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고픈 마음

by 이삼오

(닥터 라구와의 면담 끝자락)


"아, 차트 보다가 알았는데, 오늘 생일이구나! 해피 벌쓰데이!"



"네. 고맙습니다."



"이곳에서 생일을 보내 게 됐는데... 그래도 좋은 하루를 보내려고 해 봐."



"여느 날처럼 별일 없이 지나길 바라봅니다."



"평소였다면 생일을 어떻게 보냈니?"



"그게... 딱히 별 기억이 없네요. 친구들 한테도 생일이라고 딱히 알린 적도 없고요."



"생일에 관련된 특별한 기억 같은 건 없어?"






(1991년 1월, 서울)



학교 친구, 피아노 학원 친구 몇이 우리 좁은 집에 놀러 왔다.



새어머니가 가족이 된 후에 맞이하는 나의 첫 생일이었다.



케이크, 떡볶이, 양념 통닭, 피자, 각종 과자들이 상에 한가득 푸짐하게 차려졌다.



"생일 축하해! 자, 여기 선물."



친구들은 당시 유행하던 문구세트와 각종 팽이들을 선물로 들고 왔다.



실제로 처음 해보는 생일 파티였다.



이보다 더 어릴 땐 단출하게 밥상에 작은 케이크 하나에 초를 몇 개 꽂았던 걸로 기억한다.



토요일 이른 오후, 아버지는 사진 몇 장을 바삐 직은 후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새어머니는 만삭인 몸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모자라진 않는지, 다른 게 더 필요하진 않은지 분주히 챙기는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내 방에 빼곡히 앉아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도 부르고 끝말잇기 게임도 했다.



진정으로 즐거운 생일이었다.



이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파티였다.






이민 온 후 느낀 것이지만, 민족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캐나다는 생일을 제법 거하게(?) 챙기는 듯했다.



교실에 앉아있으면 종종 생일 초대장을 받곤 했는데 막상 초대에 응한 건, 몇 년간 두 어번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초대받았으면 나도 똑같이 초대를 해야 하는 암묵적 룰이 있었던 거 같다.



우리 집 분위기를 고려하면 생일 파티는커녕 친구 하나 데려와서 과제를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본의 아니게 나는 상당히 미스터리한 아이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커온 환경 때문인지 생일이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 거 같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나 어머니도 서로 생일을 굳이 챙기지 않았던 거 같다.



챙기려고 했으나 일 년 대부분 날들이 냉전 중 이어서 챙길 여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막상 둘의 생일을 몰랐다.



물어봐도 음력이라 생일이 매해 바뀌니 어린 나로서는 헷갈리기만 했다.



그래도 동생 생일은 잘 챙겼던 걸로 기억한다.



언젠가부터 나의 생일은 그냥 가장 추운 겨울날 중 하루일 뿐이었다.



크게 서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알게 되어서 축해주거나 하면 오히려 어색하거나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도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생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구나?"



"내가 태어난 날이니 특별한 날인 건 맞는데... 빨리 하루가 지나가길 만 바랬던 거 같아요. 그냥, 별로 환영받는 느낌이 없었다고나 해야 할까..."



"환영이라면, 이 세상에 온 환영?"



"네. 지금은 별 생각이 없는데 어릴 때는, 나를 환영해주지 않는 세상에 내가 불청객처럼 등장한 거 같아서요. 저도 나름 제가 알아서 제 자신을 잘 챙긴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하루쯤은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위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제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갔다.



데이나가 약 접시를 들고 내 앞으로 왔다.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보자. 아, 그리고 이따가 네 서랍 한 번 열어보렴."



내 방 침대 옆에 서랍장을 열어봤다.



그 안에 HAPPY BIRTHDAY라고 크게 적힌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카드를 펼쳤다.



원래는 환자 간호사 사이에 이런 거 주거나 하면 안 되는데... 뭐 정년퇴직 2년 남긴 늙은 간호사한테 뭘 어쩌겠어? 호호.


너의 생일이 진작에 오늘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 나는 너의 생일을 절대 잊을 수 없단다.


왜냐고? 내 생일이기도 하거든!


정말 이런 우연이 다 있지 뭐니.


아마 네가 보낸 생일 중 가장 특이한(?) 곳에서 보내는 생일 일 거 같구나.


지금은 좀 힘들더라도, 너는 아직 많이 어리고, 똑똑하고, 정말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 모든 게 다 좋아질 거야!


지금 내 말들이 안 믿기겠지만 분명히 좋은 날이 올 거란다.


다시 한번, 이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너의 간호사이자 친구인 데이나로부터-



이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이 문장 하나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환영한다... 환영한다... 환영한다...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목덜미로 내려왔다.



소리 내지도 않고, 헐떡이거나 하는 소리 없이 눈물만 계속 흘렸다.



눈물을 멈추고 멍하게 있는데 서랍 안에 또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담배 두 갑.



골초 데이나의 두 번째 깜짝 선물이었다.



애연가의 마음은 애연가가 잘 안다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닥터 라구는 완벽한 프로였고, 데이나는 인간미 넘치는 아마추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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