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 下

by 구육오

너드커넥션의 [Back in Time]이라는 노래와 함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무 뻔하고 모두가 아는 글을 쓰는 것이나 말을 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틀려서가 아니다. 그건 아마 너무나 맞는 말일 것이고, 아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나 크게 깨달았기 때문에 더욱더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듣는 사람도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알게 되는 그 순간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그 말이 그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청력 테스트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그런 말은 의미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필요한 말, 중요한 말이라고 해도, 올바른 시기에서 벗어나면 그 의미는 퇴색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다. 들을 준비와 때가 된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것이 훨씬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그 타이밍을 알기 힘들다. 나와 상대의 타이밍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런 말들은 보통 잔소리, 와닿지 않는 뻔한 말들로 느껴지기 마련이고, 그런 경험을 나도 너무 많이 해봤다.


그런데 지금은 그 뻔한 소리를 한 번 해보아야겠다. 이건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그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 놓기 위한 것들이니까, 목적이 조금 다른 것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아마 지금 내가 할 말은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너무 뻔하고 당연하고 확실한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에는 순서도 기약도 없다.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건강하고, 아무리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나라고 해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너무나 명확하다. 모두가 아는데, 참 많은 사람들이 그걸 까먹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나도 그렇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는데도 늘 갑자기인 것처럼, 늘 무섭게만 느껴진다.


나는 외동이다.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걱정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떠나간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나는 조금 많이 힘이 들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주고, 나와 밥을 먹고, 나와 수많은 이야기를 한 그 기억들이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그런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꽤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함께 갔던 장소들, 내가 자란 동네, 그런 시간들이 떠오르는 모든 것들을 마주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이 들것 같아서, 그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이 살고 싶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수많은 그리움의 시간을 견디는 내 옆에 그 시간을 함께 기억하고 떠올려주고 이야기해 줄 그 누군가가 남아 있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은 대체 어떤 기분일지 나는 상상만 해도 힘이 든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부디 그 시간이 왔을 때, 나의 슬픔에 내가 잡아먹혀 내 주변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준비나 대비를 할 수도 없이 찾아올지도 모를 그날을 상상하고 있으면, 울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오늘 아침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문을 열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혼자인 사람이 아니라면 너무 좋겠다. 내가 돌아왔을 때, 아마 영원히 준비할 수 없을 그날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문을 열고 떠났다. 당연하지 않은 하루들은, 그 커다랗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시간들은 나를 겸손하게 하고, 아득하게 하고, 감사하게 한다. 나는 오늘도 기회를 얻었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나와 함께 살고, 나를 만들어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할 기회를 말이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알면서도 또 모르는 척 살아가고 말았다. 마치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았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지나가는 하루들이 수도 없이 쌓였고, 오늘 나는 거기에 하루를 더하고야 말았다. 이게 뭐라고 안 하는지, 답답하다.


우리는 내일 또 기회를 얻을 것이다. 아니,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하루들이 수도 없이 지나가고 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사라지면 슬플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 주변뿐 아니라, 나 또한 그렇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 모든 것들과 이별할 것이다. 그때가 왔을 때, 나를 위해 슬퍼해줄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정말 큰 욕심이지만, 그들이 나를 떠올려주며 나를 추억했을 때, 부디 내가 그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었던 사람이길 바란다. 나의 미소로 그들의 하루에 조금의 행복을 더해준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미처 해본 적 없는 생각과 말들로 그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사람이길 바란다. 나쁜 기억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를 위한 슬픔이 아깝지 않게 느껴지는 사람이길 바란다. 너무나 큰 욕심이겠지만, 부디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나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에게 감사한다.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감사한다. 내 삶이, 행복한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길 바란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그 하루들이 내가 느꼈던, 그리고 느낄 모든 행복을 앗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내 하루들을 소중히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 행복한 하루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하루들을 영원처럼 행복하게 누려야겠다. 당연하지 않은 모든 하루들을 행복하고 감사하게 보내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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