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소나 키울걸...

by 이삼오

H쌤은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나름 시골에서 대성한 케이스다.



집안에서 4년제 대학을 최초로, 그것도 여자로, 처음이었다.



집안 대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웠다.



축사 규모도 제법 돼서, 시골에서 알아주는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기준에서도) 부자였다.



그러나 성적이 아깝다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권유로 대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이 희망했던 영문과를 진학, 졸업 후 하고 싶었던 강사일을 시작했고 20년 가까이 되는 경력을 쌓았다.



내신의 여왕이라고 할 만큼 시험 점수를 잘 올려 주는 선생님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유독 한 학부모가 학벌로 태클을 거는데...





00이 어머니는 H쌤의 지인의 지인이었다.



뭐, 그냥 남이다.



00 이는 이번 시험에서도 100점을 받았다.



H쌤이 00이네 반 내신 담당을 맡은 이후로 00 이는 단 한 번도 100점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00이의 어머니가 학원을 끊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유인즉슨, 이제 00 이가 중3이 되는데 실력이 더 나은 선생님 께 맡겨보고 싶다는 거였다.



아니, 아이도 H선생님을 정말 잘 따랐고 내신이며 수행평가며 정말 제공해 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보였는데 어떻게 하면 더 낫다는 것인가...



"그냥, 솔직히 H선생님의 학력이 좀 걸리네요. 국립대지만 지방대 출신이라는 게... 우리 00 이는 SKY를 목표로 하고 있어서요. 아무래도 그 정도 레벨의 선생님을 알아보려고요. 과외를 해보든..."



그 순간, 20년 경력, 수백 명의 만점, 수천 장의 분석 노트가 ‘지방대’ 세 글자로 요약됐다.



본인도 내심 더 좋은 대학을 못 간 것 때문에, 이런 말들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 내신 때 스스로를 갈아 넣으며 학생들을 챙기며 일을 했다.



지난 몇 년 간 학생들 내신 성과가 가장 뛰어난 대표 강사인데... '지방대 출신' 한마디에 본인의 노력들이 부정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방에 살면서 지방대 간 게... 뭐, 어때서?



그렇게 몇 년 후, H쌤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출근을 했다.



"쌤, 몇 년 전에 00이 기억나요? 지인이 얘기해 줬는데... 그 아이 내 후배 됐어요! 하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 엄마 상담 할 때도 툭하면 노골적으로 내 학벌 까대더니만... 지금쯤 생각이 참 많을 거예요. 더군다나 거긴 내가 다닐 때보다 경쟁력이 훨씬 더 떨어진 걸로 아는데."



고등학교 올라가서 00 이는 생각만큼 안 풀린 모양이다.



H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 했다.





"그냥, 아버지 축사나 물려받아서 소나 키울걸... 소들은 말이죠, 내 학벌 안 묻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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