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그날,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5월의 기억, 그날의 상처

by 김정우

최근에 바쁜 일들이 좀 많았습니다. 대회 준비라던가 고입 준비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라 이제야 다시 글을 씁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쭉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소년이 온다』를 읽고 든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순차적으로『흰』,『작별하지 않는다』한강 3부작 시리즈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6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포인트에 주목하면서 책을 읽는다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


1장 어린 새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는 중학교 3학년 동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980년 5월 18일,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 광주 도청으로 간다. 그곳에서 동호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을 목격하게 되고, 정대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본다. 정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호는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기 시작한다. 그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정리하고 가족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동호는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며, 국가폭력의 잔혹함을 직접 체험한다. 그는 대한민국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그 관을 태극기로 감싸는 행위의 모순을 깨닫게 된다. 동호는 상무관에서 은숙, 선주 등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시신을 수습하고 가족들을 안내하며 때로는 시신 확인을 위해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동호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2장 검은 숨

눈이 없는데 어디서 피가 흐르는 걸까.
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까.

이어지는 장에서는 죽은 정대의 영혼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정대는 덤불숲에 묻혀있었다. 정대의 영혼은 자신의 시체와 다른 희생자들의 시신이 군인들에 의해 쌓여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는 상무관을 떠돌며 살아있는 사람들, 특히 동호와 자신의 누나를 지켜본다. 정대는 자신을 죽인 이들에게 왜 그랬는지 묻고 싶어 하며, 죽음 이후에도 광주의 상황을 지켜본다.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목격하며, 자신의 죽음이 가져온 영향을 깨닫게 된다. 정대의 영혼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들을 위로하고 싶어 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광주의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지기를 바란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이락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3장 일곱 개의 뺨

그녀는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다음으로는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했던, 5.18 이후 약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은숙의 이야기를 다룬다. 은숙은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했던 인물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녀의 일상은 완전히 망가져 있다. 은숙은 먹는 것을 치욕스럽게 느끼고, 꾸미는 것을 죄스럽게 여기며, 자신의 생이 길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녀는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형사에게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은숙은 일곱 대의 뺨을 맞게 되는데, 이는 5.18 당시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7개의 뺨을 잊자며 그 일화를 하나씩 털어낸다. 은숙은 이 경험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공포를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5.18 당시 상무관에서의 경험, 특히 동호와 함께 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통받는다. 은숙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과 현실의 억압 사이에서 괴로워하지만, 동시에 진실을 기억하고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느낀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4장 쇠와 피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 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또한 교대 복학생이었던 한 남자의 시점에서 당시의 상황과 이후의 고문, 그리고 그로 인한 후유증을 보여준다. 이 남자는 5.18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살아있다는 것이 치욕이라고 느낄 정도로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고문실의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전기고문의 찌릿한 감각이 그를 괴롭힌다. 이 장에서는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 과정과 생존자들이 겪은 가혹한 고문의 실상이 상세히 묘사된다. 주인공은 고문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며,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는 몸과 공포에 질린 눈을 마주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이 남자는 5.18 당시의 기억과 이후의 고문 경험을 회상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는 왜 자신이 살아남았는지,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5장 밤의 눈동자

우리는 고귀해

임선주를 통해 노동운동의 이야기를 다룬다. 2000년대 마흔이 된 선주는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고, 광주의 사건을 겪었던 이들의 심리를 알아보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을 때 그녀는 거부했다. 차마 그 사건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선주는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했던 인물 중 하나로, 5.18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그녀는 공장 노동자가 되어 노동운동에 참여하지만, 상무관에서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 장에서는 5.18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발전,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이 겪는 갈등과 성장이 그려진다. 선주는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상무관에서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5.18의 기억과 싸운다. 선주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5.18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하지만, 동시에 그 기억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린다. 밤마다 그녀는 상무관의 시신들, 동호의 얼굴, 계엄군의 총소리 등을 꿈꾸며, 그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선주는 적당히 저항하고, 목숨을 잃을 정도의 희생은 하지 않으려 했다. 1980년도에 살아남고 20년이 지나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과거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한 증언을 하지 못했다.


6장 꽃 핀 쪽으로

네 살이 그렇게 희었던 줄 그때 처음 알았다이.

마지막 장에서는 동호의 어머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과 그 후의 삶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어머니는 아들의 방에 들어설 때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 그녀는 동호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며, 매일 밤 아들의 옷을 꺼내 안는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나 점차 다른 희생자 가족들과 연대하며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매주 수요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한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점차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개인의 슬픔을 넘어 사회적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날 그녀는 동호의 죽음이 그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그녀는 더 강하게 진실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날 동호를 끌고 왔다면? 정대와 동호를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했다면?


"목숨이 쇠심줄 같아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졔."


(5.18 당시 서울에 있던 큰아들이 둘째에게 동호를 끌고 오면 되는 걸 왜 그러지 못했냐고 꾸지람했다)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에필로그에서는 한강 작가가 화자가 되어 책에 대해 전체적인 이야기를 한다. 5월의 광주에 대해 쓰고 있었지만 그것은 광주에 대해 쓰는 것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잔인성과 인간의 고귀함, 그 모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5.18의 의미를 현재와 연결시키며, 이 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나는 광주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광주는 내 안에 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이자 희망이었다. 또한 폭력과 저항,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이 소설의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모두 광주다. 우리 안의 광주를 기억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이 소설을 쓴 이유라고 밝힌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벌어진 국가 폭력의 참상을 생생히 그려낸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집단적 비극이 개인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보여주며, 인간 존엄성과 기억의 중요성을 탐구한다. 소설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사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과 질문을 던진다.



어...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만 나는 사실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냥 전두환이 일으킨 만행, 한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끔찍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텍스트로 한 번 거쳐진 광주의 모습이 이렇다면 실상은 어느 정도 일지 감히 예상하기 두렵다. 그때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 군인이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 모습, 그들이 당했던 고문, 폭력, 혐오, 차별을 떠올리면 당시 광주에 있던 사람에게 너무나 죄송스럽다. 이런 끔찍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고, 그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끝까지 저항하던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함을 절실히 느낀다. 박정희 정부의 군사독재 이후로 민주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일출을 기다리던 국민들에게 찾아온 전두환의 군사독재와 과 계엄령이라는 밤이 광주에서는 유독 길고 더 어둡게 나타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시체가 부패하는 모습, 고문과 후유증, 무차별적인 폭력이 덤덤하게 쓰어였다. 그래서인지 마치 내가 사실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정확하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으로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인터뷰를 거부했던 선주의 마음도 너무도 이해가 간다. 아무리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고 그 고통을 겪지 않았던,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끔찍한 기억을 쉽게 털어놓기란 정말 힘들지 않을까? 머릿속에 박힌 기억은 잊히질 않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데, 정말 살아남은 것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고 대다수의 독자가 책의 글자를 보고 머릿속으로 대충 배경이 어떨지, 인물의 행동을 상상하며 글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싫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모습들을 다 상상하면서 읽으면 도저히 책을 다 읽지 못할 것이라고. 이 작품이 읽기 힘들 수도 있고, 읽고 난 뒤에도 며칠 동안은 힘들 수도 있다는 주변의 반응을 듣고 어느 정도 마음의 대비를 했고, 내 성격상 딱히 작품에 감정적으로는 잘 휘둘리지는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꾹꾹 눌러쓴 것 같이 함축적이고, 섬세하면서도 야만적이다.


한강 작가도 한국인으로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책을 쓰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이렇게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글을 적기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광주를 표현한 다른 작품과의 차별점이 드러난다고 느꼈다. 흔히 민주화 운동에 관련한 작품을 보면 주인공은 웬만해선 절대 죽지 않고 많은 사건을 거쳐서 결국에는 민주화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영웅처럼 묘사된다. 『소년이 온다』와는 큰 차이가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일반적인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 학생, 대학생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군상극이다. 영웅도 없고, 분노와 욕설로만 가득 차있지 않고, 오히려 주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는 약자라고 볼 수 있는 어린 인물들의 관찰과 증언만 있을 뿐이다. 아마 유족들도 이를 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광주를 위해 싸운 분들도 이러한 작품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읽으면서, 읽고 나서도 특히 마음에 계속 남았던 문장 몇 개들을 적어보겠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평범한 볼펜이었습니다, 모나미 검정 볼펜. 그걸 손가락 사이에 교차시켜 끼우게 했습니다.

그야 왼손이죠. 오른손으론 조서를 써야 하니까.

예, 그렇게 비틀었습니다. 이 방향으로도 이렇게.

처음엔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날마다 같은 곳에 그렇게 하니까 상처가 깊어졌어요. 피와 진물이 섞여 흘렀습니다. 나중엔 이 자리에 하얀 뼈가 들여다보였습니다."


"직면하고 증언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서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문장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또 원본으로 책의 모든 맥락과 함께 봐야 그 진가를 다하기 때문에 꼭 책을 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매우 슬프지만 꼭 알아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죽음'에 대한 묘사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영화나 드라마, 여러 작품들 속에서도 죽음이 많이 다뤄진다. 하지만 한강의 작품에서 나오는 '죽음'은 결코 뻔하거나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죽음을 다루면서도 상실의 순간과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선사하며 우리로 하여금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여서가 아닐까. 책에 나오는 아이들도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렵지 않았을까.


전체적으로 글을 읽으면서 독일의 홀로코스트도 많이 떠올랐다. 그때도 나치가 온 나라를 지배하면서 언론을 통제하고,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권이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았다. 1980년대의 광주에서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군인이 자국민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헬기 위에서 몇백 발의 총알을 난사하고, 폭탄이 날아다니고, 길바닥이 붉게 물들었던, 하지만 광주 밖에서는 아무도 몰랐던, 이 비극적인 일을 잊어선 안된다고 느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생각이 났다. 한나 아렌트도 한강과 비슷한 태도를 글에서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주범들을 마냥 비판하기보다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일반화시킨 철학적 정의를 이끌어냈다. 한강도 그렇다. 차가운 태도로 사건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면서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주고자 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작품이 많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우리는 당장 어제의 일을 기억하기도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럴수록, 역사의 가치가 잊힐수록, 우리에게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예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 사건으로 피해받은 사람들과 유족은 하루하루를 트라우마와 물리적 피해 때문에 고통 속에 떨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인데, 정작 이 참사를 조직하고 계획했던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이 현실이 극도로 원망스럽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라의 주권을 잃었을 때 우리의 조상들은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이 투쟁은 단순히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권리, 질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쳤던 깊은 의미가 있는 과정이다. 나라의 국권이 다른 나라에게 넘어가도, 민주주의가 무너져도, 정부가 말도 안되는 만행을 저질렀을 때 사람들은 계속해서 투쟁했다. 평화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국가의 기반이 되는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들을 야욕 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계에게 보어줘야 할 것이다. 최근에 보인 대한민국의 모습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우리의 선조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서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민을 대신하여 나라를 이끌어야 할 정치인들이 과연 국민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투쟁이 결실을 제대로 이룰지 솔직히 확신이 들지 않는다. 물론 참된 정치인들도 많지만, 소수 때문에 이러한 정의가 묻히는 현실도 안타깝다. 우리에게는 다음의 것을 보여줘야 할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떤 사람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지를 말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세상에서 가장 품위 있는 평화의 소리는
침착한 양심의 소리이다.

-셰익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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