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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오 Sep 24. 2024

태지형, 굿바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2집 컴백 바로 직전이었던 1993년 6월 9일, 나의 생일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열 살 더 젊은.. 아니 어린것이니까. 내 인생에서, 오로지 나 자신을 중심으로 한다면, 생일 다음으로 중요한 날이다. 그다지 덥지 않았던, 초여름이었던 이때, 서태지가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모자를 과감히 벗은 모습의 컴백 무대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 인생 첫 비행 경험은 여행이 아닌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을 가는 여정이었다. 김포국제공항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닌가? 그냥 정신이 없어서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가? 비록 순서는 뒤죽박죽 이어도 뚜렷하게 장면별로 기억이 난다. 당시 공항 티브이 곳곳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팀이 어느 팀에 말도 안 되는 스코어로 대승을 했고 황선홍 선수가 무지막지하게 골을 퍼부었던 장면을 쉴 새 없이 보여주었다. '아, 내년 월드컵에서 잘하려는가?'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햄버거도 먹었다. 맛은 기억이 안 난다. 솔직히 한국에서 햄버거를 아주 가끔 먹었을 때 이게 맛있는 음식인지 잘 몰랐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밤이었지만 짐이 많아서 오후 늦게 공항에 도착하여 짐 부치기에 바빴다. 말 그대로 지금은 추억의 '이민 가방'이 세, 네 개 정도였던 거 같았다. 원래 집은 지방인 온양온천(충남 아산)이어서 서울 봉천동 큰고모 댁에 전날 도착하여 하루 자고 여유 있게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이 날 나의 감정을 표현하자면, 솔직히 너무 슬프고 우울한 하루였다. 만 10세 꼬마가 어설프게 알 건 다 알아서 짤막하게나마 우정을 쌓았던 친구들과의 이별하는 슬픔을 알았고, 나를 이뻐해 주었던 친척들과의 이별해야만 했다. 이때 스마트폰이 있나 뭐가 있나. 국제전화 요금은 몇 초만 해도 폭탄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나를 가장 사랑하는 친할머니는 같이 토론토로 동행을 하신다는 사실은 그나마 내가 맛없는 햄버거라도 씹어 넘기게 해 준 동력이었고 정말 맘에 안 드는 핑크색에 검은색 줄무늬 티셔츠의 창피함을 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드디어 때가 됐다. 입국수속을 하러 건너가야 하는 상황, 갑자기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뜩이나 맘에 안 드는 핑크색 티셔츠의 일부는 눈물 자국 때문에 핫핑크로 얼룩져있었다. 그냥 모든 게 맘에 안 들었다. 무엇보다 왜 이민을 가야 하는지, 딱히 집에 어려움도 없었던 거 같은데, 적어도 금전적으로는, 왜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가야 하나. 모든 게, 특히 아버지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어찌하랴, 검색대를 지나 탑승구에 대기할 때 마음을 먹었다. '그래, 뭔 일이야 있겠냐. 좋은 나라라 했으니 가보면 되지.' 10세 아이치고는 꽤 비장한 마음으로 탑승구 앞에 얌전히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더 착잡하셨을 거 같다. 적어도 나보다 60해는 더 사셨고 친구 분들, 딸들, 사위들, 손자, 손녀들, 성당 신부님, 수녀님, 신자들, 동네 어르신들, 목욕탕, 스카치캔디, 비단 박하사탕, 그 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가시는 거 아닌가. 이 와중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고집 센 손자를 달래느라 진이 다 빠지셨을 거다. 왜 아버지는 나를 한 번도 달래주지 않은 건가. 달래주고 싶지만 표현이 서툴러서? 내가 너를 더 좋은데 데리고 가는데 왜 슬퍼하는 거지?라고 생각하셨을까? 아직도 이유는 모른다. 뭐, 이제와서는 별 생각이 없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때부터 슬픔보다는 긴장감과 들뜬 느낌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모든 게 새로우니까. 티브이, 책에서나 봤던 비행기 내부, 승무원들, 청진기 같이 생긴 헤드폰 (진짜 청진기가 아닐까 싶었다. 혹시 위급 상황에 진찰하라고...), 좌석 앞에 꽂혀있는 잡지들, 좌석 팔걸이에 있는 정체 모를 버튼들... 모든 게 신기했다. 


이륙 한지 얼마 후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고 승무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음료수와 과자 같은 걸 나누어주고 있었다. '우와, 이게 공짜라니...'라며 감탄했던 게 떠오른다. 공짜? 참, 순진했다. 세 살 배기 내 동생은 다행히 비행 동안 크게 보채거나 울지도 않아서 주변 승객과 승무원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뭐, 외모가 귀엽기도 했겠지만 결정적인 귀여움을 뿜어낸 순간은 따로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다 할 수 있는 비행시간에 이 녀석은 새로운 걸 깨달았다. 좌석 팔걸이에 있는 '호출'버튼을 누른다. 승무원이 온다. '주스'라고 간단히 말한다. '어떤 거 줄까?' 물어본다. '딸기', '오렌지', '사과'라고 하면 짧게는 몇십 초, 길어 봐야 몇 분 뒤에는 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이런 신세계가 또 있을까... 열 잔은 마시지 않았을까 싶다.


잠시 후 내가 제일 기대했던 기내식 시간. 첫 기내식 메뉴는 계란과 고기 밥이 섞인 정체 모를 요리 었다. 그런데 제일 맛있게 먹었던 건 그냥 빵에 버터를 발라 먹은 것이었다. 옆에 옆 자리 서양 아저씨가 빵에 버터를 발라 너무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31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첫 비행의 기내식은 버터 바른 빵 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비행기 영상은 이제는 정말 클래식이 되어버린 '미스터 빈'이었다. 헤드폰이 필요 없는,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영상, 하여튼 비행기에서 나는 내내 심각한 조울증에 빠진 사람 마냥 웃고, 서글퍼하고, 잠깐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이를 여러 번 반복할 때쯤 곧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온다. 안전벨트를 맨다. 


드디어 도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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