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너무나 빠듯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꽤나 고민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정말 여유를 가지라고 속 편히 이야기해도 될까', '남의 사정도 모르고 무슨 여유는 여유냐.'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고민했다. 당장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든 하루를 사는 사람에게 "여유를 가지세요. 너무 마음이 급하신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진 않을까 고민했다. 내 상상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행복한 삶이 아니라, 그냥 삶 자체의 무게가 무거운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도, 공간도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 글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을까? 여유가 아니라 당장 5분도 쉴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주제넘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상황도, 마음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나의 삶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글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화가 날 수도 있다.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임이 맞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 자신을 돌볼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긴 여유 시간을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아픈 곳은 없는지, 자신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알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힘든 삶에서 조금이나마 행복이 함께 하는 순간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삶에는 여유가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여유가 있어야 자신과 자신의 하루를 돌아볼 수 있고, 거기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그냥 말 그대로 마음에 여유가 없어 보인다. 시간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남은 공간이 부족해서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일부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즉각적이고 극단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뭐랄까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일단 가장 처음 든 생각이나 감정을 표출하거나, 과해 보이는 결론을 내린다. 휴리스틱에 과하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특히 운전할 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운전을 할 때는 항상 위험할 수 있어서인지, 아니면 늘 바로바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여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차에서 내리면 아마 그 사람들도 온화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만 아니라면 분명 그들도 더 여유롭게 더 멀리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돌보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나는 알고 싶고, 알아주고 싶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볼 수 있고, 그것이 나를 평안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평안했으면 좋겠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불안한 상태라면 타인을 위한 시간을 쓴다고 해도 분명 그 뒤에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평안이 1번이다. 내가 평안해야, 내가 여유로워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까. 평안은 여유를 동반하고, 그 여유는 내가 더 넓게, 더 멀리, 더 깊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타인을 도울 수 있다. 힘든 상황에서 함께 힘을 내면서 서로를 위기에서 구하는 상황은 더없이 감동적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상황에서 나만 살겠다는 뜻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은 둘 다 위험한 상황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안전한 상황일 것이라는 뜻이다. 절벽에 같이 매달려있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라도 위에 있는 상황이 더 나으니까 나의 상태를 평안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나'는 자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씩 떼어내 만들어진 인격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그렇다면 온전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서 답답하고 우울했지만, 이제는 그냥 그게 나라는 생각을 한다.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보라가 나온다. 보라는 어쨌든 빨강과 파랑과는 다르다. 같은 빨강과 파랑을 섞어도 비율에 따라 늘 다른 색이 나오는 것처럼 그냥 그게 나라고 해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냥 내 색을 예쁘게, 내 맘에 들게 만들면 그뿐이다. 모두가 그렇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왔을 수도, 전혀 반대로 가져왔을 수도 있지만, 분명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들의 모습에 행복이 가득하다면, 그들을 조금씩 닮은 나 역시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이기적 이유로 내 주변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 주변의 힘듦을 해결하고 싶다. 나는 감사하게도 타인의 힘듦이 해결되는 모습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타인의 고통에서 기쁨을 얻는 사람이 아니라서. (양심상 모든 경우에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주변인의 행복은 분명 나를 조바심 나게 만들 때도 있지만,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을 빼앗은 것이 아니기에 별로 상관없다. 누군가가 행복하다고 내가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설령 내가 손해를 봐도 행복한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주변을 돕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보험을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만 보면 주변을 엄청 돕는 것처럼 써놨지만, 그렇지는 않다.) 나에겐 내 상황이 괜찮을 때 다른 사람을 돕고, 내가 힘들 때 누군가 나를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나 보다. 내 주변이 모여서 만들어진 게 나니까, 내 입장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그물 같은 것을 만들어 나간다고도 볼 수 있겠다. 찢어진 곳은 없는지, 헤진 곳은 없는지 살피고, 도움이 필요하면 돕는다. 그것은 결국 나를 돕는 것이다. 나의 그물이 탄탄하면 내가 조금 찢어지고 헤져도 완전히 무너져내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일들을 하려면 역시나 여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여유는 어디에서 올까? 직관적으로 떠올려보자면, 역시 시간이다. 시간이 있어야 여유로워질 수 있다. 마음을 돌아볼 시간, 출근길에 신호 3번 정도 더 걸려도 지각하지 않을 시간, 퇴근 후 집에서 혼자 생각할 시간, 잠들기 전 잡생각을 할 시간, 내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을 왜 했는지 떠올려볼 시간,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생각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게 어렵다면 역시 "생각할 시간이 없다."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자기 생각을 조금 깊게 들여다보려면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엄청나게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자신의 하루에 자신을 위한 시간이 조금도 없다면, 무언가 잘 못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힘든 일을 다 미루고 여유를 가지라는 말은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여유를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가지는 여유는 자칫 태만이나 나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유 시간을 가지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시간이 생기면 자꾸 쇼츠랑 릴스를 보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서 시간을 벌어놓고, 그 시간을 왜 자꾸 시간 죽이는데 쓰는지는 모르겠다. 반성이다.
그럼 여유를 위해 필요한 게 또 하나 따라온다. 스마트폰을 보지 않을 공간이나 상황이다. 요즘에는 차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이렇게 글을 쓸 때도 스마트폰을 잘 보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보면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못 한다.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도 없다. 스마트폰은 하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누구에게나 연결될 수 있는 스마트폰은 나의 물리적 공간을 무시하고, 나를 그 안에 있는 메신저, SNS 등의 공간으로 데려간다. 공간을 이동하는 시간이 엄청 짧을 뿐이지 분명 "정신이 딴 데 가 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도 분명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지만, 3시간을 봐도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없는 도파민 영상들은 여유에는 도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여유는 마음의 여유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육체적 휴식이라면 스마트폰을 보다가 잠에 들어도 상관없겠지만,(스마트폰 불빛도 육체적 휴식에 도움이 되지는 않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이 원하는 것이 킬링 타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삶에 도움이 되는 마음의 여유를 스마트폰에서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에 마음의 여유는 화를 내지 않을 때, 조금 더 많은 순간에 감사하고, 감동받을 때, 천천히 걸을 때,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자세히 볼 때, 가만히 있을 때,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찾아오는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며 생각을 발산하고 정리하는 시간도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여유로운 순간은 그 순간 자체도 좋지만, 그 순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 여유로울 확률이 높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편견을 100% 다 무너뜨리지는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를 위한 여유를 가지는 것은 마치 나만을 위한 선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돈이 많으면 많이 베풀 수 있다. 자신이 살면서 받은 도움에 보답하기 쉽다. 물질적으로 여유로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다른 것으로 환산된다. 돈, 마음, 정성 같은 것들 말이다. 돈을 쓰는 것과 시간을 쓰는 것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더 귀하다. 그렇게 귀한 것을 나를 위해 쓰는 것, 그것이 여유다.
시간을 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쩌면 여유는 시간을 온전히 지배해서 쓰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 사람만이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여유는 자유를 가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게 아닐까? 만약 어떤 상황에 휘둘린다면, 그러니까 그 상황 아래에 자신이 있다면,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상태가 변할 것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람은 그 상황에서 자신의 상태를 선택할 수 있다. 그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말이다. 모든 상황을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 나의 태도와 행동은 선택할 수 있다. 뭔가 마음가짐만 다를 뿐, 두 사람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원래 그 마음가짐이라는 것으로 인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상황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일상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무엇인가에 과도하게 자신을 끼워 맞춰야 하는 경우인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많다거나,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말이다. 마치 그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질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 여유를 해칠 일은 아니다. 급한 일이 있어도 누워서 잡생각을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 상황만이 내가 가진 유일하고 중대한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다 보면, 분명 다른 무언가를 놓친다. 원인이 아니라 증상만 해결하게 될 수도 있다. 여유가 있어야 많은 것을 고려할 수 있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다. 급하면 무언가를 놓친다. (물론 급한 일은 급하게 해야 한다. 급한 일을 처리한 후 다시 천천히 살펴보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여유를 가지는 것과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다르다.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단, 급한 일, 중요한 일을 해결하는 것도 분명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렇게 급한 일은 여유를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여유를 가지면 삶에 더 쉽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고, 더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내 삶에, 그리고 그 과정에 따라오는 것이지 절대 목표가 아니다. "여유가 있다." 이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가? 여유로운 상태, 여유로운 마음, 여유로운 시간, 여유로운 잔고(?) 그런 것들을 가진다면 조금 더 많은 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마음이 급하면 감정도 급해진다. 화를 내기 쉬워지고, 예민해진다. 화를 내면 기분이 좋지 않다. 정당한 화를 내도 기분은 좋지 않다. 속이 후련해도 기분은 좋지 않다. 분노나 화는 꼭 필요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 삶에서 우선순위로 취해야 할 감정은 분명 아니다. 그것이 비록 일을 쉽고 빠르게 해결할지는 몰라도, 분명 다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니 나에게 시간이 있다면, 그리고 그럴 상황이 허락된다면 부디 여유로운 삶을 살기 바란다. 나의 여유를 나눌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 나무와 꽃, 태양과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삶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들에서 감사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타인을 위함이 결코 나를 위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길 바란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숨어있는 진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길 바란다. 늘 더 멀리, 깊이, 넓게 볼 줄 아는 사람이길 바란다. 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런 여유가 있는 삶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