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Osaka
다시 돌아온 오오사카. 우리는 오사카로 표기하고 영어로도 Osaka지만 실제로는 앞의 오(大)가 장음이라 오오사카가 맞다. 여행 시작한 지 8일째 되는 날에야 오사카 여행이다. 오사카는 역사가 오래된 도시가 맞지만 2차 대전 때 워낙에 엄청난 폭격을 받아 남아 있는 유적지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간사이 지방의 내 여행 우선순위에서는 뒷전이었고, 유적이 없으니 (나에게는) 별로 볼 것이 많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전에는 오사카 성-이것도 2차 대전 때 모조리 파괴된 것을 다시 재건한 것이지만-을 보고 오후에 쇼핑가를 둘러보는 하루 일정으로만 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쇼핑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나이지만 카메라 및 용품 전문점인 요도바시 카메라와 비쿠 카메라, 도쿄의 아키하바라에 비견되는 오사카의 덴덴타운이 계획에 있어 그건 기대를 했지만서도.
오사카죠(大阪城, 대판성)는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바로 앞에는 이 성의 건축을 명한 사람이자 성의 주인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있다. 호코쿠진자(豊國神社, 풍국신사)가 바로 그것인데 훈독인 도요쿠니가 아니라 음독으로 호코쿠라고 읽는다. 이 신사는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것을 현재의 위치인 오사카성 앞으로 옮겨왔는데 위치는 정말 잘 잡은 것 같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거의 16세기판 이토 히로부미라 할 수 있지만(이토가 20세기 도요토미 버전이라 하는 게 맞겠네), 개인으로 보면 쉽게 말해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로지 실력을 통해 하급 사무라이에서 전국을 통일한 1인자의 지위까지 올라간 매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일본 센고쿠시대 통일의 초석을 닦은 오다 노부나가 휘하에 있다가 후에 아케치 미쓰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자결하자 난을 진압하고 권력을 틀어쥐게 된다. 이후 승승장구하여 교토의 천황을 끼고 간바쿠(關白, 관백, 종 1품의 벼슬)까지 올라 천하를 호령하며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그 후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무능한 조선의 왕(선조)과 무능한 조선의 육군(신립), 무능한 조선의 수군(원균) 컬래버레이션에 의해 조선은 그야말로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르게 되지만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승병(관군이 아닌 것이 더 놀랍다), 이웃나라의 도움(명의 만력제가 파견한 원군, 역사상 몇 번 안 되는 우리나라가 중국에게 도움을 받은 경우), 뛰어난 육군 지휘관(도원수인 권율…인데 이 분은 원래 무신이 아닌 문신), 전설급이자 아마도 세계 해전사에서 올타임 No.3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수군 지휘관(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의 분전으로 일본군은 패전하게 된다. 그리고 1598년 62세의 나이로 사망하는데 그 시대로 보자면 드물게 장수한 셈이다. 이런 인생 때문에 도요토미를 기리는 신사가 곳곳에 흩어져 있고 출세의 아이콘이 되어 취업을 원하거나 출세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상기의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고 권력을 잡은 후 오사카를 전국통일을 하기 위한 자신의 수도로 삼고, 대대적으로 성을 축조하는데 그게 바로 (원래의) 오사카 성이다. 이미 노부나가가 핵심 지역을 포함하여 본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절대 세력이었으며 그걸 그대로 계승한 히데요시가 작정하고 만든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가문이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차지한 뒤 오사카성을 모두 파괴하고 재건하게 되면서 그 규모를 크게 줄였다고 하는데 그게 지금의 오사카 성 규모다. 물론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인해 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고 현재의 오사카 성 텐슈카쿠는 콘크리트로 지은 아무런 역사적 가치가 낮은 건물이다. 어쨌든 현재의 오사카성과 그 일대는 오사카죠코엔(大阪城公園, 대판성공원)이 되어 넓은 지대를 차지하고 있으니 히데요시의 오리지널이 살아남았다면 과연 그 규모가 어땠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오사카 전투에서 승리한 이에야스는 기존의 성을 파괴하고, 2대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 시절 대대적으로 성을 재건한다. 이때 축성에 쓸 돌을 보내오라고 전국의 다이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데 전국시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에도막부 초기라 쇼군의 기세가 등등하다 보니 경쟁적으로 큰 돌을 보내왔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규모 토목공사에는 돈이 많이 드는 법, 다이묘들에게 석재 운송 명령을 내린 것은 충성심도 확인할 겸 재정 부담도 덜 겸 일석이조가 아니었나 싶다.
전란과 화재와 자연재해에 여러 번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한 오사카 성의 건물들이지만, 특이하게(인지 운이 좋았던 건지) 원본이 살아남은 경우도 있다. 긴메이수이이도야카타(金明水井戸屋形, 금명수정호옥형)가 바로 그것인데,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히데요시가 맛있는 우물을 얻기 위해 황금을 가라앉혔다는 전설이 있는 우물과 그 우물을 보호하는 지붕이다. 우물은 에도시대에 만든 것이 맞는데 조사해보니 금 따위는 없었다고. 결국 히데요시의 금을 우물에 넣었다는 전설은 그냥 전설인 셈.
일본 성의 텐슈카쿠(天守閣, 천수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하나는 사치호코(鯱)라는, 머리는 호랑이고 몸통은 물고기이며 등에 가시가 나 있는 상상의 동물인데 텐슈카쿠 용마루의 양끝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텐슈카쿠는 목조건물이었으므로 화재에 취약한 것이 숙명일 수밖에 없어서 수호신의 의미를 담아 이 사치호코로 장식을 하는 것인데 화재가 나면 불을 꺼주는 역할이다. 어디가 오리지널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항저우를 여행할 때도 동일한 것을 보았으니 동양 삼국 중에 우리나라에만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네 건축에도 존재했지만 인기가 없어서 멸실된 것일지도.
성은 내부로도 들어갈 수 있는데 사실 현대에 들어와 지은 콘크리트 복제품이라 큰 감흥은 없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까지 있어서 더욱 감흥을 저감 시킨다. 2차 대전 후에 복원을 했지만 이것도 완전하다 할 수가 없는 것이, 성을 자세히 보면 4층까지의 외관과 5층의 외관이 이질적인 것을 느낄 수 있는데 4층까지는 에도시대에 만든 텐슈카쿠, 5층은 히데요시의 원본 텐슈카쿠를 모델로 해서 재건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두 가지를 모두 표현하고 싶어 하이브리드로 만든 거고 솔직히 말하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혼합을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에도시대의 것은 흰색이고 히데요시 원본은 검은색이었다는데 색깔부터 아예 반대인 것을.
현대에 지은 텐슈카쿠를 제외하면 성의 석축이나 성벽들은 그대로 남아 있어 나름 재미는 있었다. 어쩌면 여행 초반 히메지의 원본 그대로인 텐슈카쿠를 본 뒤라 더욱 오사카의 텐슈카쿠가 아쉽게 느껴졌을지도.
오사카 성을 구경하고 다시 난바 근처로 돌아와서 이번 여행에서 먹고 싶었던 두 번째 음식(첫번째는 교토에서 먹었던 카레우동)인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러 갔다. 우리의 부침개와 뭐가 그렇게 달라 일본인들이 그리 좋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여행책자에 소개된 나름 유명하다는 집으로 가서 미쿠스야키(mix야키)를 주문했는데, 토핑 3가지를 고르면 토핑 1개에 손바닥만한 오코노미야키를 1개씩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새우, 베이컨, 치즈를 골랐고 주문하면 바로 앞의 철판에서 조리를 시작하는데 슬로우 쿠킹을 표방하는 것인지 만드는 데 시간이 거의 30분은 걸렸다. 가뜩이나 배가 고픈데 바로 눈앞에서 조리를 하니 흘리지만 않았다 뿐이지 군침을 정말 한 바가지는 삼켰고, 완성되어 서빙된 것을 한 입 베어 무니 ‘아니 이걸 왜 이제야 먹었지! 첫날부터 1일 1오코노미야키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 만큼 감칠맛이 났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오후는 내내 쇼핑가를 구경했다. 오사카의 아키하바라인 덴덴타운은 규모는 당연히 도쿄의 그것보다 작지만 프라모델을 비롯해서 정말 다양한 일본 오타쿠의 세계를 구경해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소싯적에 건담을 꽤 좋아했던 터라 추억이 상당히 자극되었는데, 백팩 여행의 장점(짐을 넣는 데에 한계가 명확해서 쇼핑을 마구 할 수가 없다) 덕분에 쓸데없이 프라모델을 사는 짓은 피할 수 있었다. 대신 카메라 용품 전문점인 비쿠 카메라에서는 쓰잘머리 없는 것들을 사기는 했지만.
이렇게 이 날을 마지막으로 나의 첫 일본 여행은 끝이 났다. 이다음날은 일어나서 귀국 비행기 타는 게 일정의 전부였으니까.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지 않고 있던 일본 여행을 처음 해 본 나의 감상은, 아 일본 여행하기 정말 편하게 시스템이 잘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듯 다른 것도 많고, 역사 유적지들도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까지 일본 여행은 총 세 번을 했는데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하면 단연 교토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 지방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내 바람대로 벚꽃이 만개할 때 다시 한번 이곳을 여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