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언젠가 마주하게 되는 근원적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서고, 자신을 둘러싼 삶의 궤적을 더듬어보게 된다. 그리고 그 물음은 이렇게 다시 되돌아온다. 나는 지금, 누구인가?
과거를 찬찬히 돌아보자.
누구를 만났는가? 어떤 사건을 겪었으며, 그것이 내 안에 무엇을 흔들었는가?
마주침이 있었고, 그와의 소통이 있었으며,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조용히 혹은 급격히 변화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감정은 또렷하다. 누구의 말 한마디, 어떤 장소의 공기, 뜻밖의 이별 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 순간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 조각들을 하나씩 적어보자. 사소한 기억이라도 좋다. 시간의 표면을 긁듯이 적다 보면, 내 삶의 무늬가 서서히 드러난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얼굴, 감춰져 있던 감정과 욕망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삶이란, 무언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마주침과 이별, 질문과 응답을 통해 조금씩 자기 자신으로 변해가는 순환과 형성의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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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존재, 흔들리는 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강물도 변하고, 나 자신도 변했기 때문이다.
동양의 장자 역시 같은 통찰을 공유한다. 그는 삶을 ‘도(道)’라고 불렀고, 그 도는 미리 정해진 길이 아니라 타인과의 조우, 사물과의 접촉,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걸어가며 만들어지는 길이라 보았다.
삶은 정답이 있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만의 흔적으로 새겨지는 여정이다. 누군가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고유한 리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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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시간성과 죽음의 자각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 불렀다. 그는 인간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진지하게 자각하는 순간은 죽음을 마주하는 그 순간이라고 했다.
삶은 유한하고, 그래서 소중하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는, 그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늘 ‘되려고 하는 존재’로 살아간다. 삶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형성 중인 상태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살아가는 중’이며, 그 ‘중간의 시간’이야말로 진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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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시(詩)처럼, 무늬처럼
삶은 시처럼 흐른다.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은유들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머무는 장면들이 있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지만, 마음속에는 별을 품은 나침반 하나를 지니고 있다.
삶의 속도에만 매달리다 보면 방향을 잃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는가 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
마치 바느질처럼,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을 꿰매며
자기만의 문양을 만들어낸다. 그 문양은 고르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 엉켜 있기도 하며, 아주 가끔은 찢어진 채 남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불완전함 속에서 가장 나다운 무늬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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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말하자.
“당신만의 삶을 살아라.”
남의 평가 따위는 아랑곳하지 말아라. 삶의 의미와 가치는 결코 남들의 평판에 달려 있지 않다. 당신의 기준은 당신이 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적응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고유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흔들리고 성장해 온 존재들이다.
진정한 삶이란, 흐름을 거스르지 않되 그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삶이 흐르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다.
그리고 그 삶의 길 위에 언젠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나는 나답게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