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삼오 Sep 27. 2024

터키 행진곡

새벽에 자고 깨기를 반복, 눈은 감겨 있지만 잠들지 않은, 눈은 떠 있지만 잠을 자고 있는, 이게 시차 적응이 안 된다는 건가? 피곤하지만 몸과 마음은 들떠 있는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첫 등교일이다. 그런데, 가방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학교를 가지? 우선 세수를 대충 하고, 이도 대충 닦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식빵에 잼을 발라먹는다. 캐나다에서의 첫 잼 맛은? 어떻긴, 그냥 달다. 한국에서의 딸기잼이랑 120% 똑같다. 그러고 좀 있다가 멍 때리는 중, 우리 집 문에서 요란스러운 노크소리가 들린다.



"형제님, 삼오야, 출발합시다."


이사벨 아주머니 차를 타고 학교에 간다. 승차감이 좋다. 차가 매우 넓다. 자그마한 아주머니가 이런 차를 모시는 게 신기했다. 사람이 아무리 작아도 이런 큰 차를 굴릴 수 있구나. 길가에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다들 등교하기 바쁜 모습인 동시에 얼굴 표정들이 대부분 밝다. 뭐가 좋은지 여기저기서 웃는 얼굴을 보기 쉽다. 신호 대기 중, 한 무리의 여자 아이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응시한다. 뭐가 저리 좋을까? 쉴 새 없이 깔깔대며 웃는다. 우두머리가 직진한다, 잠시 멈춘다, 한바탕 웃는다. 잠시 후진도 하면서 뒤에 쳐 저 있는 친구에게도 말을 건다. 또 웃는다. 학교 갈 때까지 무한 반복일 거다. 집에서 일찍 나서도 학교에 지각하는 이유가 다 있다. 직진, 웃는다, 멈춘다, 잠시 후진, 또 직진...


학교까지는 몇 분 안 걸렸다. 별로 크지 않은 본 건물 하나, 이 건물 뒤로 간이 교실처럼 생긴 거 몇 채와 농구 골대 둘, 넓은 운동장이 보였다.


그리운 건물. 야구하다가 유리창 깨어 먹은 교실도 보이고... 지금은 재건축이 되었다.


한국에서 전교생이 3,000명 정도 되는 학교에도 다녀봐서 그런지, 학교가 매우 아담해 보였다. 학교 정문을 들어선다. 건물 안 도 넓지 않았다. 거의 정면에 사무실, 또 그 안에 교장실이 있었다. 콧수염을 하신 인상 좋아 보이는 분이 인사를 하신다. 나도 모르게 '헬로'와 동시에 고개를 꾸벅인다. 이건 언제쯤 고쳐질라나.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교장 선생님이었다. 꿀꺽. 괜히 긴장한다. 한국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을 운동장 앞에서 연설하시는 거 외에 뵐일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높으신 분이 학생 한 명 새로 왔다고 이렇게 직접 나오셔서 반기실 일인가?



한참을 사무실 벤치에 앉아서 기다린다. 아버지, 이사벨 아주머니, 또 어떤 통역관 분...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린 학생 같아 보이는데.. 사무실 안 쪽에 있는 또 다른 사무실에 들어가셔서 도통 나올 기미가 없어 보인다. 기다리는 내내 사무실에서 일 보시는 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을 거신다. 그냥 뻘쭘하게 "I can't speak English."를 몇 번 시전 한다. 그래도 말을 걸어오신다. 나중에 한 참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 분이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던 건 영어를 못한다는데 발음이 좋은 거 같아서, 내가 장난하는 줄 알고 계속 대화를 시도하셨다고 했다. 내가 'I can't speak English'를 얼마나 많이 연습했으면 이 짧은 문장에 발음 내공이 느껴졌겠나.



얼마 후, 모두 사무실에서 나오신다. 안에 계시던 선생님과 우리 일행은, 마지막으로 짤막하게 인사하고 헤어진다. 저 통역관의 정체는 누구일까? 이사벨 아줌마가 궁금증을 알아서 해결해 주신다. "고마워 우리 딸. 이따 집에서 봐." 아하, 알고 보니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나였다. 아주머니는 딸이 둘이었는데 또 다른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위란다. (참고로 나는 생일 빨라서 학교에 일찍 들어갔다. 그러므로 나와 둘째 따님은 나이가 같은 것이다. 본인은 학교 다니는 내내 인정 안 했지만...) 그런데 왜 이들을 첫날 아주머니 댁에서 보지 못한 걸까? 늦은 밤이어서 다음날 등교 때문에 방에서 자고 있었단다.



그런데, 교실로 가는 게 아니고 다시 차를 타고 가자 하신다. 알고 보니 오늘은 행정적인 절차만 거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다니는 거란다. 차라리 잘됐다. 학교나 대충 한 번 둘러보고, 여기가 내가 몇 년간 시간을 보낼 곳이란 마음의 준비를 갖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가 창 밖을 바라보시면서 묵주를 꼼지락 하신다. 기도 중이시다. 평소 같았으면 할머니를 크게 부르며 앞에 다가갔을 텐데, 왠지 그럴 수 없었다. 뭔지 모를 엄숙함이 처음 느껴졌다고나 할까? 할머니도 생각이 많으실 거다. 지그시 눈을 감으셨다 다시 뜨신다. 그리고 나지막한 한숨과 한 마디 하신다. "아휴, 아주 그냥 심심해 뒤지겠네 그려." 당연히 그러시겠지. 한국이면 새벽마다 성당, 동네 길 앞, 목욕탕, 또 주말에 성당. 어딜 가나 반길 사람, 반겨주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오셨는데. 내 딴에 위로랍시고 한마디 건넨다. "할머니, 그런데 다시 한국 가면 원래 생활대로 돌아가는 거잖아. 그냥 편하게 지내." 내가 할머니를 위로하다니. 혼자 으쓱해졌다. 뭔가,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말씀하신다. "나 여그 살러왔는디?" 네? 그냥 몇 달 있다가 가시는 줄 알았는데? 어?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좋긴 좋다. 그런데 동시에 걱정 한 가득이다. 내가 열 살 때 누구를 걱정할 정도면, 진짜 걱정스러운 거 아니겠는가?



갑자기 누가 날 부른다. 어머니다. 도시락거리 좀 보러 마트에 가자 하신다.


대형마트에 들어선다. 정말 커다란 한 카트가 입구에 즐비해있다. 동생을 태운다. 이런 마트는 처음 와본다. 한국에 있는, 동네 큰 슈퍼? 마트와는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제법 익숙해 보이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것들이다. 신기했다. 처음 보는 크고 작은 빵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류만 해도 스무 가지는 돼 보였다. 책에서 봤던 베이글도 있다. 캐나다는 베이글이 나름 유명하단다. 도넛이랑 비슷한 모양이지만, 뭐랄까, 더 야무져 보였다. 햄과 소시지가 모여있는 쪽에 왔다. 한국과는 비교불가다. 뭔 햄, 소시지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양들도 제법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긴 타원형 모양에 아주 살짝 연한 핑크 빛을 띠고 있는, 그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머니가 알려 주신다. "이건 터키(칠면조) 햄이야. 엄청 짜. 그래도 한 번 먹어 볼래?" "네." 그런데 터키햄? 터키에서 먹는 햄이라는 건가? 내가 터키가 칠면조인지 알리가 없지 않나? 심지어 칠면조가 뭔지도 몰랐고. 어쨌든 동그랗게 생긴 바게트 비슷 한 빵에 터키햄, 마요네즈가 발라진 터키 샌드위치. 빨간색 왁스로 포장된 치즈가 내 첫 등교 점심거리로 선정됐다.



'이야, 캐나다가 신기한 나라인 건 맞나 보네. 여기까지 와서 터키에서 먹는 햄을 먹어본다니.' (아, 근데 지금은 다 '튀르키예'로 바뀌지 않았나? 그럼 이제 튀르키예 아이스크림, 튀르키예 행진곡이라고 해야 하나? 입에 안 감긴다.) 집에 와서 몇 점 맛본다. 흠, 많이 짠 건 모르겠고, 그냥 맛있는데? 터키 사람들 맛있는 거 먹네! 괜히 학교에 빨리 가고픈 마음이 생긴다.



잠들기 전에, 나도 모르게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흥얼 거린다.

"따라다라 다. 따라다라다.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라! 따따 따라라라 따라라라 따라라라 라!"

옆에 주무시 던 할머니께서 한 말씀하신다.


"아휴, 뭐라고 하능 겨? 그만 좀 지럴허고 어여 자."




 

이전 03화 집이, 좋긴 하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