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지금!)

by 이삼오

또 토요일이다. 좋은 날이다.



학교에 안 가서? 아니다. 난 학교 가는 게 좋다.



노는 날 집구석에 있어봐야 맨날 눈치나 보고 동생 녀석이나 돌봐야 한다.



한 두 살 어리면 캐치볼을 하던, 뭐라도 같이 해보겠다. 그러나 여덟 살 터울이면 같이 노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가 녀석을 돌봐야 한다. 그나마 귀여운 구석이 있고 나를 그럭저럭 잘 따르니 크게 손은 안 간다.



그러나 복사단에 들어가고 난 후, 매주 토요일 오전에 성당 회관에 갔다가 거의 저녁때쯤 집에 오는 생활로 자릴 잡았다.



다행히 부모는 성당과 관련된 거라면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다

.



여느 때와 같이 핫도그로 브런치를 먹으며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전차에 오른다.



10분 후쯤 성당 회관에 도착, 모임 장소인 지하로 내려간다.



그런데 유독 오늘따라 더 시끌벅적하다. 익숙한 듯하면서 익숙지 않은 음악이 들린다.



복사단 형들 몇과 학생회 형들 몇이 모여서 붐박스에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한국 음악이긴 한데 누구 노래인지는 모르겠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지금!)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형들에게 물어본다. '듀스'란다. 내가 이민 올 때쯤 데뷔했다. 어찌 보면 모를 법도 하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던 가수는 서태지와 아이들, 변진섭, 현진영, 신승훈, 노이즈 정도?




성당 형, 누나들은 나에게 있어 K팝 전도를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이민 오고 정신없이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갔고, 영어도 슬슬 트이고 토론토 생활에 지극히 익숙해질 무렵부터 한국에 대한 향수가 한 번에 강력하게 밀려오던 시기였다.



형들은 한인타운 서점에서 구한 잡지와 CD, 테이프로 한국 음악을 접하고 있었다. 춤은 한인 식품점에서 '가요 톱텐' 비디오를 빌려 보며 연습을 했다.



화질이 정말 개떡 같고 거지 같은 비디오를 보며 춤을 분석하는 모습이 매우 진지했다. 막내인 나의 역할은 리모컨을 쥐고 있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되감기, 재생 버튼을 누르는 임무였다.



듀스는... 정말 멋졌다.



서태지와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에... 뭔가 더 세련되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나도 내심 형들 틈에 껴서 같이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춤을 춰 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너무 쑥스러웠다. 게다가, 내가 춤을 어느 정도 알아야 끼든 말든 하지 않겠나.



그러다 형 한 명이 나보고 와보라고 손 짓을 한다.



"자, 따라 해 봐. 오른발은 앞으로 미끄러지듯 이렇게. 팔 동작은 이렇게. 함 해봐."



오, 고마운 형이다. 동작을 열심히 따라 해 본다. 그런데, 몸이 내 두뇌가 내린 명령에 맞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푸하하하하! 춤이 아니라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애 같다!"



모여있던 형들은 다 웃고 누나들은 귀엽다며 잘했다고 격려해 줬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왜 이렇게 갑자기 춤에 열심인가 봤더니 8월에 성당에서 복사단, 학생회가 단체로 캠핑을 간단다. 원래 자주 모여서 춤을 추기도 하지만 겸사겸사 장기자랑 준비 할 겸 춘단다.



누나 몇은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에 맞춰 앙증맞은 춤을 추고 있었고 한쪽에는 통기타 치는 형과 어떤 누나가 듀엣곡을 연습 중이었다.




종교 모임과 활동을 위해 있는 장소이지만, 외국에 있는 한인 성당이란 곳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먼 고국을 뒤로하고 떠나 모인 사람들이 한 곳에 집합하여 지내는 이곳은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그 이면엔 석연찮은 일도 종종 발생하기 마련이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리운 고국을 떠나오게 된 사연도 다 달랐다.



어떤 형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믿었던 사람에게 큰 사기를 당하자 회의감을 갖고 정이 떨어져 이민 왔단다.



어떤 누나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 했는데 엄마의 형제들이 다 토론토에 살고 있다고 해서 왔단다.



어떤 형의 부모님은 독재 정권이 너무 싫어서, 한국에는 미래가 없을 거 같다고 해서 이민을 왔단다.



어떤 누나의 아버지는 한국의 조직문화에 진절머리가 나서 이민을 왔단다.



이 외에도 정말 가지각색의 이유가 있겠지만, 또 견디기 어려운 무언가 있지 않았을까.



어떤 누나가 나에게 물어본다.



"야. 너희는 뭐 때문에 이민 왔어?"




(93년 초, 막내 고모와의 대화)


"다 니 아빠가 너를 생각해서 가는 거여."



"나 때문에 간다고...? 난 내가 가자고 한 적이 없는데?"



"니 군대 보내는 것도 싫다 그러고, 또 대학 입시 전쟁 같은 것도 맘에 안 든댜. 또 자연스럽게 영어도 배울 수 있자녀."



"아니 남들 다 하는 건데... 또 굳이 영어는 배워서 뭐 하게? 그게 이유는 아닌 거 같은데?"



"아니 니 아빠가 그리 말했으면 그렇겄지, 아녀? 니가 또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려."



(그게 다가 아닐 거 같은데...)




차마 병역 기피와 대학 입시 경쟁을 피하려 이민을 왔다고 할 수가 없었다.



난처할 때 가장 정석인 답변을 했다.



"모르겠어. 어리다고 얘기 안 해주나 봐."



솔직히 진짜 모르기도 몰랐다. 막내 고모가 얘기해 준 말은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다. 여러 이유 중 포함이었겠지만, '나'를 위해 이민을 갔다... 아니라고 본다.



이 날 별거 아닌 질문에 집에 오는 전차, 지하철, 버스 안에서 나 자신에게 같은 질문만 무한 반복 중이었다. 하지만 답은 수십 가지였다.



질문: 너희는 왜 이민 온 거야?



답변: 군대 안 가려고, 한국은 대학 입시가 너무 치열해서,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공기가 좋아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안 때려서, 사람들이 새치기를 잘 안 해서, 햄버거랑 피자가 더 맛있어서, 학교랑 반 아이들 수 가 적어서, 야구를 더 잘해서, 하키를 더 잘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그렇지만 나에게 납득이 갈 만한 답변은 할 수 없었다. 진짜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르는 거 같다.





요 근래에 들었던 한국 음악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는다.



음악이 듣고 싶다.



그런데 CD플레이어고 워크맨이고 아무것도 없다. 싸구려 라디오 카세트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정말 하기 싫은 부탁을 또 해야 하나.



"아빠, 나 실은 음악이 정말 듣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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