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교는 그 오래된 전통에 걸맞은 고풍스러운 캠퍼스로 유명합니다. 일단 캠퍼스 정문을 들어서 걷다 보면 중앙에 작은 광장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에는 멋진 로마 여신상이 하나 있고, 그 뒤로 원형 돔 지붕을 하고 있는 로마 양식의 학교 본부 건물이 우뚝 서 있습니다. 로우 메모리얼 도서관 (Low Memorial Library)이라 명명된 건물입니다. 고풍스러운 미국 대학 캠퍼스 건물이라 하면 일단 유럽 중세를 전후해 발달한 고딕 양식을 떠올리게 됩니다만,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는 고딕이 아닌 로마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이 캠퍼스가 19세기 후반 뉴욕에 지어진 이유와 상관이 있습니다. 19세기라 하면 미국의 지식인들이 원형 돔이 상징하는 로마 양식 건물에 흠뻑 매료되었던 시기이거든요.
미국에서 원형 돔을 그 누구보다 더욱 사랑한 사람이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입니다. 제퍼슨은 소문난 책벌레였고 또 수려한 문장력으로 미국 독립선언서를 써서 이름을 떨친 인물입니다. 그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프랑스에서 대사를 하면서 유럽 문화에 흠뻑 빠지기도 했는데, 이탈리아의 16세기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 (Andrea Palladio)의 서적을 읽으며 아마추어 건축가의 길을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팔라디오는 개인 주택 건축에 로마 신전에서나 볼 수 있는 원형 돔과 기둥을 도입해서 건축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이탈리아의 빈첸자에 있는 "라 로툰다 (La Rotunda)"가 있습니다 (아래 그림, 왼쪽). 팔라디오는 자신의 책에서 라 로툰다 빌라가 몬티첼로 (Monticello; 작은 산이라는 뜻)에 지어졌다고 기술했는데, 이를 감명 깊게 읽은 제퍼슨은 미국에 돌아와서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원형 돔 지붕에 기둥이 떠받치는 세모꼴 페디먼트 (pedimen)가 있는 현관을 가진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새 집의 이름을 몬티첼로라고 불렀습니다. 제퍼슨은 얼마 후 자신의 집 근처인 샤를로츠빌 (Charlottesville)에 버지니아 대학교 (University of Virginia)를 창립했는데, 이 학교의 학교의 도서관 건물 역시 둥근 돔 지붕과 세모꼴 페디먼트를 가진 비슷한 구조로 지은 후 팔라디오의 빌라 이름과 비슷하게 “더 로툰다 (The Rotunda)"로 명명했습니다 (아래 그림, 중간). 제퍼슨 사후에 미국 정부에서 그를 기린다고 수도 워싱턴 DC의 저수지 옆에 제퍼슨 기념관을 지었는데, 이 건물 역시 원형 돔 중앙 건물과 그 앞에 세모꼴의 페디먼트를 가진 현관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 오른쪽).
제퍼슨은 팔라디오의 영향을 받았지만, 팔라디오는 로마의 신전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의 전성기 시절 훌륭한 공공건물은 모두 돌로 지어야 하는 암묵적 규칙이 있었고, 무거운 돌로 지은 건물들은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무게를 버티기 위해서 그리스 시대부터 석조 기둥을 촘촘히 세우고 지붕은 세모꼴 또는 납작하게 만드는 전통이 있었는데, 로마인들이 구조역학을 발전시켜 기둥이 촘촘하지도 않은 공간에 둥근 돔을 만드는 기술을 완성해 판테온을 지은 것입니다 (아래 그림, 왼쪽). 판테온 내부는 비싼 대리석으로 치장이 되어 있고, 지붕 자체는 콘크리트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 로마에는 폐허가 된 건물들이 즐비합니다만 판테온만큼은 굳건히 서 있으니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건축가들이 이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어갔습니다.
판테온이 원형 돔 건물의 할아버지라면 지금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두오모 (Duomo) 대성당의 원형 돔은 그 큰 형님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 그림, 오른쪽). 르네상스의 아버지 중 하나로 숭앙받는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lipo Brunellesky)가 로마에 가서 판테온을 연구한 후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의 돔을 완성시켰거든요. 1436 년 완공된 이 돔은 바깥 지름이 54 미터로서 6백 년이 지난 지금도 돌로 만든 원형 돔 중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구조물입니다. 커다란 원형 돔의 무게를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구조역학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외부의 원형 돔과 더불어, 그 바로 밑에 내부의 또 다른 돔을 만들고 이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여러 장치들을 설치했습니다. 원형 지붕을 일컷는 영어 단어 돔 (dome)은 이 두오모 (Duomo) 성당 이름에서 기원합니다.
두오모 성당의 원형 지붕에 감탄한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St. Peter's Basilica)이 그중 특히 유명합니다 (아래 그림, 왼쪽). 가톨릭교에서 최고 권위의 바티칸 성당도 원형 돔을 얹었으니 권위를 세워야 하는 다른 건물들도 원형 돔 디자인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유명한 예로 19세기 중반 세워진 미국 의사당 건물이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이라 하면 주철로 건물 뼈대를 만드는 기술이 생겼으니 원형 돔을 짓는 것이 더 쉬워진 시기입니다. 법을 만드는 미국 의회 의사당의 꼭대기에 주철로 된 원형 돔을 얹혀서 기독교의 성지에 버금가는 권위를 세우고자 한 것입니다 (아래 그림, 오른쪽).
원형 돔 건물을 논할 때 그 내부 벽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군요. 로마 판테온 돔 천정에는 지름 9 미터의 구멍이 있는데, 이를 라틴어로 눈을 뜻하는 오큘루스 (Oculus)라고 부릅니다 (아래 그림, 좌측 상단). 이 구멍을 통해서 햇볕이 들어오는데, 이것이 해 시계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구조 역학적인 이유 때문에 구멍을 메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뚫려 있는 구멍 때문에 비가 오면 그 빗물이 그대로 판테온에 들어오는데, 그 대리석 바닥에 배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문제는 없다고 하네요.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그 구멍이 없는 대신 돔 꼭대기에 큐폴라 (cupola)라고 부르는 전망대를 설치했습니다. 이 큐폴라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성당 내부에서 돔을 바라보면 마치 판테온 천정처럼 뚫린 구멍이 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빛이 들어오는 큐폴라 주위에 천국을 묘사했습니다 (아래 그림, 우측 상단).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판테온의 오큘리스와 일맥상통하는 디자인입니다. 그 이후 생긴 원형 돔의 천정 벽화 중에서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것으로서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 파르마 대성당 (Catedrale di Parma)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 (Assumption of Santa Maria)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 오른쪽 하단). 원형 돔의 내부 표면에 원근법을 사용해서 성모 마리아가 정말 끝없이 높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입니다. 이렇게 돔 내부에 착시를 불러일으키도록 그린 벽화 스타일을 이탈리아어로 "아래에서 위로"라는 뜻의 디소토 인 수 (Di Sotto in Su)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미국의 의사당 건물에도 이러한 천정 벽화가 있습니다. 미국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나라이니 여기에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는 모습을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이탈리아의 원형 돔을 사랑한 이들이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벽화가를 고용해서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구름 위로 승천하는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아래 그림, 좌측 하단).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들어서 미국인들의 로마 건축 양식 사랑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주요 도시에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 다수 있습니다. 수도 워싱턴 DC 에는 제퍼슨 메모리얼 외에도 미국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1916 년 지어진 메사츄세스 공과대학 (M.I.T.)의 바커 도서관 (Barker Library) 역시 로마 판테온 디자인을 차용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내부 돔 구조가 로마 판테온과 상당히 비슷한데,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 하면 판테온의 오큘루스가 뚫려 있는 반면 바커 도서관의 오큘리스는 유리로 덮여 있다는 정도입니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로우 메모리얼 도서관은 판테온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대로 흉내를 낸 다른 건물들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다. 분명 지붕은 원형 돔 모양이고, 또 고대 로마 풍이 물씬 나지만 그 외의 디자인은 여러 면에서 독특하거든요. 현관에 세모꼴의 페디먼트가 없고, 또 둥근 돔 밑에 멋진 창문이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건물을 디자인 한 사람이 19세기 후반 미국 최고의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던 찰스 맥킴 (Charles McKim)인데, 판테온에서 영감은 얻되, 조금 더 창조적인 설계를 하려 노력한 듯합니다.
왜 19세기 대학교 캠퍼스 건축가들이 로마의 판테온 양식에 끌렸을까요? 19세기는 화석이 발견되고, 진화론이 확립되고, 또 인류의 역사가 지구의 역사보다 훨씬 짧다는 사실이 확립되던 시기입니다. 이러한 발견이 나올 때마다 글자 그대로의 성경 이야기를 신봉하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학자들 간에 논쟁이 일어나곤 했지요. 그런 환경에서 일부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원류를 유럽의 기독교보다는 그 이전의 그리스 로마 전성기에서 찾으려는 트렌드가 강해졌습니다. 자신들에게 잔소리할 그리스 로마 제사장은 현시대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들에게 판테온을 연상시키는 원형 돔은 종교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겠다는 지식인들의 마음을 상징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