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주인

by 이삼오


원장님은 전국을 누비면서 이 학교 저 학교 강의 및 창작 활동을 병행했다.



학원에 일주일에 한 번 내지 두 번 오시는 가? 항상 피곤에 찌들어있는 모습이지만 예전과 다르게 학원은 별 탈 없이 운영되고 있으니 에너지 넘치는 눈 빛이 감돌았다.




원장님: 하아... (고개를 떨구신다)



나: 무슨 일 있어요?



원장님: 나, 교수 임용 합격했다.



나: 우앗! 축하해요 형!! 아니.. 원장님!



원장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매주, 매달, 몇 년간 그렇게 여기저기 치이면서, 더러운 꼴을 보며, 온갖 꼰대질, 갑질과 설움을 감내하며 얻게 된 소중한 타이틀 '정교수'.



고생과 노력을 알기에 내 일 마냥 너무 기뻤다.



그러나, 이 상황은... 학원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정교수가 되면 개인 사업체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 명의를 바꾸는 방법도 있겠지만 교수 커리어에 너무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방법은 두 가지:


1. 학원을 접는다.


2.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아마 내 생각에 2번에 더 무게가 실린다고 봤다.



'슈퍼스타K' 광풍에 힘입어 학원은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전국적으로 학원이나 실용음악과가 우후죽순 생기던 시기였다.



물들어 오는데 굳이 노를 버리겠는가. 원생도 많고, 누군가에게 높은 가치에 매각하는 게 최상의 전략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원장님은 별 말이 없으셨다. 그냥 성격상 뭔가 구체적으로 확실해지면 얘기를 하실 거 같다.




학원 매니저: 원장님이 학원 인수 하실 분 찾았나 봐요. 며칠 뒤에 같이 오신 다던데.



나: 아, 그래요? 누군지 궁금하네...



학원 매니저: 원장님이 선생님한테는 흘리 듯 알려주라고 하시네요. 직접 말하기가 괜히, 좀 어렵고 어색하다고 하시면서...



나: 아...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며칠 뒤 원장님, 원장님과 비슷한 나잇대로 보이는, 스타일리시(?) 한 남성이 학원에 왔다.



힙합스러운 느낌도 있고, 하여튼 힙해 보였다. 그런데 입을 여는 순간 가는 톤의 목소리에 억센 부산 사투리, 왠지 스타일과 상당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냥, 예측을 살짝 뒤엎는 그런 반전.



간단한 상견례를 가졌다.



부산 사람이지만 활동 구역이 정해진 건 없고, 노래하는 사람이다.

주로 힙합 씬에서 활동을 한다.

술은 잘 못하고 담배는 피운다.

공황장애가 있었지만 (있지만) 많이 좋아졌다.

자기는 격식 차리고 이런 거 별로란다 (막 대하겠다는 건가?).

권위를 내세우고 이런 거 딱 질색이란다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보통 권위를 내세우던데).

급여 체계는 지금과 변함없을 거다 (제일 중요한 거, 그럼 다행이다).



새로 올 원장님은 학원 곧 곧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노트에 뭔가 부지런히 적고 있었다.



"제가 갑자기 와서 당황하셨지예?"



"아니오.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담배 한 대 피실레예?"



말 벗이 될 겸, 같이 비공식 흡연 장소로 향했다. 나에게 담배를 한 개비 건넨다.



"저는 괜찮습니다. 작년에 끊었습니다."



"아... 대단하시네예. 저도 언젠가 끊어야 할 낀데."




(그날 밤, 비지 형님 바)


"아이구. 축하해 김원장. 아니, 이제 김교수라고 해야겠네. 그간 고생 많았어. 허허."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식으로 교수도 됐겠다, 학원도 무사히 넘겼겠다, 겸사겸사 원장... 아니 선배님이 한 잔 사기로 했다.



그런데, 아주 상당히 익숙한 비주얼이 눈에 들어온다.



'키보드'...



키보드: 야, 잘 지냈냐?



선배님: (큰 미소와 함께) 예~



그들의 대화는 이걸로 끝.




선배님: 선생님. 삼오한테 이런저런 얘기 들었습니다. 저희 학원에서 레슨 하시는 게 어떠세요?



비지 형님:.....



선배님: 선생님, 아니 형님이 같이 계시면 정말 든든한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새로 오시는 원장님에게나, 삼오에게나, 저도 계속 인연을 이어 갈 테니, 여러모로 형님을 모시고 싶네요.



비지 형님은 바에 멀찌감치 앉아있는 '키보드' 쪽 을 한 번 응시하더니 짧은 한마디...



"응. 한 번 생각해 볼게."




비지 형님: 삼오, 그 새로 오는 원장이 부산 사람이라며? 이름이 어떻게 되니?



아, 잠시 잊고 있었다. 부산은 비지 형님 한테는 제2의 고향이지. 활동을 제일 오래 하셨던 곳이기도 하고.



나: 000 이라는데요.



비지 형님: 아... 누군지 알겠다. 그렇구나. 알았다.



형님은 깊은 생각에 빠지신 듯했다. 무슨 과거가 있는 거 같은데,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학원에 새로운 간판도 올라가고 며칠 간의 셀프 인테리어 작업으로 새로운 듯, 아닌 듯 한 학원으로 변신했다.



몇몇 선생님은 자연스레 떠나셨고 새로운 원장님 사단 (?) 몇 분이 새로 합류했다.



다들 모였으니 첫 회식을 하기로 했다. 내가 가장 늦게 수업을 마치는 관계로 다른 선생님들은 먼저 회식 장소로 이동하고 나와 원장님은 추후 합류하기로 했다.




(내 차로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 중)



"선생님은 술 좀 하십니까?"



"네. 너무 부어라 마셔라는 아니고, 적당히 좋아합니다."



"저는 맥주 한 잔 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집니다. 그런데 술자리 분위기를 너무 좋아합니다. 누가 보면 술 제일 많이 마신 줄 알지예. 하하."



잠시 후, 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딱히 할 말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회식 장소 까지는 차로 10분 정도. 먼 거리는 아니지만 어색함이라는 명분 아래 한 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와중, 원장님이 창문을 내린다.



아무런 말 없이 담배를 한 대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나 담배 안 피우는 거 알 텐데. 고로, 내 차는 금연인데.'



아무 말 없이 담배 연기를 창 밖으로 뿜어낸다.






어찌 됐든, 잘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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