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50대 상경기

4.서울에서의 직장생활(2)

by 구호선

우선 회장은 성격이 괴팍하고 변덕이 심했다. 항상 정치인과 금감원, 작전세력에 당했다는 얘기를 반복했고 피해망상 증세를 보였다. 자산운용사를 준비하면서도 어떤 날은 자산운용사를 인수하자 했다가 그 다음날은 신규 설립을 하자 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이 되면 또 말이 바껴서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참고로 자산운용사에 진입하는 방법은 신규로 금감원에 신청에서 허가를 받는 방법과 기존 소형 자산운용사를 웃돈주고 인수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중에 드디어 결정적인 문제가 폭발하고 말았다.

회장의 주식투자 스타일은 한 종목에 올인해서 올라가면 많이 벌고 내려가면 많이 잃는 방식인데 특정 종목으로 전 고객 계좌를 교체하기 위한 작업을 일주일 동안 하게 됐다. 2천명에 가까운 고객에게 전 직원이 전화를 돌려서 한 종목으로 집중 매수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유사투자자문사 직원들은 회장의 괴팍한 스타일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터라 신속하고 짧게 종목교체를 유도했지만 증권사 출신의 상무는 상담 시간이 더디고 한 종목에 올인하는 투자 방식을 못 마땅해했다.


일주일 뒤 통화 횟수를 체크해보니 상무는 다른 직원들의 절반밖에 전화를 돌리지 않았고 회장은 다음날 바로 상무에게 해고 통지를 하는 것이었다.

대표를 맡고 있는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한 달만에 상무를 해고하는 장면에서 나는 상당히 황당했다. 대형증권사나 공직에서만 일을 했던 내 입장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장면이었다. 한 달만에 상무를 해고한다니..

회장에게 전화해서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시라고 했지만 회장은 나에게 참견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

지켜보는 나도 당황했으니 당사자인 상무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갑자기 자를 수 있느냐며 하소연했지만 완고한 회장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해고를 강행했다. 결국 어렵게 찾은 일자리를 한 달만에 잃은 상무는 퇴사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사람을 이런 식으로 자를 수 있지 하고 생각하던 나에게 이삼일 뒤 그 다음 불똥이 튀었다. 인수 가능한 자산운용사를 알아보라는 회장의 지시에 따라 알아보고 보고했지만 회장은 나에게 트집을 잡았다.

대표는 왜 자꾸 자산운용사를 인수하라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회장님이 지시했잖습니까 라고 대답하니 중간에서 브로커짓 하는거 아니냐는 황당한 답변이 들려왔다. 순간 멍했고 아차 싶었다.

그 다음날 회장은 전체 회의를 소집하더니 자산운용사는 안 할거고 투자자문사 라이선스도 반납하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금감원에서 본인을 집중 감시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난리였다. 그리고는 마지막 멘트로 이제 자산운용사는 안할테니 기존에 있던 직원들은 그대로 있고 대표는 나가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직원들이 다 있는 앞에서 대표는 나가라고 통보하고는 회사를 나가버렸다. 모두 황당한 표정이었고 내 눈치를 살피며 슬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 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본인이 지시해놓고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 놓더니 갑자기 해고 통보라니. 사람이 아니다 싶었다. 마치 부산에서 당했던 일을 여기서 더 짧은 기간에 당하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밤새도록 고민 끝에 회장에게 기회를 달라고 얘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저런 성격이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거라는 판단에 최종적으로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갑작스러운 해고에 따른 보상은 받아야겠다 싶어서 회장과 합의하에 몇 달치 급여를 받고는 대표이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새로운 꿈에 부풀어서 희망차게 상경했지만 불과 한달 반만에 나의 첫 서울 직장 생활은 초라하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에서는 사람을 쉽게 고용하고 쉽게 짜르는 것이 일상이다. 이 당시는 적응이 안됐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투자자문사 회장과 같이 사람을 가벼이 여기고 쉽게 짤라내는 방식이 서울에서는 일반적인 것 같다. 물론 종업원도 회사에 특별한 소속감 없이 약간의 이익에 따라 쉽게 그만둔다.

일 년 동안의 서울살이에서 느낀 바는 서울에서는 사람 돌려막기식의 직장이 많다는 거다. 웬만한 회사들은 모집공고를 내면 수십 수백명씩 지원을 하니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없고 단기간에 성과가 없으면 짜르고 또 뽑는다. 뽑아서 성과가 있으면 살아남고 아니면 대부분 단기간에 그만두고 또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가 반복된다. 서울은 원래 그런 곳이라는 걸 이 당시에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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