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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엄마' 하기 싫다.

나 혼자 논다.

by 승란

엄마가 되니 맛있는 건 애들과 남편 먼저 주게 되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가장 늦게 챙겼다.

그래도 그게 행복했고 좋은 옷 좋은 가방도 나는 주부인데 뭐 필요 없어하며 가족들 것만 신경 써서 사주곤 했다.

그렇게 19년을 살았더랬다.


아이들이 크면서 나에 대한 고마움이나 미안함 따위를 바란 건 전혀 아니었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한 나에게 자기들 뜻대로 안 된다고 원망을 쏟아낼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게 나를 가장 초라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죄냐?

하루는 모처럼 맘에 드는 내 옷을 사게 되어 기분이 너무 좋았었는데 그 예쁜 옷을 입 거울을 보니

거울 속에는

희끗희끗한 새치에 손질하기 편한 브로콜리 파마머리 그리고 얼굴엔 검은 흑자가 듬성듬성 있는 나이 든 아줌마가 있었다. 좀 더 젊고 생기가 맴돌던 탱탱했던, 내가 알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왜 난 그걸 오늘 알게 되었을까?

어제까지 안 보이던 내 세월이 갑자기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학부모 모임이 가장 큰 외출이었던 나는 나를 돌보고 가꾸는 일이 그동안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었다.

피부과를 다니고 각종 보석 액세서리로 치장한 여자들을 보면서도 별로 부러워하지 않던 나였는데

그날은 그렇게도 내가 짠하고 불쌍했다.

그동안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가족들보다 친절했고 나를 더 인정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자존감을 집 밖에서 서서히 되찾았다.

이제는 내가 나를 돌보기로 했다.

그 누구보다도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뭘 먹고 싶은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지금은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지 말이다


돈을 벌어 제일 먼저 한일은 피부과에서 내 최대의 콤플렉스인 얼굴의 검버섯과 흑자를 빼는 거였다.

레이저 시술에 토닝 10회까지 나를 위해 백만 원을 썼다.

거금을 쓰자니 왠지 죄짓는 듯하고 손이 후들후들했지만 하고 나니 이게 뭐라고 진장 할걸 그랬다 싶었다.


두 번째로 한 일은 나 혼자 여행하기였다.

아무 곳이나 끌리는 곳으로 콕 찍어 출발하고,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서 가사노동 & 감정 소비로부터 하룻밤의 자유를 누렸다.


세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먹으러 가기

남편과 아이들은 고기파이고 나만 해산물을 좋아한다. 그러니 외식을 해도 내 뜻대로 가기보다는 가족이 원하는 쪽으로 갔다.

그런데 쉽게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혼자 먹으러 가면 된다.

왠지 혼밥은 눈치 보이고 혹은 쑥스러워서 못했었는데 몇 번 하고 익숙해지니 세상 편하다. 이젠 한 달에 한번 나에게 맛있는 것을 사준다.


사는 게 매일 별일인 나의 우울감을 씻어내기 위해 오늘은 모처럼 일도 일찍 끝났겠다.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먹기로 결심했다. 평소 예약하기 힘들다고 들은 초밥 '오마카세'집이 점심때 딱 1명 자리가 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싸~!!!


오늘도 수고가 많았어 맛있게 먹어


셀프로 다독이며 작은 호사를 누린다.

청어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디저트까지 완벽한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야 푸른 가을 하늘이 예뻐 보인다. 산책이나 좀 하다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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