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아기였던 나의 소중한 마술사

나를 웃게 해 줘

by 해그해그


집 안의 공기가 레고 부품들이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로 채워지던 오후였다. 둘째는 제법 진지한 손길로 범블비 레고를 자동차로 조립하고 있었다. 한참 집중하던 아이가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밀이라도 털어놓듯 나직하고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말할 게 있어요. 비밀인데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의 눈을 맞추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더없이 맑고 진지했다.


"엄마,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아기였었어요."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대답에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태어날 때부터 아기였다'는, 어찌 보면 우주의 섭리만큼이나 당연한 사실이 아이의 입을 거치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비밀'로 재탄생한 것이다.


아이들은 가끔 이처럼 당연한 말들로 어른들의 허를 찌른다. 하지만 그 엉뚱함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나름의 철학이 있고, 도덕이 있으며, 상대를 향한 배려와 사랑이 깃들어 있다. 어쩌면 웃을 일 없이 건조하게 흘러가던 하루에 조그마한 웃음꽃을 피워주는 둘째는, 우리 집에 찾아온 '웃음꽃 피우는 마술사'가 아닐까 싶다.


마술사의 공연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둘째가 막내의 질문에 의젓하게 답을 해주고 있었다. 노란색 옷을 가리키며 아이가 말했다.


"응, 맞아. 이건 나의 자몽이야."


자몽이라니?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내 표정을 살피던 아이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주어 정정하며 말했다.


"응, 나의 잠옹이야. 잠. 옷. 이. 야."


'잠옷'이라는 단어가 아이의 입술을 타고 '자몽'이 되었다가 '잠옹'으로 구르는 그 과정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진작에 그 뜻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그 발음이 주는 말랑말랑한 질감에 나는 다시 한번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왜 그렇게 웃는지 다 안다는 듯, 아이는 배시시 혀를 내밀며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미소를 선물했다.


아이의 말은 단순하지만 힘이 세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 덕분에 나의 일상은 다시금 색깔을 입는다. "태어날 때부터 아기였다"는 그 비밀스러운 고백처럼, 우리 아이들이 보여주는 이 순수한 순간들을 오래도록 마음의 주머니에 담아두고 싶다. 오늘도 나는 작은 마술사가 피워낸 웃음꽃 향기에 취해, 가장 행복한 관객이 된다.





너는 나의 웃음꽃

피어나는 건 참으로 뜻밖이지만

배꼽이 빠지도록 나를 웃게 하는 사람


너는 나의 귀여운 꽃

작게 피어난 몸짓 하나로

고단한 세상사에 작은 희망을 선물하네


너는 나의 비타민

햇살 가득 머금은 나의 태양

나를 숨 쉬게 하는 유일한 에너지

너로 인해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온기로 다시금 웃으며

나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