 특성이 조직의 구조를 결정짓고, 조직의 구조에 따라 조직문화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공무원과 변호사의 직업적 특성이 다른 이상 당연히 조직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나 개인적으로는 로펌의 조직문화가 더 맞지만, 그건 내 개인 취향에 맞아서일뿐 로펌의 조직문화가 더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무원과 변호사, 그 조직문화의 차이는 아래 그림 하나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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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이재명 대통령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핵심을 지적한 것이다(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어오는 직업이 아니라 돈을 쓰는 직업이다. 물론 공무원을 하다보면 무리한 예산을 따와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예산을 따오는 것에 실패하더라도 직업을 잃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보직경로나 승진에 지장이 조금 생기는 정도다.


그래서인지 나는 공무원일 때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법으로 정해져있는 사항이면 말할 것도 없고, 언론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거나 그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되는 사항이라면 예산은 수천 억원이건 수조 원이건 편성할 수 있었다.


인력 역시 마찬가지다. 공무원 조직은 인건비에 사실상 제약이 없다. 심지어 조직이 커질수록 승진자리도 늘어나기 때문에 공무원 조직은 최대한 조직을 불리려고 한다(파킨슨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조직이 무한정 커지는 걸 견제하는 법적 장치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마련하고 운영하는 사람도 공무원이다. 그래서 대체로 조직이 커지는 것에 대해 적당한 구실만 붙이면 통과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공무원은 돈과는 한참 거리가 먼 직업이다. 공무원 조직은 돈을 벌어오는 조직이 아닌데다가, 돈이 항상 샘솟는 조직이어서 돈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도 낮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은 왜 상명하복 문화가 강할까? 공무원은 돈을 벌어오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성과랄 것도 실패랄 것도 딱히 없다. 정확히는 성과 또는 실패와, 조직의 운명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따라서 승진과 같은 조직 내 성공을 위해서는 상사의 입맛을 잘 맞추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 결과 상사의 명령을 군소리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높게 평가받는다.


공무원 조직은 왜 업무처리가 비효율적일까? 세금을 받아 쓰다보니 법령과 지침에 구속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건비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건비를 많이 쓴다고 해서 그 기관이 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직이 커지면서 승진자리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업무특성이 이렇기 때문에 공무원은 개인의 삶에서도 돈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무원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한 사람들이 정작 개인의 재산은 적은 경우가 많았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 사람은 대한민국 전자관보에서 고위공무원들의 재산을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




로펌은 이와 정반대다. 로펌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변호사들의 집합체다. 로펌에서는 어떠한 일이든 결국 '그게 돈이 돼?'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돈이 되면 하고, 돈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매우 효율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공무원일 때는 조직 내부회의가 많았지만, 로펌에 와서는 내부회의를 거의 한 적이 없다. 내부회의보다는 전화를, 전화보다는 메일을 훨씬 선호한다. 내부회의를 하면 전화나 메일보다 시간이 더 소요될 수밖에 없고,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변호사 인건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인건비가 발생할수록 사건을 수임해온 파트너 변호사에게 배당되는 몫은 줄어들게 된다. 심지어 어떤 파트너는 어쏘 변호사들에게 일을 시키면서도 일에 투입한 시간은 기록하지 못하게 한다. 어쏘 변호사가 투입시간을 그대로 기록하면 자신에게 배당되는 몫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상명하복 문화도 강하지 않다. 아니, 애초에 '상급자'라는 개념이 잘 없다. 로펌도 조직인 이상 어느정도의 위계질서는 있지만 공무원 조직과 같은 상하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로펌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로펌, 그러니까 법무법인은 대체로 유한회사 형태이다. 유한회사가 무엇인지는 넘어가자. 핵심은 법무법인(유한)에는 출자(出資)를 하는 구성원 변호사(파트너 변호사)*와, 법무법인이 고용한 소속 변호사(어쏘시에이트 변호사, 보통 어쏘 변호사라고 한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 수임은 법무법인 명의로 하지만 실제로는 구성원 변호사가 한다. 예를 들어 수임료가 3천만 원이라면, 그 중 1천만 원은 사건을 수임한 구성원 변호사에게, 1천만 원은 다른 구성원 변호사들에게 각 배당되고, 남은 1천만 원은 법무법인 공통 경비로 공제된다(세부적인 비율은 모두 가상의 예시이다).

* 파트너 변호사 중에도 '진짜' 파트너 변호사와 '가짜' 파트너 변호사가 있지만, 이건 다음에 다루기로 하자.


그러면 로펌 내부에서는 사건이 어떻게 수행될까? 보통은 파트너 변호사가 자신과 사건을 같이 수행할 어쏘 변호사들을 고른다. 여기에는 어쏘 변호사의 시간당 단가(단가가 낮을수록 파트너가 배당받아가는 몫이 늘어난다), 기존 업무이력, 업무스타일 등이 고려된다. 그리고 어떤 파트너 변호사로부터 일을 많이 하는 어쏘 변호사는 그에 따라 자신의 전문분야를 정립해나가는데, 이를 바탕으로 고객을 확보한다(운이 정말 아주 좋다면 파트너 변호사의 고객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


나는 로펌의 이런 구조를 종종 배달의 민족에 비유하고는 한다. 배달의 민족(로펌)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개별적인 식당들(파트너 변호사)이 장사를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사건이 수임되면), 완성된 음식을 라이더에게 맡겨서 배달한다(법률자문의견서이든 송무서면이든 어쏘 변호사가 작성하여 파트너 변호사의 검토를 받고 고객에게 보낸다). 내가 중식집을 하는 사람인데(건설전문 파트너 변호사), 손님으로부터 중식과 일식 주문이 같이 들어오면(건설뿐 아니라 형사 사건까지 의뢰가 들어오면) 일식집에서 일식을 사와서 중식과 함께 배달한다(로펌 내 형사 전문 파트너 변호사와 사건 수임료를 나누는 조건으로 협업하여 사건을 수행한다).


위와 같은 구조에서 식당 사장과 배달 라이더가 상하관계가 아닌 것처럼,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와 어쏘 변호사도 엄밀히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배달 라이더 입장에서는 플랫폼에 입점해있는 모든 식당 사장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나에게 고정적으로 배달 의뢰를 하는 식당 사장 몇 명만 있으면 충분하다. 식당 사장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배달 라이더가 낮은 가격에 빠르고 정확하게 배달만 해주면 될 뿐이다. 배달 라이더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배달 라이더에게 배달을 의뢰하면 된다.


로펌은 이렇게 이해관계로만 얽혀있다. 그러다보니 개인주의 문화가 굉장히 강하고, 의전이랄 것도 없다. 그 밖에 조직문화도 상당히 유연하다. 예를 들어 휴가를 쓸 때도 그냥 통보만 하면 될 뿐 실질적으로 결재를 받을 필요는 없다. 일을 기한에 맞춰 제대로 끝냈느냐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낯설었다. 새로운 사람이 왔음에도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고 챙겨주지도 않는 문화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점도 보였다. 인간관계 때문에 피곤할 일도 없고, 업무 외적으로 낭비되는 시간도 거의 없다. 오롯이 '내가 맡은 일'을 통해 평가받고, 성과를 내면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온다. 내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인 '업무의 독립성'이 이렇게 확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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