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 기초학개론

by 이삼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캐나다에서의 두 번째 여름 방학을 맞이한다.



학교는 작년과 다르게 놀자판(?) 분위기는 아니다. 처음 느꼈던 야구의 열기는 온데간데없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작년 가을 우승 이후 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거물급 FA들이 대거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팀은 리빌딩 모드로 가고 있었다. 즉, 열심히 삽질 중이었다. 게다가 하키팀 립스의 사정이 괜찮은 것도 아니고, 다들 내년에 새로 생길 NBA팀인 '토론토 랩터스'에만 크게 관심을 둘 뿐이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토요일 늦은 오전, 버스에 몸을 싣는다. 대략 10분 후 지하철 역 도착.



13개 정거장 후 Dundas역에서 내린다.



Dundas 그리고 Queen, 이 두 지하철 역을 품고 있는 거대한 쇼핑 몰인 The Eaton Centre 앞에서 전차를 기다린다.



이튼 센터 앞에 눈에 들어오는 핫도그 스탠드가 있다. 딱 봐도 목 좋은 곳이다. 항상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줄이 길지는 않아도 핫도그 아저씨는 쉴 새 없이 소시지를 굽고 돈 계산까지 매우 신속했다.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이나 핫도그 주인아저씨가 알아채지 못할 거리에서 가판대를 유심히 관찰했다.



소시지는 네 종류. 레귤러 (일반), 킬바사 (폴란드식 소시지), 이탈리안, 그리고 흰색의 독일 소시지.



보아하니 레귤러와 이탈리안이 가장 많이 팔리는 듯했다.



석쇠 위에 소시지가 올라가고 얼마 안 있다가 사람들을 적당히 현혹할 만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냄새가 죽인다.



토핑으로는 피클, 핫페퍼, 양파, 옥수수 알갱이, 자우어크라우트 (독일식 백김치...라고 보면 된다), 케첩, 마요네즈, 머스터드, 바베큐소스가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한다.



분명 지금 배가 고프다. 나는 아침은 항상 거른다. 입 맛도 없을뿐더러 딱히 차려주거나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핫도그를 먹으면 배가 차서 이따 모임 마치고 피자를 못 먹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모임 마치려면 최소 2시간은 남았는데...



주머니사정을 확인해 본다.



5달러 지폐 하나와 1달러짜리 동전 하나, 25센트 여러 개가 있었다.



일반 핫도그 (2달러) 하나 사 먹기에는 괜찮은 재정 상황이다. 마음만 먹으면 훨씬 더 커다랗고 푸짐해 보이는 이탈리안 (3달러 50센트)도 가능하겠지만, 핫도그 한 개 먹는데 내 전재산의 절반은 너무 큰 사치다.



그래. 결심했다. 맨날 눈으로만 흘겨보던 핫도그 스탠드에 나도 당당하게 줄을 섰다.



"원 레귤럴 플리즈."



토핑은 케첩과 베베큐소스로만 한다. 첫 핫도그이니 나름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와 먹을 때 토핑을 질질 흘릴까 봐 하는 걱정에서다.



한 입 크게 베어문다.



아, 열라 뜨겁다. 입천장 데었다. 입천장을 혓바닥으로 훑으니까 살갗이 벗겨졌다. 핫도그 먹다가 입천장 까진 애가 나 말고 또 있을까?



조심스레 작은 입으로 베어문다. 맛있다. 소시지는 풍성했고 노르스름 한 핫도그 번은 쫄깃함이 살아있었다.



절반 이상 먹었을 때쯤부터 내가 공복이라는 걸 상기시켜 주었는지 먹는 속도가 빨라진다.



다 먹었지만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없었다. 피자를 양 껏 못 먹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토요일 오전 늦은 시간, 이튼 센터 핫도그 스탠드 앞을 또 서성인다.



오늘은 다른 소시지를 먹어 볼까 하다가도 레귤러 (2달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3달러 대 인지라... 재정적 여유가 더 생기지 않는 한 포기하기로 한다. 그 대신 다른 조합의 토핑으로 색다른 맛을 연출해 보기로 한다.



"원 레큘럴 플리즈."



"저번주에도 오고, 또 왔네?"



오, 눈썰미 좋으시다. 어떻게 알았지?



"하우 디쥬 노우?"



"아이 노우 에블봐리. 아이 노우 올 마이 커스터멀즈."



하긴 근데, 이 복잡한 다운타운에 혼자 돌아다니는 5학년 짜리 아이는 나 밖에 없는 거 같다. 어느 정도는 눈에 띌 거다.



이번에는 매콤 새콤 콘셉트로 가본다. 피클과 핫페퍼, 자우어크라우트는... 통과. 색깔이 영 안 내킨다. 여기에 케첩과 머스터드로 마무리한다.



새콤함이 먼저 코로 훅 올라와 한 방 찔러준다. 그다음 적당한 매콤함이 입을 감싸고돈다. 그래도 케첩의 달달한 맛과 마요네즈의 고소함이 적절하게 맛의 균형을 잡아 준다.



토핑을 흘릴까 봐 지난주 보다 더 조심스레 한 입씩 베어문다.



오늘도 절반쯤 먹은 후부터 속도가 조금 빨라지기 시작한다.





같은 시간, 같은 날씨, 같은 아이, 같은 핫도그 스탠드.



"원 레귤럴 플리즈."



"오. 유 어겐. 웨어 알 유 고잉 에브리 위켄드?"



"아이 해버 치얼치 미팅."



"오. 륄리? 굿!"



"두 유 고투 치얼치?"



"그럼. 여기, 이 핫도그 스탠드가 나에게는 교회이자 성전이지. 하하."



"하하하하."



삼주 연속, 이 정도면 단골인가? 아닌가? 거의 매일 와야 단골인가? 아저씨가 나를 알아봐 주니 반가웠다.



오늘은, 모든 토핑과 소스를 조금씩 다 때려 넣기로 한다. 다만 자우어크라우트는 아주 찔끔 소시지와 번 틈사이에 끼워준다.



아, 진정한 맛의 조화를 찾은 거 같다. 별로일 거 같은 자우어크라우트도 아삭한 신김치 맛이 나는 게 나쁘지 않았다.



한 참 즐기고 있는 데 한 정거장 앞에 도착한 전차가 보인다.



맛을 한 참 즐길 거라고 천천히 먹고 있었다.



전차가 정류장 앞에 도착했다. 그냥 쿨하게 보내준다.



전차의 승차감은 매우 부드럽지만 사람이 붐비는 실내에서 무엇을 먹는 게 눈치가 보였다.




당분간 매주 토요일 늦은 오전, 사람이 매우 붐비는 토론토 다운타운 한가운데 서서 핫도그로 브런치를 먹는 게 나만의 의식이 되었다.



핫도그 아저씨와 나름 친해져 핫도그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저씨는 바빠도 친절하게 말을 들어주고 또 걸어 주었다.



이런 식으로 내 말문도 급속도로 트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문화에도 빠르게 적응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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