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윤슬이 싫다.

by 구육오


백아의 [내가 사랑을 했던가 이별을 했던가]라는 노래와 함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끔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책을 읽다 보면 표현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단하지 않은 단어들로 번뜩이는 감동을 받는 경우에 특히 그런 생각을 한다. 시나 가사, 누군가의 대사에서 그런 것들을 발견할 때가 가끔 있다. 나는 짧은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예전엔 오히려 짧게 시로 마음을 적어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잘 못하겠다. 나는 시를 쓰려고 마음먹으면, 뭔가 예쁜 단어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그게 아니라면, 공감각적인 표현들을 만들어내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런 표현들은 쓰고 나면 늘 '조금 과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표현들을 참아내면서 내 생각은 다 담은 짧은 글을 짓는 것이 참 어렵다.

나는 대놓고 예쁜 표현이나 대놓고 꾸며낸 표현은 쓰고 싶지가 않다. 예쁜 표현이 좋긴 한데, 음... 대놓고 예쁘면 덜 예뻐 보인다. 가끔 단어 자체가 '나 예쁘지?'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 단어들은 뭔가 너무 많이 예쁘게 사용되고, 누가 써도 어느 정도 예뻐 보이기 때문에 비유하자면 조미료 같다. MSG를 사용한 음식이 맛있기는 쉽지만, 푹 고아 낸 사골이나 좋은 재료를 잘 다듬어서 정갈하게 담아낸 식탁에 마음이 더 끌리는 것처럼, 쉽게 예쁜 단어들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감상을 너무 쉽게 표현해버리는 느낌인 것 같다. 난 분명 더 아름답게, 더 감동적으로 느꼈던 것 같은데, 내 맘에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납득할 정도의 표현을 하고 나면, 꼭 버려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만 같다. 그럼 나는 그 마음들이 아쉬워 또 글을 길게 적게 된다.

짧은 글을 쓸 때는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로 만들고 싶은데, 난 그 빼기에서 미련이 생겨버리고 그 아쉬움이 글에 남아 티가 나는 것만 같다. 짧은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짧은 글은 정말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덜어내면서도, 내가 한 표현에 거창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 마냥 뽐내지 않는, 쉽게 이해되지만, 자꾸 반복해서 읽게 되는 글이 쓰고 싶은데, 참 쉽지 않다. 가끔은 좀 억지로 창의적인? 예를 들어 '의외의 두 단어만 잘 이어붙이면 자신의 마음이 멋지게 표현된다고 생각했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하는 글을 볼 때가 있는데, 그런 글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냥 "뭔 소리야" 하고 다시 눈이 가지 않는다. 쉽고 매력적인 글을 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냥 평범한 말들로 담백하게 쓰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다.


다른 사람의 글에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요즘 보이는 글에서는 감동보다는 꼭 현대 미술 같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냥 봤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감동을 받는 글은 보통 다 드러내지 않고, 그렇다고 다 숨기지도 않으면서, 가볍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대놓고 의도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설명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나대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단단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내가 감동받는 글은 어떤 글인지 생각하면서 적어봤는데, '이게 오히려 현대 미술스럽나?' 하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한다. 사실 내가 쓰고 싶은 글도 그런 글이다. 현대 미술 같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정리하고 보니 현대 미술처럼 보이는 글... 앞뒤가 안 맞는다. 아마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 모호함에 사로잡힌 상태인가 보다. 현대 미술 같은 글을 안 좋아하면서도 결국은 나도 똑같은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다. 아마 그런 현대 미술 같은 현대 글(?)을 쓴 사람들도 어쩌면 나랑 비슷한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도했던 것은 아닐까? 현대 미술이나 현대 글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 조예가 많이 모자라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보통 내가 느끼는 것들을 하나하나 꼭꼭 씹어서 다 담아내고 싶어 한다.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가 않다. 아쉬움이나 찌꺼기가 안 남는 글을 쓰고 싶어서 자꾸 고민하고 자꾸 길어진다. 쓰고 났을 때 마음이 탁 놓이는 수준이 될 때까지 반복하기도 하고 마구 나열하기도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진다. 함축적인 글을 쓰는 게 나에겐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그게 참 멋있어 보이는데, 참 어렵다. 그렇다고 일부러 짧게 써보면, 음. 너무 무겁다. 단어 하나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 해서 한 줄 한 줄 넘어가는 것이 버겁다. 그렇게 현대 미술이 되어버려 나조차도 다시 읽지 않는 글이 될까 걱정되어 대부분은 그냥 맘 편히 길게 쓰게 된다.


나는 '윤슬'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그 단어를 20대 중반쯤이었을까? 꽤 늦게 알았는데, 그냥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뭔가, "나는 윤슬이야, 나는 물이 엄청 반짝여, 예쁘지?" 하는 느낌? 내가 봐온 물이 반짝이는 모습은 '윤슬' 두 글자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 풍경들은 윤슬이란 단어에 담기기엔 나에겐 더 큰 감동이었던 것 같다. 아마 나는 그 단어가 미처 다 담지 못한 풍경이 아쉽고 눈에 밟혀서 그 단어를 싫어하는 것 같다. 물론 그냥 내가 그 단어가 가진 훨씬 더 뛰어난 모습을 다 알아볼 만큼 그 단어를 음미하지 못해서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 단어가 활용되는 글 중에서 나와 감성이 맞는 글은 그렇게 많이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는 주로 활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은 순우리말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순우리말이 아니어도 그냥 꾸밈이 많이 들어간 느낌을 주는 단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한글이 싫다거나 외국어, 외래어에 너무 익숙해져서 우리말 단어들을 쓰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의미를 알지 못하는 단어에 대한 어색함에서 비롯된 거부감 같기도 하고, 그 단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왜인지 모르게 꾸며낸 단어 같다'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 내가 그 단어들이 쓰인 글에 아쉬움을 느낀 적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조금 삐뚤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누군가 그 단어를 쓰는 상황을 혼자 상상해 보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우연히 알게 된, 혹은 이미 알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다 담기엔 조금 모자라지만) 예쁜 단어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다면 찾아냈을지 모를 어떤 표현을 대신한 느낌이다. 그래서 MSG 같다.(사실은 너무 천연재료라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건가?)

물론 그 단어를 사용한 사람은 그 단어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을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원하는 글이 내가 모르는 단어가 없는 어렵지 않은 글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가 안 먹어본 맛이라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네가 진짜 잘하는 집을 못 가봐서 그래"), 오히려 그 단어들을 몰랐다면 더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되었을 수많은 감정이나 장면들이 예쁜 단어들에 담겨 제 모습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탈락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것을 제한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수많은 '윤슬'이 아니었다면, 다양하게 표현되었을 수많은 반짝이는 물들이 아쉽다. 나에게 잘 쓰인 글은 그런 특별한 단어 없이 누구나 아는 표현으로 새로운 감정을 주는 글이다.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만, 평범한 재료로 특별한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들의 표현을 보면 딱 알 수 있다. 누구나 아는 단어들로 어른들은 생각하지 못한 표현을 해낸다. 정말 감탄이 나온다.


어쩌면 언어가 편견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어나 글을 배우고 나면, 그것을 사용해서만 말하게 된다. 조금 틀에 박히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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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충 빨주노초파남보의 색을 안다고 했을 때 이 사진에서 그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 조금 더 많은 색을 볼 수도 있다. 빨강, 다홍, 주황, 노랑, 연두, 초록, 청록, 연두, 파랑, 남색, 보라. 더 많은 색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많은 색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름 붙인 것들을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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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사진에서 우리는 몇 가지의 색을 찾아낼 수 있을까? 몇 가지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정말 많은 색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위 사진의 10분의 1지점의 색과 10분의 2지점의 색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름을 붙인 것을 구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빨강부터 주황까지 몇 개로 나눠서 이름을 붙일지는 그냥 우리가 정해놓은 것일 뿐, 실제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색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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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만 봐도 같은 핑크는 없다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난 무슨 핑크가 어떤 핑크인지 이름은 알 수가 없다. 분명 다 다른 색인 것을 알지만, 그냥 핑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름을 모르면 그냥 다 같은 이름의 핑크로 불리게 된다. 저 핑크들의 이름을 모두 다 알게 되어도 결국 마찬가지이다. 이름 모를 핑크는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윤슬이 싫다. 내가 본 반짝이는 물은 새벽과 밤이 달랐고, 여름과 겨울이 달랐고, 동쪽과 서쪽이, 강과 바다가 달랐다. 다 다른 물의 반짝임이었지만, 윤슬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순간 그 반짝임 들은 모두 윤슬이라는 이름에 갇히고 말게 되었다. 수많은 무한한 반짝임이 단 두 글자 속에 갇히게 된다니.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그래서 나는 그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아날로그처럼 이어지는 우리 삶에서, 디지털처럼 아무리 많은 순간순간에 이름을 붙여도 버려지는 부분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순간을 다 잡을 수 없기에, 디지털의 한 칸이라도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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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슬이 싫다. 내가 잘 쓰지 않고, 그 깊은 뜻을 몰라서 그런 것일지 모르지만, 난 그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가끔은 툭툭 내뱉는 말에 담긴 진심이 더 감동을 주는 것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정갈하고 깔끔한 단어들이 주는 솔직한 마음이 난 더 궁금하다. 예쁜 단어들을 사용하고, 이해하기엔 내가 아직 부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예쁜 글은 좋아하지 않는다.(예쁜 글씨는 좋아한다.) 나에게 대놓고 자신의 예쁨을 뽐내는 것은 잎사귀보다 더 빨리 피어나, 빨리 나를 보라고 말하는 듯한 봄꽃들이면 충분하다. 차분히 가만있어도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거창한 표현 없이도 진심이 담겨 자꾸 눈이 가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자연스럽고 조용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당신의 윤슬과 나의 윤슬은 같을 수 없어요. 당신의 윤슬은 어떤 색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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