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무한책임, 업무상과실치사

사무관의 추억 - 8

by 사무관과 변호사

얼마 전 이태원 참사에 대한 청문회가 있었다.

참사가 발생한 때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은 예전만 못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청문회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정권에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있다, 없다 차원의 관심이 아니다. 그보다는 공무원의 책임범위가 어디까지 인정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아무래도 무원의 책임이 주로 논의될 테고, 향후 대형 사회적 참사가 일어날 경우 이번 청문회에서의 논의가 반복될 터였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 청문회의 진행방향은 정말 내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 청문회가 공무원 몇 명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그 공무원들을 제물로 삼은 다음 마무리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되었다. 온갖 종류의 "~했더라면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면서 정말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징계나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공무원은 조금만 잘못해도, 아니 잘못이 없더라도 운이 나쁘면 징계를 받고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업무상과실치사다.


업무상과실치사, 문자 그대로 업무상의 과실로 인해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대형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죄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무원이 업무상과실치사로 처벌받는 경우가 꼭 대형 참사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언론에 잘 보도되지는 않지만 대형 참사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문제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아는 공무원 중에도 업무상과실치사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이하 'A'라고 하자)는 나보다 행시 1년 선배였다. 그는 항상 자신감 넘치고 일에 대해서도 의욕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 A와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내가 공무원을 그만둘 당시 A가 따로 나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던 기억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몇 년 뒤, 나는 친한 공무원들에게 청첩장을 주기 위해 예전에 근무하던 기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공무원들에게 A의 근황을 물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꺼려했다. 그들은 단지 A가 다른 기관으로 파견을 갔다고만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연차의 행시 출신 공무원이 다른 기관으로 파견을 간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결국 나는 친한 후배를 통해 A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A 역시 딱히 이 일을 비밀로 하지는 않고 있다).


몇 년 전 A는 격무&기피 부서로 발령받았다. 일도 많고, 민원은 아주 많으며, 정치권이나 언론의 관심도 끊이지 않는 부서였다. 그 부서에서 A가 맡은 업무 중 하나는 수천 개에 이르는 시설물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물론 A가 직접 관리한 건 아니다. 시설물들을 관리하는 민간기업이 따로 있었고, A는 행정기관의 팀장으로서 위 민간기업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역할이었다.


문제는 그 기업이 일부 시설물을 철거하다가 중단한 채 방치해 두었다는 것이었다. A는 여러 차례 해당 시설물에 대하여 안전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 기업은 계속 시설물을 내버려두었고, 결국 거기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유족은 A와 담당 주무관을 업무상과실치사로 고소했고, 결국 A는 형사처벌을 받고 말았다.




물론 유족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상황에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시설물이 제대로 관리되었다면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종적인 관리감독주체인 행정기관의 담당자들을 고소한 것도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도의적 책임과 형사책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형사처벌은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그 상대방에게 무거운 불이익을 주는 것이기에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하고, 그런만큼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에는 형사처벌과 별도로 징계라는 제도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인정할지는 더욱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업무상과실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업무상 과실'이 있었는지, '업무상 과실'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를 엄격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공무원은 사실상 ‘무한책임’을 지는 존재에 가깝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 '이것도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 '저것은 왜 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지기 시작하면 그 비난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 보인다. 위험요소도 눈에 잘 보이고, 그 위험을 제거할 수 있었던 방법도 쉽게 떠오른다. 그러나 실제 행정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에게는 매일 수십, 수백 개의 업무와 수많은 잠재적 위험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고가 발생하면, 마치 담당 공무원이 그 위험을 미리 알고 있었어야 했고 반드시 막았어야 했던 것처럼 이야기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이태원 참사 청문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A의 일이 떠올랐다. 참사가 발생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사람들은 누군가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책임은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몇몇 공무원에게 집중된다.


그들이 실제로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제약 속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몇 명의 공무원이 형사처벌을 받으면 사건이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다음 사고를 막기 위한 구조적인 문제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태원 참사 청문회를 보면서도 그 결말이 어느 정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나중이 되면 내 잘못에 비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대형 참사나 안전사고와 관련된 사건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그 현장에서 일했을 사람들의 위치를 떠올리게 된다.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또 조직 안에서 업무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함께 살펴보지 않는다면 책임의 범위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으로 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나의 이런 생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이번 에피소드도 공무원 경험이 없는 사람은 쉽게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A가 더 안타까웠다.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A의 처지에 공감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의 시점에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일은 언제나 쉽다. 그러나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권한과 선택,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함께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진다.


내가 A를 변호했더라면, 결과가 조금은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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