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비가 내려준 선물?

by 김이름

어느 평일 밤, 달도 없는 깜깜한 하늘.


집안에 작게 도로롱 울리는 소리와 달리 창 밖에는 세찬 빗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간간히 천둥소리도 들려왔지만, 단잠에 빠진 쿼카는 흥미로운 꿈속 탐험에 빠져있었다.


쿼카가 꿈에서 붉고 큰 딸기를 한 입에 넣으며 미소 짓는 순간, 침대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에는 띠링 알림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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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안전부] 오늘 01시 10분

도자도자구 로운물동 호우경보,

산사태•상습침수 등 위험지역 대피, 외출자제 등

안전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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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이 울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창밖엔 무서울 정도로 비가 내렸다. 몇 분인지, 몇 시간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김쿼카는 꿈결에 희미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도 뜨지 못한 채 손을 더듬었다. 그러다 침대 선반 위에 있던 핸드폰이 이마 위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악!” 이마를 문지르던 동물은, 여전히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 시계를 쳐다보니 시간은 8시 10분, 아침인데도 창밖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무심코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못 눌렀나 싶어 실눈을 뜬 채 다시 눌러봤지만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이에 동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형광등 갈 때가 됐나..? 왜 안 들어오지.’


쿼카는 우선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하지만 화장실 등도 방 형광등과 다르지 않았다. 표정이 심각해진 김쿼카는 두꺼비집 확인을 위해 현관으로 향했다.


그때,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계세요? 관리사무소입니다. “


무슨 일인가 싶어 후다닥 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내린 비로 전기설비에 이상이 생겨 주택 단지가 단전, 단수 됐다는 소식이었다. 거기에 복구 완료도 빨라봤자 오늘 밤에야 가능하다고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상황에 쿼카는 당황스러운 동시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고개를 돌리다 눈을 마주친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은 40분이 채 안 남아 있었다. 당장 집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 지금 출발해도 사무실까지 1시 반이 넘는 거리.. 무엇보다 씻지도 못했다. 머뭇거리다 김쿼카는 결국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코코아톡을 열어 팀장님께 주저리주저리 현재 상황을 말했고, 오전 반차 아님 휴가를 써도 괜찮을지 메신저를 남겼다.


그렇게 1분.. 2분.. 마음이 급해지던 그때, 팀장님께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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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쿼카님~~

아이고, 단전 단수라니.. 어제 비가 정말 많이 왔죠. 그쪽 상황은 꽤 심각하네요... 오늘 급하게 처리할 일 없으면 휴가 써도 괜찮아요. 집에서 사무실까지 거리도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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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내용이었지만, 핵심은 오늘 휴가 사용 OK였다. 머릿속으로 업무 일정을 되짚어 보던 쿼카는 당장 급한 업무 건들은 처리가 끝나 연차를 쓴다고 메신저를 남겼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짧은 휴일이 찾아왔다.


***


그 후, 현관 신발장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있던 쿼카는 털레털레 돌아와 침대에 다시 누웠다.


‘비가 얼마나 많이 왔길래.. 단수, 단전이 됐을까. 제발 오늘 밤에는 복구되어야 할 텐데. 꼬질꼬질한데 내일 사무실 출근이면.. 어휴..’


하지만 천장을 보며 걱정하던 것도 잠시, 쿼카의 입꼬리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 오늘 쉬는 날이잖아! 뭔가 합법적 땡땡이 느낌이야!!! 핸드폰 배터리는 만땅 이니까 최대한 즐겨보겠어. 화장실이 걱정이지만 당장 지금은 괜찮으니까.‘


김쿼카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수십 가지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일단 오늘은 휴일이니까... 밀린 드라마 정주행을 좀 해볼까? 아님 정리도 좀 하고, 마른빨래 개면서 영화 한 편? 그래, 라면은 안될 것 같고.. 배고프면 과자라도 있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침대 위에서 무궁무진한 계획들을 세우던 쿼카는, 점차 조금씩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곧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후 1시.


김쿼카는 눈을 떴지만 좀 더 자고 싶어 알람을 맞추고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잠을 못 잔 귀신이 찾아온 건지.. 알람을 끄고 5분만 더를 외쳤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고..


눈을 떴을 때는 해가 거의 지고 있었다.

고요한 집 안, 허전한 배, 그리고 텅 빈 하루.


쿼카는 가만히 누운 채로 포옥 한숨을 쉬었다.


‘.. 어.. 나 오늘 뭐 했지? 시간 실화야...?’

‘그래도 잘 쉰 건 맞지.. 뭐.. 아마도.. 그럴 거야.‘


소소한 에필로그)


김쿼카는 일어나고도 한참을 침대 위에서 밍기적거리다 결국 조용히 휴일 저녁을 맞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복구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밤 9시가 넘도록 "복구 중"이라는 관리사무소의 안내에, 내일 정말 출근해야 하나 낙담하던 쿼카는 몇 시간 뒤, 전기가 다시 들어오자 온갖 신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나서야 비로소 평온한 얼굴로 이불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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