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 너머의 할머니 02

by 천강

아들이 셋 딸이 둘

모두 결혼을 하고 맞벌이로 살고 있다보니 명절이 와도 미리 오는 며느리는 없다

명절이면 할머니는 혼자 만두와 전을 만드셨고,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옆에서 거들었다

그 중 할머니의 최고 명절 음식은

고운 흰 밀가루 반죽 위에 매콤하고 새콤한 김장 김치 얹어지져낸 부침개

차갑게 식으면 쭉 찢어 흰 부분 과 김치를 싸서 먹으면 그 맛이 얼마나 일품인지

그러고 꼭 빠지지 않는 생선전

동태전처럼 슬라이스 된 것이 아닌 통째로 하는데

황새기라는 생선을 비늘을 깨끗이 벗기고 몸통만 손질해 부드러운 밀가루 옷을 입힌 뒤 노릇노릇하게 부친다

지금 내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그 맛은 따라 할 수 없다. 그건 단순한 부침개가 아니라, 할머니의 손맛과 사랑이 담긴 명절의 기억이었으니까

음식을 준비하시며 할머니는 종종 혼잣말을 하셨다.
"어찌 먼저 와서 돕는 며느리는 하나도 없을까..."
그 말에는 며느리들에 대한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막상 며느리들이 문 앞에 나타나면, 할머니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 환한 웃음으로 반기셨다. "힘들 텐데 아무것도 하지 마라"며 등을 쓰다듬으셨다.

그렇게 가족들이 오면 저녁을 차려주곤 할머니는 식사는 하지 않으신다

아침부터 혼자 음식을 준비한 것이 너무도 고단하고 힘이 드셨겠지

입맛이 있었을까 싶다

할머니는 마당 한쪽, 달빛이 드는 곳에 앉아 양은솥에서 한 사발 떠낸 식혜를 드셨다.

반짝이는 솥 안에는 노르스름한 식혜가 가득 찼고, 달큰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할머니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한 모금 식혜를 드신 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셨다.

‘야야 오늘 전 부치느라 힘들었지 내가 너 때문에 안 힘들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한숨을 돌리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 말에 할머니와 함께 마시는 식혜가 더 달게 느껴졌다.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마시는 식혜 한 모금. 마당을 가득 채운 달빛 아래, 그 맛은 겨울날 살얼음이 깔린 식혜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큼 달고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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