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투고, 설득하고, 이해하다 - 말에 대한 태도

by 엠에스

< 다투고, 설득하고, 이해하다 – 말에 대한 태도 >


며칠 전, 가까운 친구들이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 의견 차이 자체는 별거 아니었다. 하지만 A 친구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했고, B 친구 역시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대화는 멈췄고, 그들은 서로 며칠간 연락을 끊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친구들은 그 대화가 ‘논쟁’이 아니라 ‘관계’에 더 큰 상처를 남겼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그때 처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말한다. 친구와 웃으며 떠드는 말, 회사에서 오가는 보고, SNS에 남기는 댓글까지. 하지만 모든 말이 ‘소통’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말은 갈등을 만들고, 상처를 남기고, 벽을 세운다. 이처럼 ‘말’이 서로를 연결하기보다는 오히려 단절시키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직장 회의에서도 종종 그런 장면을 본다. 의견 충돌이 격화되면 사람들은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집중한다. 타인의 말을 끊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며, 자신의 논리가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그 끝에 남는 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의 피로, 그리고 관계의 틈이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나는 철학자 하버마스가 말한 ‘이상적 담론 상황’을 떠올린다. 그는 진정한 대화는 위계와 강요 없이 자유롭게 의견이 교환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저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입장'과 '맥락'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갈등이라고 여기는 많은 상황은, 본질적으로는 ‘정보 부족’이나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논리를 합리적이라 믿지만, 각자의 배경과 가치관에 따라 충분히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한 명의 친구는 고양이를 키우며 생명을 존중하는 감수성을 가졌고, 다른 친구는 어릴 적 고양이에게 물린 트라우마가 있다면, 같은 사안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누가 더 옳은가 보다는, 서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지만, 요즘 “상대를 알려고 하라”는 말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말은 설득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해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소통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방식으로 말하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 다투지 않고 말하는 법을 고민한다. 대화 중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중간에 끊지 않으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틀렸다고 말하지 않기.


작은 실천이지만, 그것이 말의 힘을 ‘관계의 단절’에서 ‘연결의 가능성’으로 되돌리는 출발이 될 수 있다.


오늘 하루, 한 사람의 말을 더 진지하게 들어보자. 설령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 보자.


이해는 동의보다 깊고, 말은 이기기보다 이어 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 작은 태도 변화가 우리의 관계를, 그리고 삶을 조금씩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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