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의 [Bye bye my blue]라는 노래와 함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외로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즐기고,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외로운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둘은 참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다. 혼자인 것과 혼자 있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혼자 있는 것은 좋지만, 혼자이고 싶지는 않다. 혼자인 것은 어딘가 쓸쓸하고 슬프다. 마치 쌀쌀한 가을날,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고 입은 외투가 불어오는 바람과 찬 공기를 막아주지 못하고, 옷과 나 사이의 공간을 나의 체온에서 비롯한 온기로 채우지 못하는 날의 느낌이다. 조금 후회되고,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어깨를 펴고 걸으려 해도 몸은 긴장을 쉽게 풀지 못하고, 이렇게라도 몸을 움직여서 열을 내려는 것인지 근육의 미세한 떨림들은 한 걸음 한걸음 내 의지인지 아닌지 모르게 계속해서 느껴진다. 그런 날은 그런 상태로 걸을 수밖에 없다. 찬 기운이 팔뚝과 등을 감싸고 있으면, 어딘가 따뜻한 곳에 들어가도 쉽게 찬 기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운이 길다. 혼자인 것은 뭔가 그런 느낌이다. 쉽게 지치고, 즐기기 힘들다.
혼자 있는 것은 조금 다르다. "혼자 있음"은 어딘가 든든하다. 조금 귀찮지만, 나를 잊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다정한 괴롭힘을 보고 있으면 조금 신경 쓰이면서도 어딘가 든든하다. 분명 혼자 있고 싶고, 아무도 나에게 연락하거나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면서도, 나를 불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보고 나면 이상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이상한 든든함이다. "혼자 있음"은 사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혼자 있으려 한다라... 말이 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 절벽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절벽에서 떨어져 보는 건가?
잠깐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혼자 있고 싶었고, 내가 혼자라고 생각할 때도 혼자 있고 싶었다.
사람과 너무 가까이 있다 보면, 잠시 혼자 있고 싶다. 기준은 내가 어디에서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를 때인 것 같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순간 사람은 뭐랄까? 현타가 온다. 내 경우에는 뭔가 바쁜 일을 막 하고 있는 도중에 보통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일을 하다가도, 뭔가에 집중을 하다가도, 목적을 잃고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질문을 하면서 길을 잃으면 혼자 잠시 숨을 쉴 때가 된 것이다. 머리가 웅웅 거리는 느낌이나, 인식할 수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이미지와 생각들에서 벗어나 조용히, 가만히 있다가 다시 질문을 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왜 하고 있나.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물론 답은 잘 나오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냥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혼자 있음"의 시간이 나면 조금 편해진다. 그러고 나면 관계일 수도 있고, 일일 수도 있고, 목표일 수도 있는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도 있고, 진행할 수도 있다.
내가 혼자라고 생각할 때의 혼자 있음은 훨씬 더 조용하고 무겁다. 머릿속이 어둑어둑하게 되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모든 것이 껍데기 같을 수도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시간을 애써 더 조용하게 보내고 있다 보면 마음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까맣고 깊은 마음을 잔잔하게 들여다보고 그 안에 빠지고 나면, 깊게 깊게 가라앉기도 한다. 혼자서 그 무거운 마음에 빠져 그 속에서 반항도 하지 않고,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 속을 다 마주하다 보면 다양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밉고 야속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힘들어도 하나둘씩 받아들이고 솔직히 마주하다 보면 슬픈 편안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또 그렇게 한참 있다 보면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어떤 마음이 그렇게 나를 서럽게 했을까 생각하다 보면 또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난다. 나를 조금 달래주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같은 기억을 수도 없이 마주 보기도 한다. 솔직히 이때도 역시 답은 잘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깊은 바다에 빠졌다가 옷이 다 젖은 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해변으로 빠져나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때도 역시 그냥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깊이 빠져드는 마음은 어딘가 쓸쓸하지만 역시 방해받고 싶지는 않다. 깊은 마음에서 억지로 한순간에 밝은 밖으로 나오려 하면 나중에는 더 깊이 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나에게 그런 시간을 조금 허락해 주면 된다. 그런 쓸쓸함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고 나면 뭔가 퇴원을 한듯한 느낌이다. 피곤하고 초췌해져도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또 가끔 그곳에 빠져드는 시간이 찾아오기도, 가끔은 길게 빠져있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퇴원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퇴원을 하면 힘든 일이 넘쳐나는 이 세상을 조금 더 무던하게 버텨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별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내 삶이 너무 감사하고 만족스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만족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내가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어!" 하는 것보다는 이미 너무 차고도 넘치게 만족된 상태이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는 게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다. 내 삶에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아서 그냥 이 시간이 너무 만족스럽다. 정말 말 그대로 "압도적 감사"이다. 당연하지 않은 수많은 하루, 언젠가 사라질 수많은 인연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너무 슬프면서도 감사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자주 보다 보니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그냥 하루하루가 보물처럼 느껴진다. 물론 매일 매 순간을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즐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처럼 보내지는 않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진실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힘든 순간에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하면서 짜증이 나려다가도 '이게 뭐라고' 한다. 나는 정말 이게 뭐라고 내 소중한 하루와 시간을 안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그냥 이 불안정하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하루가 잘 시작되고, 잘 끝나간다 것 자체로도 너무나 큰 복인데 말이다. 누군가는 복에 겨운 소리 나 덜 힘들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만족이 당신의 만족을 빼앗아서 이룬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면 정말 진심으로 바라건대 당신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우리가 지나 보낸 이미 사라져버린 그 수많은 시간들 중 우리는 어디의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걸까? 언젠가 사라질 이 시간들을 우리는 또 언젠가 그리워할지도 모르면서 너무 쉽게 사라지게 두는 것은 아닐까? 물론 소중하게 보낼수록 나중에 느낄 슬픔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때가 오면 또다시 우리는 혼자 있고 싶을지 모른다. 잠시 혼자 있고, 또 그렇게 무던히 버텨내면 된다. 우리는 그 모든 사라짐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순간의 시간이 기나긴 날들을 만들듯 나는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