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우리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목련은 어느 가정집 화단에 있는데, 3층 높이가 넘는 키를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누가 심었는지, 그 집에는 누가 사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그 나무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집은 차가 두 대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에 있는데, 내가 지하철을 타러 가는 방향으로 따지자면 왼편에 있다. 목련을 찍을 때는 항상 길 오른편에 있는 좁고, 진한 회색인 경계석 위에 올라선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에게 표시가 되어주듯 그 경계석은 모서리가 깨져있었는데, 항상 그곳을 밟고 그 집 옆에 있는 간판이 살짝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다. 그곳에 차가 세워져 있거나 해서 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 날은 다르게 찍기도 하지만, 항상 비슷하게 찍으려 노력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1년이 넘게 그곳을 지나며 목련을 찍었는데, 가을이 되고 잎이 떨어진 뒤부터 겨울까지는 마치 죽어있는 듯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씩 초록을 보여주고, 어느새 꽃을 피우곤 한다. 역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꽃이 만개할 때지만, 가장 강해 보이는 순간은 꽃이 떨어지고 잎이 피어날 때는 생명력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목련을 바라보면서 나는 꽤 많은 생각을 했다. 봄이 되면 그렇게나 커다란 나무이면서도 마치 나를 봐달라는 듯,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나리도 벚꽃도, 봄꽃들은 대부분 그렇지만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난다. 그 모습이 마치 예쁜 옷을 입었다고 다른 것들을 다 무시한 채 달려와서 "나 좀 보세요!" 하고 자랑하는 유치원생 같다고 생각했다. 빨리 나의 예쁜 모습을 보고 칭찬해 달라고 말하는 철없는 예쁜 아이처럼 말이다. 미워할 수도 없고, 예쁘게만 보인다. 목련도 항상 그때가 되면 주인공이 되었다. 그곳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하는 것을 목련은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 밤에 바라보는 하얀 꽃은 여느 나무에 뒤지지 않게 정말 아름답다. 그렇게 몇 번인가 비를 맞고 나면 꽃이 질 때가 된다.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도 꽤나 아름답긴 하지만, 목련 꽃은 떨어지고 나면 마치 바나나 껍질처럼 변해 금세 더러워진다. 물론 나는 남의 집에 있는 그 꽃잎을 건드려본 적은 없다. 집주인분의 고생이 아마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계절이 지나고 꽃이 모두 떨어지고 날씨가 더워지면 목련은 더욱 힘차게 자라날 준비를 한다.
딱 여기까지다. 목련이 주목받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꽃이 지고 나면, 목련은 다시 배경으로 돌아간다. 길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바라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모든 과정을 못해내진 않았겠지만, 바라봐 주고 싶었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을 때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목련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꽃이 없어도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면 목련도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목련에게 그런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은 내가 그런 것들을 원하기 때문이었나 싶기도 하다. 아니면 벚꽃만큼 인기가 있지도 않고, 많은 사람이 볼 수도 없는 곳에 있는 나무이지만, 나에게 행복을 줬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목련을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생명이 그러하듯, 목련도 언제 변했는지 언제 자랐는지 모르게 조금씩 변해간다. 목련은 비록 길가에서 좁은 화단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지만, 산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 못지않게 좁은 땅에서도 잘 자라 초록을 뽐내었다. 여름이 되면 잎이 두꺼워지고, 색이 진해진다. 높은 곳부터 햇빛을 받아 아래쪽은 푹푹 찌는 한 여름이나 되어야 잎이 자라난다. 조금씩 자라나 매일 변한다. 날씨가 좋은 날 아침에 사진을 찍으면 청량한 포스터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사진으로만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은 꽤나 요란하게 잎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이 들 것 같아 따로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내가 키우는 나무가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잎이 모두 피어나고 나면 늦은 여름까지는 또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아래쪽에 있는 가지에서 언제 잎이 나올까 바라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항상 그대로 유지된다.
너무 당연하지만 가을이 되면 잎이 떨어진다. 조금씩 조금씩. 잎이 떨어질 때도 비가 지나가고 나면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이 변할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가을을 타는 입장에서 목련이 주는 쓸쓸한 느낌을 좋아한다. 비가 오는 퇴근길에 목련을 쳐다보는 것은 운치가 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잡생각이 많은 나는 그런 시간이 참 감사하다. 잎이 모두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정말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제와 같은 모습에 사진을 찍지 않는 날도 조금씩 늘어난다. 앙상한 모습을 보면 죽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길가에도 그런 나무들은 많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다. 봄이 오면 다시 어린아이처럼 생생하게 살아나게 되리라는 것을.
목련은 내가 그렇게 바라본 것을 알고 있을까? 참 이상하다. 바라본 것은 난데, 더 많은 것을 얻은 것도 나다. 봄이 어느 정도 왔는지, 바라본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뜻깊은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배운다. 멈추지 않는 법도, 어려움을 견디고 견디고, 주인공이 아닌 순간을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한 번은 그 누구보다 밝고 환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배운다. 그런 순간이 지나고 다시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시간이 왔을 때도, 변화를 멈추지 않고 또 한 해를 살아내면 다시 그런 순간이 온다는 것도 몸소 보여준다. 바라보기만 해도 정이 든다는 것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운다. 유명한 그 시처럼 말이다.
목련도 나를 바라봐 주었을까? 목련이 보는 나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목련도 나를 보며 무엇인가를 느꼈을까? 만약 내가 바라본 만큼 나를 바라봐 주었다면, 목련도 내가 얻은 수많은 감사한 것들 만큼 많은 것들을 얻었을까?
딱 10일 전에 목련이 잘렸다. 3층 높이나 되었던 나무가 겨우 내 키를 조금 넘는 높이가 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몇 해나 같은 자리에 있었고, 몇 해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존재가 그렇게 한순간 사라지는 것은 유난일 수 있지만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우리 집에 있는 나무도, 내가 심은 나무도 아닌데,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신기하다. 베이고 나서도 가르침을 주는 나무라니.
아무리 사랑하는 존재도 어느 날 한순간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질 수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다. 사실, 그 나무의 모든 것을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 꽃을 더 빨리 피우게도, 잎이 떨어지게도 할 수 없다. 그냥 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엇이 좋았길래 목련은 나에게 그런 가르침들을 준 것일까. 나무가 나에게 준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의미를 부여한 것일까?
내 안에 있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내가 모두 바라볼 수는 없다. 자신조차 모르는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은 누구에게나 많이 있다.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것뿐이다. 목련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을지 모르지만, 분명 목련이 준 것과는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무니까. 내가 바라본 순간 그 나무는 나에게 특별해졌다. 특별한 나무가 준 특별한 기억과 아쉬움이 남아 있다.
목련의 윗부분이 모두 잘려나가고 가장 아래에 있는 가지만이 겨우 남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가지에서 올해도 꽃이 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상상할 수는 있다. 그 커다란 나무에서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꽃과 잎을 피우던 가지만이 살아남아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듯 다시 한번 꽃을 피워준다면 좋겠다. 그 모습을 본다면 나는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