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라 하면 무엇이 연상되십니까? 이곳은 흔히 이민자들의 도시, 세계 최대의 자본시장, 그리고 문화 예술의 중심지라는 타이틀이 따라 다닙니다. 이곳 예술의 큰 후원자였던 록펠러 가문은 1930 년대 맨해튼 중심부에 록펠러 센터를 지으며 자신들이 중요시하는 세계관을 표현했습니다. 그 세계관이 무엇이냐고요? 고대 페니키아인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 베네치아, 스페인, 네덜란드, 대영제국의 크나큰 번영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 무역과 세계화라는 시각입니다. 그 결과 록펠러 센터 곳곳에는 세계화를 통해 발전해 온 인류를 묘사하는 예술품들이 빛을 발합니다.
세계 지향적인 록펠러 센터의 철학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써 5번 애비뉴 선상에 당시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을 상징하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대영제국 빌딩 (British Empire Building) 입구 상단은 "영연방의 산업 (Industries of the British Commonwealth)"이라는 부조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 산업혁명을 통해서 흥하고 세계 방방곡곡을 지배하던 1930 년대 영국과 그 식민지를 묘사하는 작품입니다. 거기에는 밀과 목화 농사를 짓는 사람, 어부, 소금쟁이를 비롯해 영국의 산업혁명의 밑거름을 제공한 석탄 광부와 모직 업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유럽풍의 예술이다 보니 담배 농사를 짓는 여성과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남성은 관능적 육체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연방 사이의 활발한 무역이 산업 혁명과 대영제국 영화의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조가 세워진지 얼마 안돼 영국은 대부분의 식민지를 잃었지만 국제 무역을 통한 번영은 전 세계로 더 널리 퍼졌습니다.
대영제국 건물 바로 남쪽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라 메종 프랑세즈 (La Maison Francaise) 건물이 서있습니다. 이 입구에 프랑스를 표현하는 황금빛 청동 부조가 보입니다 (아래 그림). 이 부조를 만든 알프레드 자니오 (Alfred Janniot)는 프랑스의 대표적 아트데코 조각가라지만 디테일로 가득 찬 이 부조는 전형적인 아트데코라기보다는 19세기 유럽 전통을 따른 느낌을 줍니다. 이 부조의 상단에는 프랑스와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인물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품고 있고, 그 뒤에는 "파도에 흔들리나 침몰하지는 않는다"는 파리의 모토가 적힌 휘장이 보입니다. 이 여인의 손가락은 오른편에 있는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의 손과 맞닿아 있으니 두 나라의 우정을 표현합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의 뒤편으로는 맨해튼 스카이라인이 보입니다. 그 바로 아래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들이 있고, 그 밑에는 프랑스인들의 세 가지 덕목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서 있습니다. 왼쪽의 여성은 시 (poetics)를, 중앙에 서 머리를 다듬고 있는 누드 여성은 아름다움 (beauty), 오른쪽에 있는 여성은 우아함 (elegance)을 상징한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자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자랑스럽다는 것을 표현하는 듯한데, 피나는 노력과 허리가 휘는 노동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대영제국 부조와는 주는 메시지가 사뭇 다르군요. 여하튼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예술적 전통과 패션 산업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국가이죠.
대영제국 건물의 북쪽으로는 팔라쪼 드이탈리아 (Palazzo D'italia)라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치지만 이 건물의 상단부는 1930 년대 이탈리아 정부가 강조하던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왼쪽 끝에는 S.P.Q.R.(The Senate and People of Rome)이라 새겨져 있는데 이는 로마를 일컷습니다. 그 옆에는 로마 숫자로 1400이라 새겨져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시작된 해를 기리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이탈리아의 위대한 위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옆에는 "죽음 아니면 자유"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1870 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기념하는 구호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끝에는 1930 년대 이탈리아를 이끌던 파시스트 문양이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록펠러 센터를 건설하던 당시 이탈리아는 극우 지도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부가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서방 세계가 무역과 세계화를 통해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번영을 해 온 것이 수백 년이 됐습니다만, 그 기조가 항상 유지됐던 것은 아닙니다. 소수에 의한 폭력이 세계적 분노를 일으키며 무역과 인적 교류를 통한 공동 번영에 찬물을 끼언곤 했지요. 2차 세계 대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팔라쪼 드이탈리아 건물의 입구에는 아틸리오 피치릴리 (Attilio Piccirilli)라는 이탈리아계 미국 작가가 만든 <영원한 젊은이여 항상 앞으로 (Sempre Avanti Eterna Giovinezza)> 부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41 년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분노한 미국인들이 이 작품을 나무로 덮어 버렸습니다. 무솔리니의 정부가 일본과 동맹을 했다는 것, 그리고 무솔리니의 지지층이 이탈리아 젊은 층이었다는 이유로 이 부조가 파시스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만든 피치릴리는 무솔리니와 아무 상관도 없었고, 또 록펠러 센터에 있는 그의 또 다른 부조 작품은 문제 되지도 않았으니 작가가 무척 억울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가득한 민중의 분노 앞에서 논리와 대화는 통하지 않습니다. 결국 1968 년 그 부조는 현재의 <이탈리아>로 불리는 청동 부조로 교체됐습니다. 포도나무와 밀을 묘사하며 이탈리아의 농경 산업을 묘사한 부조인데 (아래 그림 오른쪽), 이제 논란을 일으킬 일도 없지만 동시에 사람의 시선도 끌지 못하네요.
대영제국 건물과 메종 프랑세스 사이에 보행자들을 위한 통로가 있는데,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 해협을 상징한다며 채널 (Channel, 해협) 가든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5번 애비뉴에서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록펠러 센터의 하이라이트인 록펠러 센터 플라자가 나옵니다. 여기에 위치한 많은 부조들은 색상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리온 솔론 (Leon Solon)이라는 예술가가 리 로리의 조각에 금박을 입히고 색을 더했기 때문입니다. 그 둘이 합작한 작품의 하나인 <인류의 스토리 (Story of Mankind)>도 록펠러 플라자에 위치합니다 (아래 그림). 인터내셔널 빌딩 입구의 부조인데 그림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 만화처럼 만든 전형적인 아트데코 작품입니다. 그 단순한 모양 하나하나가 인류 역사의 발전을 기록했다고 해서 리 로리가 이 작품을 "상형문자"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면 무슨 내용을 기록했는지 볼까요?
이 작품의 맨 아래에 인류를 구성하는 네 인종이 있고, 그 위에 항해술의 발전과 국제 무역을 상징하는 선박 그림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미술, 과학, 그리고 노동을 상징하는 세 인물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테크놀로지를 상징하는 로마의 신 머큐리 (Mercury)가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칼럼은 서로 대비되는 콘셉트를 그려 놓았는데요, 맨 아래 오른쪽의 사자는 과거의 왕정을 상징하고, 맨 왼쪽의 독수리는 공화국을 상징합니다. 그 위 왼쪽은 굴뚝이 있는 공장이 보이는데 미래의 산업을 상징하고, 오른쪽에는 고대 성벽이 있는데 과거를 상징합니다. 그 위 오른쪽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동양을 상징하고, 왼쪽에는 멕시코 아즈텍 사원을 묘사했는데 서양을 상징합니다. 그 바로 위에는 갈매기와 고래가 있는데 북쪽을 상징하고, 오른쪽에는 야자수가 보이는데 남쪽을 상징합니다. 상단에는 별들을 새겨 놓았는데 왼쪽은 북반구에서 항해사들이 이정표로 삼는 북두칠성, 그리고 오른쪽은 남반구 항해사들이 이정표로 삼는 남십자자리 (Southern Cross)를 묘사했습니다. 중앙 꼭대기에는 시계가 걸려 있는데 지구를 의미한다고 하네요.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많았습니다만 이 작품이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선박과 별자리로 상징되는 국제 무역과 세계화라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은 세계화라는 구호에 대한 반감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하는군요. 쇠퇴해 가는 미국의 제조업계, 그리고 늘어나는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고, 이는 이민, 무역, 그리고 세계화를 억제하는 방향의 정책으로 연결됐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지역에 따라 많이 다른데요, 뉴욕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찬양하는 록펠러 센터가 뉴욕에 위치한 것이 우연일까요? 뉴욕이라는 도시는 17세기 동물 가죽 무역을 하러 온 네덜란드 상인들이 정착한 이후 그 국제적 상업적 역량을 수백 년간 키워온 도시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로 가득한 곳이며 동시에 세계 자본 시장 및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반면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강한 남부 및 중서부는 미국 내에서 경제가 가장 낙후되어 있고요. 아시아에서는 쇄국정책을 가장 먼저 포기한 일본이 19세기부터 급속 발전했고, 중국은 개방정책을 시작한 1980 년 전후 고속성장을 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70여 년전 남과 북이 별 차이가 없는 문화적 배경과 인적 자원으로 시작해서 폐쇄적 자급자족을 추구한 북한과 세계화를 적극 받아들인 남한이 서로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70 년이 지난 지금 극명히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록펠러 센터의 <인류의 스토리> 앞에 서있노라면 그 예술 작품의 화려한 색상과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에 경탄하면서도 뉴스를 통해 들려 오는 반세계화 물결이 떠오르며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