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정도 되니까 날씨가 정말 좋아지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했던,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하던 변덕스러운 날씨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봄이 왔어도, 한낮에는 반팔과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나가도 될 따뜻한 날씨였지만 길가와 도로가 옆은 거대하게 쌓여 버린 눈더미가 완전히 녹지 않았다.
쌓인 눈은 인도와 도로 사이 공간에 깔끔히 치워져 더 쌓이고, 종종 비가 와서 얼음층을 형성하고, 날이 잠깐 풀린 틈을 타 눈이 스르륵 녹기 시작하기 무섭게 다시 강추위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이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니 도로가 옆은 (높은 곳은) 성인 키보다 훨씬 높은 설산, 혹은 빙하가 완성되었다.
기온은 20도를 훌쩍 넘어 여름 복장인데 종종 눈과 얼음 위를 걸어 다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루 게릭의 어록이 떠오르는 첫겨울이었다. 이렇게 혹독하고 매서웠던 겨울의 흔적은 5월 말쯤 돼서야 사라졌다.
아버지와 버스를 탔다. 그리고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네 정거장을 타고 도착한 곳은 큰 길가에 있는 어떤 식당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좁지만 기다란 통로가 눈에 들어왔고 한편에 기다란 바와 의자들이 촘촘히 놓여있었다. 바 뒤로는 바로 주방이었고 모든 요리들이 즉석 해서 나오는 식이었다.
일종의 다이너, 한국으로 치면 기사식당 정도 되는 포지션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아버지가 성당에서 알게 된 어느 부부의 식당이었다.
나도 성당에서 몇 번 인사를 드려서 친근한 분들이었다.
"형제님 오셨습니까! 복사하는 요한이도 왔구나. 어서 앉으세요."
바 중앙 정도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시간도 아닌 낮 시간 때였지만 손님들이 자주 오고 갔다. 주로 혼자 오는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저씨와 손님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갔다. 대부분이 동네 단골손님들인 듯하다. 다들 햄버거나 샌드위치에 맥주 한 병을 걸치고 있다.
정겨운 사람들이 자주 오고 가는 곳이어서 그런지 식당은 따뜻한 분위기가 흠씬 느껴졌다.
잠시 후 음식을 내어 주셨다.
제법 큰 접시에 익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은 무언가가 푸짐하게 쌓여있다.
아하, LA갈비다.
소고기가 싼 캐나다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 보다 소고기를 훨씬 더 많이 먹는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한인 가정에 초대받거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꼭 빠지지 않는 주인공은 바로 이 LA갈비다.
캐나다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면 사람들은 집이던 공원이던 바베큐를 즐기는 게 국룰이다.
주택 생활을 많이 하는 캐나다 국민들은 손님을 초대해도 여유가 넘친다. 무엇을 지지고 볶고 요리해서 대접할 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먼바다 건너편에 있는 대한민국의 몫이다.
투박한 그릴 안에 숯을 한가득 쏟아붓고 불을 붙이고, 마트나 정육점에서 적당하게 끊어온 고기를 석쇠 위에 얹어버리면 끝이다. 고기에 소금이나 시즈닝을 대충 뿌리고 개인 취향에 맞는 소스를 찍어먹는다. 야채도 굽고, 새우나 생선, 각종 해산물, 구워 버릴 수 있는 건 거침없이 석쇠 위에 다 펼쳐 놓는다. 석쇠 위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된다. 다른 거 다 필요 없다. 바베큐면 그냥 게임 끝.
내 앞에 놓여 있는 접시는 고기로만 여러 번 리필이 되었다.
고기가 간이 그리 세지 않은 양념에 숯향이 가득 배어있다. 너무 얇지도 굵지도 않은, 딱 한 입씩 베어 물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있다. 갈비가 내 입으로 들어올 때마다 오감이 폭발해 버린다.
할머니는 내가 캐나다 가면 뭐 먹고 사냐며 걱정 어린 말을 건네곤 했는데... 걱정도 팔자다.
내가 LA갈비를 먹어본 기억이 있던가?
한국에서, 이민오기 1, 2년 전쯤인가 한 번 먹어본 거 같은데... 하여튼 입에 고기 맛이 트이기 전이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
어느새 갈비뼈들은 접시에 수북이 쌓였다.
'내가... 너무 많이 먹었나?'
초대받은 식사 자리지만 눈치가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먹는 거 앞에서 눈치 따위는 챙기지 않던 나였지만 지난 중국 뷔페 (10화 '말타기 노, 중국집 굿') 이 후로 알게 모르게 눈치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맛있게 잘 먹어서 흐뭇하다며 다시 한번 리필을 해주셨다.
'진짜, 딱 여기까지 만이다.'
내 뇌는 눈치를 챙겨 둔지 오래지만 눈치 따위는 '1'도 없는 내 위가 문제였다.
큰 키도 아닌, 큰 덩치도 아닌, 볼 살만 살짝 통통한 내 외형과 달리 나의 식성과 먹성만큼은 씨름 꿈나무였다.
"갈비 더 줄까?"
"아니요. 배불러요. 잘 먹었습니다."
"아, 잠깐만 있어봐."
아주머니는 몇 분 뒤 또 다른 접시를 내 앞에 내놓으셨다.
"이게 피시 앤 칩스라는 건데 우리 집 대표 메뉴야. 한 번 먹어봐."
아, 책에서도 봤던 영국을 대표하는 서민 음식.
마치 황금을 두른 듯한 튀김옷을 보자 내 위는 또 눈치 없이 좀 전에 저장한 갈비를 빠르게 장 쪽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포크와 나이프가 있었지만 나이프 필요 없이 포크로 떠먹어도 될 만큼 튀김옷과 생선살은 부드러웠다.
비릿함 은 전혀 없고 뽀얀 생선살은 감칠맛과 부드러운 단 맛이 가득했다.
원래 생선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먹을 수 도 있다니...
그나저나 큰 일이다. 자주 먹지도 못 할 것들을 맛보았으니, 눈앞에서 계속 아른 거려 시도 때도 없이 군침을 흘릴 거 같다.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LA갈비를 먹을 수 있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피시 앤 칩스를 파는 곳도 제법 생겼지만 이 또한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