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명절을 앞두고, 폭풍 같던 평일이 지나간 한가한 주말 오후.
김쿼카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로 꼬리를 살랑거리며 동스타그램을 구경하고 있다. 꽤 오랜만에 들어온 터라 피드와 하이라이트에는 여러 소식과 근황이 가득했다.
‘우와, 기린이는 조카가 태어났네. 너무 귀엽다. 기린이도 이모가 됐구나..!’
‘거북이는 박사 과정 중이랬지? 장기 연애도 잘 이어가고 있네.’
‘엇, 얘는 언제 결혼했지?’
‘홍학이 5개국 해외여행 갔구나! 유로피아 대륙에 샌드샌드 대륙까지 거쳐서 여행하다니 좋겠다..‘
한참을 웃으며 스크롤을 내리던 쿼카의 손은 어느 순간 멈춰 섰다. 문득 잘 알고 있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그들의 삶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어가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앞으로를 함께 할 새로운 짝과 결혼을 약속했고, 누군가는 긴 준비를 마치고 첫 회사에 취직을 했다.
같은 출발선에 서서,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헤엄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다른 바다와 대륙 위에 있는 것만 같았다.
상념에 잠긴 그때 거북이에게 코코아톡이 왔다.
“쿼카야 오랜만이야~ 이번 명절에 시간 되면 올만에 만날래? :)“
쿼카는 반가운 연락에 캘린더를 확인한 뒤 빠르게 약속을 잡았다. 거북이와 만났던 것이 까마득했던지라 어색할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우선은 오랜만의 만남이 마냥 기대됐다.
***
그로부터 며칠 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쿼카는 도자도자역에서 거북이를 기다리고 있다.
‘거북이는 여전하려나? 만나면 무슨 이야기하지.. 우선 요즘 근황이랑 박사 과정 물어보고, 명절에 뭐 했는지.. 흠‘
어떤 대화를 나눌까 생각하던 중 저 멀리서 거북이가 보였다. 그 순간 쿼카는 당황스러웠다. 기억 속 거북이와 눈앞의 모습은 꽤 달라 보였다.
유독 앳된 모습이었던 친구는 어느새 사회 동물의 분위기를 풍겼고 눈 화장도 화려해졌다.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과 말투는 똑같았지만 예전과 묘하게 달랐다.
쿼카는 복잡한 감정을 뒤로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둘은 근처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시키고,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쿼카야, 난 요즘 그냥 결혼이 하고 싶어. “
”아 진짜? 너네 오래 만나긴 했지. 이제 박사 과정 얼마나 남았더라? “
”3년? 그 정도 남은 것 같아. 남자친구도 그쯤 박사 과정 끝나고 한국 오니까.. 결혼 빨리 하려고. 그동안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
중학당 시절부터 함께했던 친구인데, 이렇게 결혼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는 게 실감 났다.
”넌 아직도 거기 있는 거지? 재택 근무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
쿼카는 이어진 거북이의 질문에 대답하며 근황을 전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탓일까. 익숙했던 대화 속에 낯선 공백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반가워도, 채워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는 걸 문득 느꼈다. 이야기는 이어졌지만, 그 사이사이의 침묵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현재 거북이의 삶과 고민은 쿼카와는 다른 갈래에 있었다. 그리고 문득, 그때 막연히 느꼈던 생각이 분명해졌다. 친구들은 모두, 어쩌면 이제 각자의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간신히 이어지던 대화 속에, 어느새 과거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우린지도 흐릿하지만 중, 고등학당 시절 속 웃픈 에피소드들.
대학당 시절, 서로의 학당 축제에 놀러 갔던 기억.
그 시절의 꿈과 지금...
하나씩 떠오르던 추억들은, 어느새 현재의 우리를 다시 잇고 있었다.
어색하던 느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함께 밥을 먹고, 헤어짐이 아쉬워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새 대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그곳에서도 계속됐다.
***
쿼카는 거북이와 대화를 나누다 최근 갖게 된 생각을 털어놓았다.
“거북아, 나 요즘 친구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 분명 똑같은 친구들이고 같은 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더라고. “
거북이는 쿼카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맞아. 진짜 예전보다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 예전엔 다들 비슷했는데, 지금은 훨씬 다채로워졌잖아.
어쩌면 지금 우리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그 시작점에 있을지 몰라. 앞으로는 더 달라질지 모르니까 말이야. “
쿼카는 그 말에 눈이 커졌다. 거북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난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아지고 1년 뒤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
쿼카는 친구의 말을 곱씹어 보며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쿼카, 만약 시간이 지나서 각자의 삶이 달라져도 그때도 이렇게 가끔가다 만나도 또 재밌게 수다 떨자. 만약 내가 모르면 알려줘. “
김쿼카는 비로소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 삶은 점점 달라질지라도,
그 다름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작은 호수 같던 삶이 바다처럼 넓어져도,
친구와의 시간은 여전히 반갑고, 여전히 따뜻하다는 것을 말이다.
소소한 에필로그)
카페 마감 시간이 됐다는 직원의 안내에, 쿼카와 거북은 후다닥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둘은 다시 만날 날까지, 재미있고 웃픈 에피소드를 하나씩 쌓아가기로 약속했다.
김쿼카는 그날이 벌써부터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