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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변호사는 '파트너 변호사'가 될 수 없다.

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6

by 사무관과 변호사

공무원 사회에서 과장은 상당히 높은 자리다. 1개 과(課), 그러니까 부서의 장(長)이기 때문이다. 과에는 보통 10명(중앙부처) 내지 40명(소속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직원들이 소속되어 있다. 과가 다루는 업무범위도 넓다. 내가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있었던 어떤 과는 1년 예산이 수조 원이었다. 그래서 흔히들 공무원 조직에서의 과장은 민간기업의 상무 정도에 대응한다고들 한다.


반면 민간기업에서 과장은 일반적으로 실무자다. 그래서 공무원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과장급 공무원의 중요도를 실제보다 낮게 생각한다. 내가 데이터를 다루는 팀장으로 인사발령됐을 때 과장님은 원래 민간에서만 일을 하던 분이었는데, 민간기업의 과장 수준을 생각하고 개방형 직위에 지원했다가 나중에 과의 직원이 40명에 육박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과장'이라는 어휘는, 발음은 같지만 공무원 조직과 민간기업 사이에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변호사 업계에서도 로펌별로, 심지어 같은 로펌 내에서도 발음은 같지만 의미는 전혀 다른 어휘가 있다. 바로 '파트너 변호사'다.




지난 글에서도 썼지만, 파트너(partner) 변호사를 우리말로 옮기면 구성원 변호사다. 구성원 변호사란 법무법인에 출자(出資)한 변호사를 말한다. 따라서 변호사가 경력이 길다고 파트너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력이 짧다고 파트너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파트너 변호사는 아무래도 변호사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출자를 하려면 일단 상당한 현금이 필요하고, 그러한 현금을 지출하고서도 파트너가 되는 게 이익이 되려면 사건 수임을 꽤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위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려면 변호사 경력이 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파트너 변호사'라고 하면 경험이 어느정도 쌓인 노련한 변호사를 떠올린다.


때문에 법률사무소임에도 파트너 변호사 운운하는 경우가 있다. 법률사무소에는 출자(出資)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법률사무소의 파트너 변호사는 '뜨거운 얼음'이라거나 '동그란 삼각형' 같이 모순 그 자체이다(실제로 김&장은 법률사무소이기 때문에 파트너가 없다. 그 대신 시니어-주니어로 구별한다). 그럼에도 '파트너 변호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차용해오기 위해서 파트너 변호사 직함을 써놓는 것이다. 보험 영업사원의 대외 직급은 무조건 팀장 이상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나도 로펌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위와 같은 구조를 알지 못했다. 파트너 변호사라고 하면 막연하게 베테랑이겠거니 생각했고, 홈페이지에 파트너라고 적혀있으면 진짜 파트너 변호사인 줄 알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로펌은 8~9년 정도 근무하면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데, 사무관이 서기관 되는 것보다 빠르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앞서 간략히 말한 바와 같이, 대형로펌에서 파트너는 1) 출자를 한 '진짜' 파트너 변호사와 2) 출자를 하지 못하고 파트너 직함만 달고 있는 '가짜' 파트너가 있다. 로펌 내부에서는 보통 1)을 ep(equity partner)라 부르고, 2)를 ip(income partner), wp(working partner) 또는 sp(salary partner)라고 한다(로펌마다 다르다. 아래에서는 그냥 'ip'라고만 하겠다). income, working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2)의 본질은 여전히 어쏘 변호사(법무법인에 고용된 변호사)다. 경력이 오래된 만큼 다른 어쏘 변호사들을 관리하는 역할도 할 뿐이다.


그렇다면 ip가 ep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 7일 출근할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할까? 서면을 빠르고 정확하며 깔끔하게 써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드라마 에스콰이어에서 전혜빈이 연기한 어쏘 변호사처럼 승소를 많이 해야 할까?


모두 아니다. '돈이 되는 사건을 많이 수임해와야만' ep가 될 수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ip가 ep가 되면, 법무법인 전체의 수익으로부터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기존 ep 입장에서, 만약 새로운 ep가 추가되었는데 수익이 그대로라면 기존 ep 자신이 배당받는 몫이 줄어든다.


수익이 100억 원인 로펌에 ep가 10명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ep 10명이 10억 원씩 배당받을 수 있다. 그런데 ep가 1명 늘어 11명이 된다면? 새로운 ep는 9억 원을 배당받을 수 있어 좋지만, 기존 ep들은 10억 원씩 배당받던 것이 약 9억 원으로 감소한다. 이처럼 기존 ep들은 신규 ep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 ip가 새롭게 ep가 될 수 있는지의 심사는 기존 ep들이 하므로, ip가 신규 ep가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존 ep들이 신규 ep를 받아들이는 경우는 단 하나, ip가 새롭게 ep가 된다면 기존 ep들의 배당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뿐이다. 위의 사례를 다시 한 번 보자. ip가 새롭게 ep가 되면서 로펌의 수익을 20억 원 늘려준다면, 전체 로펌의 수익은 120억 원이 되고, 기존 ep와 신규 ep는 1인당 12억 원씩을 배당받을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ep의 등장이 기존 ep들에게 이익이 되어야만 ip는 ep가 될 수 있다.


종합하면, 어쏘 변호사가 로펌의 격무를 버텨내어 ip가 될 수는 있어도, ep가 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열심히 일하는 것, 법리에 뛰어난 것 모두 ep가 되는 것과 무관하다. 로펌에서 살아남는 것, 즉 ep가 되는 것은 오로지 사건을 수임해올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런데 저연차 어쏘 변호사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입장에서는 회사에 적응하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나도 초임 사무관 시절에는 회사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사회경험을 5년 정도 해본 사람이다. 행정기관과 로펌의 조직문화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지난 5년이 헛된 경험은 아니었다. 이런 나의 눈에 로펌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도(餓鬼道), 끝없이 배고프고 만족을 모르는 세계 그 자체였다. 나는 내 앞날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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