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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일관성에 대하여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

by 버디나라 나홍석

2023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퍼펙트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를 보면 수도자의 수행과도 같은 일정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보여준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그렇듯, 나 역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비교적 일정하다.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기상시간'이라고 썼다가 '일어나는 시간'으로 바꿨다. 요즘 젊은 분들은 조식, 중식, 석식, 같은 말도 잘 안 쓴다고 하니 말이다. 회사도착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그 출발점인 일어나는 시간부터 일정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공식 출근시간은 9시 30분인데 1시간 전인 8시 30분 전에는 도착하려 한다. 그래야 출근 러시아워를 피해 변수를 줄일 수 있다.


핸드폰 알람 또는 와이프의 기상 외침이 들리면 곧바로 일어난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샤워를 마친 뒤에는 스킨 로션을 바르기 전에 속옷차림으로 거실로 나간다. 먼저 어항의 여과기를 끄고 구피들에게 사료를 준다. 여과기를 끄는 이유는 사료가 여과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구피 먹이를 준 뒤에야 스킨 로션을 바른다. 손으로 사료를 집을 때 스킨 로션의 화학 성분이 묻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항 관리에는 이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옷을 입으면서 서재로 가서 제습기를 확인한다. 수제 클래식기타가 있는 곳이라 습도 조절에 신경써야 한다. 제습기 뒷면 물통이 꽉 차면 앞면에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습한 여름에는 그 물통을 하루에 2번 이상을 비워줘야 한다. 가을이 된 요즘에는 확실히 건조해졌나 보다. 비 오는 날 아니면 하루에 한 번이면 족하다.


이제 본격적인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안방 선반에 놓아둔 출근용 물품들을 차례로 챙긴다. 자동차 키는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지갑은 백팩 위쪽 작은 포켓에 넣는다. 이어서 핸드폰을 챙겨 바지 왼쪽 주머니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와이프가 미리 만들어 둔 토마토주스를 마신 뒤, 물로 입안을 헹구며 현관문을 나선다.


판교에 있는 회사에 도착하면 4층 사무실로 바로 올라가기 전에 먼저 지하 직원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챙긴다. 우리 회사는 아침, 점심, 저녁을 무료로 제공한다. 안 먹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다. 사무실에 올라가서 백팩을 자리에 놓고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나는 주로 바나나 1개, 야채주스, 요구르트를 먹는다. 탄수화물을 줄이려 한다. 그렇게 간단한 아침을 먹으면서 가벼운 책을 읽거나 그날 일정들을 확인한다. 그렇게 회사에서 그리고 고객사를 오가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퍼펙트데이즈》의 히라야마는 공중화장실 청소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소위 영혼을 다해 업무에 임한다. 나는 지금 내 업무에 그렇게 하고 있나 반성을 하게 된다. 부하직원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으나 꾹 참는다 나는 꼰대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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