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싫어서가 아니야

by 이삼오

날도 슬슬 풀려 가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영하에 가까운 봄바람 아닌 봄바람이 뒤에서 통수를 한 대씩 날린다.



날씨를 정말 알 수 없다. 원래 그렇단다. 내가 적응할 수밖에 없다.



왜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봄, 가을에 모두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알 거 같다. 그 안에는 옷이 있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 대부분이고 날씨가 언제 변할지 모르니, 다들 알아서 대비하는 거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등교일, 스쿨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준이 형이랑 경준이를 비롯, 같이 타는 또래 애들 몇 명이 안 보인다.



'단체로 어디가 아픈가?'



별생각 없이 멍 때리던 중 버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칼같이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서고 자리를 훑어본다. 기분 탓인가? 평소 보다 좀 비어 보이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반 친구들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괜히 모를 불안감이 덮쳐왔다. 어떤 선생님이 다가와서 나에게 뭐라 뭐라 하신다.



사이언스... 과학 뭐라고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살짝 놀란 표정인 게 더더욱 찝찝 해졌다.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줄을 서는데... 헐.. 5학년은 나 혼자 줄을 서고 있었다.



모든 시선은 나로 향했다. 정말 싫다. 아, 정말 주목받기 싫다. 괜히 짜증 나고, 열받고, 슬프고, 서럽고, 부끄럽고, 죄스럽고, (누구 한 테인지는 모르겠으나) 원망스러웠다.




텅 빈 교실 안... 당황스러웠다.



그때 마침 지나치던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계속 사이언스 어쩌고 저쩌고 하신다. 어느 정도는 알아듣겠고 대부분은 잘 모르겠다. 잠시 어디 가시더니 성준이 형과 같이 나타났다.



'응? 형은 오늘 학교 안 왔잖아?'



형은 오전에 일이 있어서 따로 등교를 했다고 한다.



오늘 5학년 단체로 Ontario Science Centre (온타리오 과학관)로 현장체험 갔는데 너는 왜 안 갔냐고... 경준이가 너한테 얘기 안 해 줬냐고, 가정 통신문 안 받았냐고, 선생님이 또 얘기 안 해줬냐고... 형은 나름 다정하게 (상당히 젠틀한 형이다) 물어봤지만 나는 마치 심문당하는 심정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억울할 일도 아니고 그냥 조금 안타까운 상황인데, 나 자신을 한 없이 자책했다.



'내가 영어를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랑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 아니야! 이제 이민 온 지 열 달 정도 됐으면 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성준이 형과 선생님은 괜찮다며 나를 달래줬다.




현장학습을 간 친구들은 하교 시간 가까워질 때쯤 도착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교감실에서 간단한 과제 몇 가지만 하면 된단다.



하아, 이건 뭐, 벌 받는 것도 아니고. 아니다. 영어를 못한 죄이다.



영어를 못하는 게 내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현실은 니 잘못 내 잘못 없다. 그냥 상황이 모든 걸 증명할 뿐이다.



현장학습도 엄연히 수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내가 일찍 하교하는 건 안 된다고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신 과제를 마무리하고 확인받으면 놀던 책을 읽던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일러주신다.



과제라... 산수 서 너 장 정도, 끝.



너무 심심해서 몸이 베베 꼬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 하나를 골라 왔다. 공포 소설 같은데, 그냥 표지가 맘에 들어서 집어 왔다.



읽을 수 있으나 뜻은... 4분의 1 정도 이해 했으려나?



책을 덮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딱해 보였는지 교감 선생님이 아주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 말을 걸어 주셨다.



"그때 마젤란과 다빈치는 (13화 '웨어 알 유 프롬?' 참고) 아직도 놀리니?"



"노. 위 알 오케이."



"아! 다행이네."



"아이 원 투 고 투 스캇랜드."



"오! 그래? 무엇 때문에?"



"백파이펄스 (백파이프 연주자) 앤드... 로크 네스, 앤드 스카치 캔디 (할머니의 최애 사탕)."



한참을 웃으신다.



원래 완전 무표정에, 완전 백발에 완벽한 8대 2 가르마, 흰 콧수염, 그러나 탱탱한 피부를 가지신 교감 선생님의 웃음 한 방에 정겨운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다음 내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계속 말씀하셨다. 대부분 스코틀랜드 관련한 얘기 같았다. 왠지, 여기도 한이 많이 맺힌 민족이니... 한 많은 이들은 자연스레 투머치 토커가 된다.





하교 시간쯤 되어서 반 아이들이 도착했다.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떠들썩했다. 아니, 현장 학습 내내 시끌시끌했을 거다.



아이들은 덩그러니 혼자 교실에 앉아있는 나보고 한마디 씩 건넨다.



"왜 오늘 같이 안 갔어?"



"아이 돈 라잌 싸이언스..."



"나도 그렇긴 한데, 그냥 놀러 가는 거니까 재밌잖아."





(며칠 전...)


선생님이 칠판에 무언가 적으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신다. 지하철, 버스 어쩌고 저쩌고 하시는데 말이 워낙 빨라서 잘 못 알아듣겠다. 버스, 지하철이 뭐 어쨌다는 건지...



아이들은 살짝 상기된 표정이었던 거 같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재잘재잘한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 올 거냐고 물어본 거 같았다.



아, 지하철 역에서 모여 다 같이 가는 거였군. 올 때도 마찬가지로 버스와 지하철로 학교에 돌아와서 각자 스쿨버스로 하교하는...




스쿨버스 줄 서 있는데 경준이가 한 마디 건넨다.



"너 왜 안 왔어?"



"뭐, 그냥.. 별로 관심 없어서..."



말을 흐렸다. 경준이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내 표정이 말 걸지 말라라고 쓰여있었나 보다.





집에 도착.



식탁 한편, 신문지 더미 밑에 종이 쪼가리 하나가 보였다.



'현장 학습 부모님 동의서'



내가 이걸 들고 오긴 했구나. 내가 더 자세히 들여다볼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다시 한번 자세히 본다. 정확히 이해는 못 했지만 대충 알겠다. 날짜, 시간, 장소는 눈에 잘 띄게 되어있었다.



동의서 싸인란에 아무것도 안 쓰여 있었다.



종이를 한 참 들여다봤다. 화가 났다.



그런 다음 잘게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앞으로 내 건 내가 더 잘 챙길 거라고 다짐하며.




Ontario Science Centre는 토론토의 명소 중 하나다.



그런데 나는 여기를 한 번도 못 가봤다. 아니, 안 가봤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몇 개월 전 뉴스에 이곳을 영구적으로 폐쇄했다고 나왔다. 주정부가 사전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거 라던데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69년 첫 개장한 이곳은 이제 역사가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Ontario Science Centre를 평생 못 가게 되었다.

keyword
이전 18화님아, 그 손가락을 쓰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