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 잔잔해 보이는 물이 실제로는 깊고 풍부한 힘을 갖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물은 무엇보다 만물을 길러주면서도 자신이 베푼 공을 자랑하거나 다른 이와 다투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비록 밟히고 더러워지더라도 꿋꿋이 아래로 흐르며, 결국 온갖 생명과 자연을 보듬어 줍니다. 순리대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과시하지 않는 인간이 마땅히 배워야 할 겸손의 미덕이기도 합니다.
80년대 삼성에서 근무 시, 국방 관련 방문한 고객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석에 배치하고 의자를 빼주며 안내했던 나이 드신 임원의 지나친 겸손이 보기 좋지 않았지만, 업무 종료 후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고객을 보며, 참 대단한 임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을 돌아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크게 드러내고 과시하려 든다. 큰 소리 내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기도 하죠.
그러나 정작 ‘속이 꽉 찬 사람’들은 요란스럽게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신이 베푼 도움이나 업적을 굳이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한 찬사를 받을 때도 슬며시 웃어넘기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다할 뿐이지요.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는 속담과, “물려는 개는 짖지 않는다”라는 말 역시 이러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정말로 무서운 존재일수록 굳이 드러내어 떠들지 않는다는 것이죠.
큰 물이 잔잔하듯 큰 사람은 오히려 고요함으로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품어 주는 법입니다. 이러한 겸손과 고요는 결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에게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은 더 큰 지혜를 바탕으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갈 줄 아는 아량과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매사에 부딪치고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는 대부분 속이 좁아 일어나는 허세에 불과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자기주장을 확실히 해야 할 때도 있고, 목소리를 내어야만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앞장서 주장하고 시끄럽게 떠들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심지가 굳고 마음이 넓은 사람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할지 적절한 타이밍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마음 한 구석에서 “나도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끊임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충동이 올라온다면, 잠시 멈추어 자신을 관찰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 잔잔한 물 위에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 잔물결을 일으키듯, 우리의 작은 감정과 욕심이 결국 마음의 고요함을 흩뜨려 놓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모든 미덕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며 아낌없이 모든 생명을 보듬듯, 우리도 스스로를 낮추고 주변을 살피는 자세를 지닌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품어 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며, 때가 되었을 때는 스스로의 가치가 은은히 빛을 발하게 됩니다.
결국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삶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세나 시끄러운 다툼이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에서도 잠잠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마치 잔잔히 흐르지만 누구보다도 깊고 묵직한 에너지를 품은 물과 같습니다.
어떤 위치에 서 있든,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고 동시에 겸손의 철학을 실천하며 세상을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물의 덕목을 몸소 익히고, 끊임없이 내면을 가다듬는다면, 아무리 소란스럽고 혼란한 환경에 있어도 잔잔하지만 깊은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