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사냥

by 이삼오

학원에는 네 가지 자연법칙이 있다.



중력, 마찰력, 작용 반작용, 그리고 단어시험.



학원에서 단어 시험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학원에 올 때마다 초등학생은 20~40개, 중학생은 40~80개.



어른들은 이걸 “적당한 분량”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은 “사형 선고”라고 부른다.



커트라인은 틀린 개수 10%.



틀린 게 아니라 살아남지 못한 단어들이 있는 것이다.



통과 못 하면 남는다.



당일이든 다음 날이든 통과할 때까지. 학원은 아이를 가둔다.



그리고 “책임진다”라고 부른다.




진아는 4학년.



아이브를 사랑하고, 장원영의 머리핀 색깔은 외우면서 necessary는 못 외운다.



어느 날, 단어 시험에서 또 떨어졌다.


진아의 눈은 세계 멸망 3초 전 같은 수분 함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 진아는 사라졌다.



CCTV에 찍혔다.


주위를 두 번 둘러보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



완벽한 탈옥이었다.



선생님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이를 잃어버리면 형법, 민법, 학부모, 원장이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 같았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진아였다.



손에는 삼각김밥.



“너 어디 갔었어?!”


“배고파서… 편의점…”



“그래도 너 참 책임감 있구나.” (학원을 탈출해 놓고 돌아온 걸 말한다.)



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주, 학원을 끊었다.



탈옥 성공.




범준이는 게임 중독이 아니라 현실 금단 증상이 있다.



집에서는 공부를 못 한다.


그 공간은 게임, 밥, TV, 수면을 위한 성역이다.



단어 시험?


학원에 남아서 하면 된다.


붙잡히면 한다.


안 잡히면 안 한다.



범준은 도망의 동선을 외운다.


단어보다 잘 외운다.



PC방. 무인문구점. 편의점.



그날, 선생님이 직접 출동했다.



PC방에서 범준이는 헤드셋을 끼고 초등학생이 사용하면 안 되는 욕을 돌아가신 김수미 선생님 보다 더 찰지게 하고 있었다.



“범준아.”


범준이의 게이밍 체어 뒤에서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렀다.



“어? 씨X— 아!!! 아니..!! 선생님!"



체포 완료.



학원으로 송환.



면담이 열렸다.


엄마와 담임과 범준. 3자 회담.



범준은 반성했다.


내일을 약속했다.


거짓말이었다.



다음 주, 학원을 끊었다.



도주 성공.




선생님이 말했다.



“에휴, 우리가 무슨 추노꾼도 아니고…”



하지만 그들은 오늘도 아이들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서로 공유한다.



PC방. 편의점. 엘리베이터.



그리고 내일도 단어 시험은 열린다.



사냥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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