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하고 싶어

by 이삼오

학원에 보내는 대부분의 학부모는, 당연하게도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많다.



때로는 관심을 넘어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의 부담을 아이와 학원에 떠 안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J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학원에 온 남자아이였다.



그럭저럭 똘똘한, 게임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초등학생이었다.



최근에 다른 소도시에서 이곳으로 전학을 왔다고 했다.



학원 첫날, 엄마와 친할머니와 함께 등원하였다.



어머니 보단, 할머니의 입김에 압도적으로 센 느낌이 들었다.



"우리 애가 전에 있었던 동네에선 영재 소리 들었답니다. 수재예요, 수재!"



"그리고, 얘네 아빠가 서울 신촌에 있는 독수리 대학교 출신이에요! 자기 아빠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얘기를 원장님, 교육 부장님, 다른 선생님들 듣는 앞에서 여러 번 강조하셨다.



아이는 부끄러워하기보단,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생글생글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면, 실제로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듯하기도 했다. (실제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레벨테스트를 쳤다.



학원 레벨 테스트는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이 레벨 테스트는 결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시험이 아닌 말 그대로 현 수준에 따라 맞는 반을 배정하기 위한 시험이다.



결과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비공개이다.



110점 만점에... 28점.



처음 학원 온 아이들이 70점 이상을 넘기면 고득점자로 분류되고 최상위 반에 배치된다. (역대 최다 기록은 102점, 차원이 아예 다른 아이였다.)



40점 이하면 하위반으로 분류가 된다.



제일 상위반은 알파벳 A가 붙고, 그다음 B, C, D, E 순으로 낮아진다.



J는 D반으로 배정되었다.



원래는 E반이 맞지만, 현재 인원이 가득 차서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똥강아지가 고작 D반이라니... 테스트 결과가 잘못된 거 아녜요?! 납득이 안 되네... 다시 치게 해 주세요!"



별의미 없다고 재차 설명드렸고, 아이가 1시간 반 동안 고생했는데, 너무 버거울 거라고 설득이 안 됐다.



하는 수 없이 다음날 다시 치기로.



결과는... 23점. 더 낮게 나왔다.





그렇게 J는 1년 넘게 비공식적 (?) 천재의 타이틀을 달고 학원을 다녔다.



단어 시험을 쳐도 겨우 통과하거나 다시 시험을 칠 때가 많았고 숙제는 퐁당퐁당 식으로 해오곤 했다.



그냥, 지극히 평범하거나... 아니 그보다 공부를 못하는, 안 하는 학생이었다.



아무리 보강을 해도, 어르고 달래도 별 효과가 없었다.



J를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은 어머니나 할머니의 상담 때 상당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레퍼토리는 항상 뻔했다.



우리 애가 지금은 조금 슬럼프라 그렇지 제 실력이 아니라고, 지금쯤 최상위 반으로 가야 하는 게 맞으니까 그렇게 배치해 달라는, 레벨테스트를 수시로 쳐보는 안 되냐는, 얘네 아버지가 어릴 때 어땠냐면은...



결국 J는 우리 학원과 맞지 않는 거 같다 하시며 그만두었다.





(대략 1년 뒤...)



J가 중학생이 되어서 돌아왔다.



키도 부쩍 크고... 그런데 눈에 초점이 안 맞아 보이는... 약간 넋이 나가 보였다.



좀, 지쳐 보였다고 해야 하나?



다시 컴백하게 된 계기는, 중간고사 시험이 40점대가 나온 것이다.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치는 시험인데, 전 과목이 40점에서 60점대를 받아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녔던 거 같다.



수재가 받을 수 있는 점수가 아니다.



그동안 다른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 학원 흉을 엄청 보시면서 어머니는 한탄을 하셨다. (이번에 할머니는 보이시지 않았다.)



중등 레벨 테스트를 쳤다.



초등 레벨 테스트 보다 더 매운맛이다.



120점 만점에 21점...



역대 최저 점수를 (19점) 기록할 뻔했다.



1년 뒤 돌아온 J를 접한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하시는 말씀이, 학습 상태가 더 안 좋아졌고 태도 또한 많이 불량하다고들 하셨다.



단어 시험은 거의 항상 통과를 못했고 숙제는 안 해오는 날이 더 많았고, 책도 안 들고 오는 날이 많았다.



기말고사 성적이 나왔다.



57점.



성적이 오르긴 했다.



J의 어머니는 여전히 당신의 아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으신 듯했다.



그래도 중학교부터는 공식적인 수치인 성적으로 어느 정도 입증이 되니, 한편으론 현실을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J가 웬일인지 학원에 일찍 와 있었다.



"밥은 먹었니? 요즘 좀 어때?"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만 띤 채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 후 J가 대답했다.




"도대체 엄마랑 할머니는 내가 얼마나 못해야 천재가 아니란 걸 받아들일지... 아빠가 Y대 출신인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 건지... 천재 코스프레 좀 그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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