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이어주는 창, 브런치스토리.
1987년 6월, 백여 명의 청자켓 백골단들이 맹렬한 기세로 쫓아온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4차선 도로에서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도망치지만 그들의 진압봉에 맞아 하나둘씩 쓰러진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대학생들에게 중봉이 날아들고 방패가 내리 꽂힌다. 둔탁한 타격음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피가 튀기고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는 여학생들의 비명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뒤엉켜 있다. 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몸을 틀어 내달린다. 잡히면 끝이라는 공포에 사력을 대해 도망친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목에서는 피맛이 올라오지만 백골단을 피해 달리고 또 달린다.
고교시절 문예반을 통해 대입시험 사지선다형 문제풀이가 아닌, 다른 시각에서 시와 수필을 바라보게 되었다. 문예반을 지도하셨던 국어선생님은 수업시간때와는 사뭇 다른 해석들을 보여주셨고, 그때 김수영 시인의 '풀'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학을 전공하는 학과에 들어간 해가 1987년도였다.
3월에 대학생활의 기대를 안고 입학했지만,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현수막이 캠퍼스 전역에 나부끼고 총학생회가 매일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수업·시험 거부가 이어졌고, 단과대 건물 앞 게시판마다 독재에 저항하고 집결을 호소하는 대자보가 가득했다.
선배들이 시위 참여를 권유했지만,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를 떠올리니 선뜻 나설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시대를 외면한 채 강의실에서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글을 쓰는 것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무엇을 쓰더라도 위험을 불러올 것만 같았다.
그러다 연세대 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전 학년이 동참하는 총학생회 시위가 시작되었고 인근 대학교들과 연합 시위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는 대운동장에 모두 모여 제물포역으로 진출하였고 거기서 그 무섭다는 백골단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 나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던 것이다. 그때 잡혀서 고초를 겪고 나온 친구들의 상태는 충격이었고, 그 이후 시위 참여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자신을 희생하던 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했고, 그때부터 글을 애써 외면하게 되었다.
그 후 대부분의 문과생들이 그렇듯 나 역시 전공과는 다른 진로를 선택했고, 올해가 2025년이니 어느덧 30년가량 IT업계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책은 늘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편이었고, 몇 년 전부터는 블로그도 만들어 조금씩 글을 저장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8월 몇몇 분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한 분이 브런치스토리 작가라고 하셨다. 그때서야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혼자 써놓고 저장해 둔 글들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 선정 소식은 가슴 벅찬 기쁨이었고 오랫동안 닫쳐 있던 창문을 누군가 활짝 열어젖히듯 내 글에도 세상과 이어지는 창이 열린 듯했다. 나의 글을 공감해 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따뜻한 위로이자 새로운 출발이었다.
이제 퇴근 후에는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펜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고 있으나 앞으로 독자와 나눌 수 있는 콘텐츠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브런치 매거진과 브런치북을 통해 그 방향을 두 가지로 잡아 보려 한다.
첫 번째는 일상생활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에세이'를 주로 쓰고자 한다. 독자들이 편안하게 읽으면서도 공감과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글을 말이다.
두 번째는 무역상사와 바둑을 소재로 한 드라마 '미생'이 직장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듯, 최근 AI로 주목받는 IT 업계에도 충분히 재미있고 특유의 신선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30년간의 IT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수주·실주의 기쁨과 슬픔, 비즈니스 마케팅·세일즈 전략, 또한 단순한 직무 경험담을 넘어, 현실적인 고민과 해법을 담아내어 IT 업계에서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인사이트를 전하고 싶다.
이렇게 희망과 꿈을 같이 품고, 브런치스토리와 함께 성장해 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