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경력 15년이 넘으면, 별의별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는 건 기본 옵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에 못지않게 별의별 강사도 함께 따라온다.
아무리 학원 시스템이 있고, 매뉴얼이 있고, “이렇게만 하시면 됩니다”라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어도
학원가는 확실히 사람 냄새—혹은 사람 잡내—가 진하게 나는 업종이다.
강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그 학원의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짓기도 한다는 말이다.
정말 학생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애살이 뚝뚝 떨어지는 선생님도 있는 반면, “내 아이가 저 사람한테 배우면 인생이 꼬이겠구나” 싶은 선생도 있다. (님은 생략한다. 존중은 상호적이어야 하니까.)
그럼 나는 어디쯤 있었을까.
눈에 띄게 뛰어나지도, 눈에 띄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동료와 싸운 적도 없고, 학생에게 대놓고 욕먹은 적도 없으며 원장에게 “잠깐 얘기 좀 하죠”라는 말을 비장하게 들은 적도 없다.
뒷담화 타임 (악의 없음, 사실만 있음)
F는 대학 졸업 직후 강사 데뷔. 현재 20대 후반. 학원 내 공식 직급은 막내, 비공식 직급은 소음공해.
항상 에너지가 넘쳤다.
다만 그 에너지는 사람을 살리는 에너지가 아니라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에너지였다.
교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쉬는 시간에 복도를 점령한 고3 체육부 주장에 가까웠다.
“어? 선생님 어제 라면 드시고 주무셨어요? 얼굴이 두 배 됐네? 호호.”
– 아니, 보톡스 맞고 왔다.
“원장님, 이번 휴가 일정 너무 별로예요. 좀 앞당겨 주시면 안 돼요? 저 비행기표 다 끊었는데요.”
– 회사는 네 여행 일정에 맞춰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월급이 진짜 너무 적어요. 제 친구들 중에 제가 제일 못 벌어요.”
– 그럼 네 친구들한테 배우든가.
“아니 얘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단어도 모르고, 문법은 개판이고…”
– 그래서 학원에 앉아 있는 거다. 너 옆에.
항상 피해자 포지션. 세상은 자기를 과소평가하고, 학원은 자기를 착취하며, 학생들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문제는 그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사건.
어느 날, 학부모 상담 중 그는 결국 참고 있던 자기 인생철학을 꺼내 들었다.
“아니, 당신 아들내미가 못하는 게 왜 내 잘못이냐고요? 애가 잘하면 지가 잘난 거고, 못하면 학원이 똑바로 못 가르친 거죠.”
말은 끝났고, 강사 인생도 끝났다.
결과는 간단했다.
해고.
인수인계도 없었고, 유예도 없었으며,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같은 말도 없었다.
나가면서 그는 모든 선생님들에게도 저주를 남기고 떠났다.
"당신네들 삶이 얼마나 찌질하면, 이런 거지 같은 학원에 붙어먹고 있는 거야?!"
돌아이다.
K는 경력이 제법 긴 강사였다.
원장까지 해봤다는, 이 바닥에서 흔히 말하는 “다 겪어본 사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TMI의 의인화, 혹은 화신.
“제가 원래 전남편이랑 학원을 같이 했었는데요, 그 인간이 강사랑 바람이 나는 바람에 갈라섰죠. 뭐… 근데 저도 거기서 괜찮은 남자 강사 하나를 집적거렸으니 크게 할 말은 없다만…”
아... 네...
굳이 공강 시간에, 굳이 교무실에서, 굳이 우리가 다 들으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K의 공강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통화 전용 골든타임이었다.
전화는 끊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으며, 중간중간 속이 살짝 울렁해지는 애교 섞인 콧소리와 “오빠야~”가 교무실을 부유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다.
사람 사는 얘기니까.
그런데 그게 매일, 빠짐없이, 마치 출근 도장처럼 반복됐다.
공강 시간도 엄밀히 말하면 근무 시간이지만 상담이 밀리든, 다른 업무가 쌓이든, 그건 알 바 아니었다.
‘오빠야’와의 통화가 1순위. 업무는 그다음, 학생은 그다음의 다음쯤.
학생에게도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불만은 늘 만땅이었다.
교무실 커피는 너무 싸구려고, 화장실 휴지는 너무 얇았고, 복사 용지는 너무 거칠었고, 의자 쿠션은 그녀의 경력을 받치기엔 너무 부족했다.
“에휴.. 또 다른 학원을 알아봐야 하나..?”
이 말은 혼잣말이 아니었다.
교무실 전체 공청회용 멘트였다.
하루에 한두 번, 빠짐없이.
그리고 문제의 그날.
“지금 수업인데… K 선생님 어디세요?”
수업이 시작됐는데 K는 교실에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안 받는다.
한 번 더.
두 번 더.
그쯤에서 전원이 꺼졌다.
출근을 아예 안 했으면 덜 이상했을 텐데, 그녀는 수업 하나를 정상적으로 마친 뒤, 아무 예고 없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증발했다.
심경의 변화였을까.
깨달음이었을까.
아니면 오빠야의 호출이었을까.
원래 K의 책상에는 교사용 교재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치울 것도, 남길 것도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떠날 준비가 완료된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원장님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문자를 보내도, 카톡을 보내도 답이 없었다.
다만 모든 메시지는 정성스럽게 ‘읽씹’ 처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교무실에는 “세상에 저런 인간도 있냐”는 말과 함께 혀 차는 소리만 남았다.
그리고 몇 주 후. 원장님이 아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한숨을 먼저 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K한테 연락이 왔네요. 왜 월급 (실은 하루치 일당) 안 보내냐고. 안 보내면 신고하겠다 합니다."
이 밖에도 희한한 캐릭터들이 많았다.
출근 시간보다 항상 10분씩 늦게 오는 사람...
보강시간에 학생 불러 앉혀 놓고, 프린트물 하나 던져 주고 자기는 폰만 만지작 거리는 사람...
전날 과음을 하여 앞 수업을 펑크를 수시로 내는 사람... (얼마 안 가 해고)
급한 일 있다고 자기 애인을 (강사 아님) 대신 보내는 사람...
강의는 안 하고 되도 않는 인생 멘토링만 하는 사람...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그저 폭탄을 잘 피해 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