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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오 Sep 24. 2024

집이, 좋긴 하네요



"승객 여러분, 저희는 잠시 후 토론토 Lester B. Pearson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좌석에 있는 안전벨트를.."


'아, 드디어 도착인가?'


드디어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곳에 도착한 건가? 긴장감이 맴도는 와중 피로가 몰려왔다. 뭔 놈의 입국 수속이 그렇게 긴지, 또 짐들은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 


결국 한참 후 출구를 통해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한국말이 들린다.


"아이고 형제님!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오랜만입니다 이사벨 자매님."


아버지 지인이셨다.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하시는 걸 보니 성당을 통해서 아시는 분 같았다. 작은 키와 짧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계셨던, 얼핏 약해 보이시지만 강렬한 눈빛,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힘과 자신감이 넘치는 여장부 스타일의 아주머니였다. 


이제 진짜 밖으로 나왔다. 짐을 아주머니 차에 옮기느라 분주했다. 그 와중에 나는 잠시 멈추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신기했다. 대도시라고 했는데 초여름 토론토의 밤공기는 매우 상쾌하고 시원했다. 


차를 한 30분쯤 탔을까? 아주머니가 살고 계시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어두워서 잘 안보였지만 단지가 크고 좋아 보였다. 나무, 꽃 들도 많고, 뭔가 있어 보였다. 굳이 캐나다까지 온 거 이런 데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를 다 마치신 상태여서 바로 식사가 가능했다. 밥이 담긴 넓은 접시를 건네어 주셨다. "배고프지? 반찬은 여기 쫙 깔려 있으니 원하는 만큼 먹어." 딱 자그마한 한식 뷔페 스타일로 세팅해 놓으셨다. 그런데 뭔가 굉장히 낯설었다. 원래 한국에서는 보통 식사를 하면 한상에 모여 앉아 반찬들을 나누어 먹지 않는가? 뭐, 여기서는 그렇게 먹나 보다. 하여튼, 큰 접시에 담겨있는 밥 옆에 반찬들을 조금씩 얹었다. 밥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 난 비벼먹을 생각이 없으니 조심해서 담았다. 큰일 났다. 접시 공간이 모자란다. 할 수 없이 반찬을 서로 위, 아래로 쌓는다. 밥이랑 비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은 그냥 밥 위에. 나도 참 이 와중에 맛있게 먹어보겠다고 참 용썼다. 젓갈류가 몇 가지 있었다. 난 젓갈 킬러인데, 특히 창난젓, 오징어젓, 어리굴젓. 창난젓과 오징어젓이 정말 맛있었다. 어리굴젓은 있을 리 없지. 여름에다가 캐나다에서 어떻게 어리굴젓을 구하랴...


그렇게 밥을 먹고 잠시 쉬는 중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피곤하실 텐데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맞다!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집. 이민 가게 된 걸 알았을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건데, 젓갈로 인한 갈증으로 물만 들이켜는데 집중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나 보다. 궁금했다.


이게 웬걸? 바로 앞 동 아닌가. 한국과 다르게 이 단지는 여기는 동간 간격이 엄청 넓었다. 그리고 이곳의 정식 명칭은 아파트가 아니라 '콘도'란다. 한국에서 이 당시 콘도라 하면은 고급 리조트 격으로 여겨졌는데 내가 콘도에 살게 됐다고? 신기하다는 말 밖에...


출처: condos.ca   여전하구나. 사진을 찍은 곳에서 스쿨버스를 타던 기억이..


1005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 제일 끝 집이었다. 집에 들어섰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스위치를 켰는데도 불이 안 들어왔다. 이게 뭐지? 나중에 물어보니 거실에 있는 등을 제외한 나머지 조명은 직접 스탠드를 구입해야 한다고.. 그게 스위치랑 연동이 된다나? 첫날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지어진 지 3년 정도밖에 안 된 집인데 조명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니. 집집마다 다른데 이곳은 그랬다. 


집안이 화장실과 주방을 제외하고 바닥이 전부 카펫으로 되어있었다. 신기했다. 티브이로만 보던 카펫 바닥. 어두운 은색? 밝은 회색 계열이라 세련돼 보였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카펫 바닥이 얼마나, 적어도 우리 식구에게는 이게 얼마나 불편했는지. 카펫 이야기는 종종 나올 테니까 우선은 다른 얘기로...


침대고 뭐고 없는 방에, 짐가방 몇 개와 이사벨 아주머니가 빌려 주신 베개를 베고 누웠다. 카펫이 살짝 폭신한 느낌이라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옆으로 누웠다. 할머니가 눈을 감고 계신다. 주무시는 건가? 아, 아니구나. 손에 묵주가 들려있고 손에 움직임을 보아하니 기도 중 이셨다. 기도가 재밌는 건가? 기억나기 이전부터 성당은 거의 항상 강제로 가다시피 해서, 기도와 신앙심이란 그냥 '그런 건가 보다'였다. 그래도 집안에 독실한 신자들이 몇 계시고 그분들은 나를 아끼고 사랑을 주었으니, 나에게는 '있어서 나쁠 것 없는 그 무엇'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은 표현일 듯하다. 


자다 깨다를 무한 반복, 그리고 어젯밤부터 시작된 젓갈의 횡포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극심한 갈증을 느꼈고 물은 없었다. 집을 돌아다녀보니 아버지는 안 보이고 반쯤 깨신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목마르면 수돗물 틀어서 마셔." 네?! 지금 진심이세요? 진심이셨다. 캐나다는 그냥 수돗물 마셔도 된다. 실은 이제 한국도 어지간한 데는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때는 1993년, 한국에서 수돗물? 이건 살짝 미친 행위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정말 목이 말랐고 자타공인 자연의 나라인데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완숙하지 못한 두뇌의 합리 기능을 풀로 가동한다. 가동하기 전에 본능이 앞선다. 물을 들이켠다. 시원하다. 맛도 괜찮다. 이제 몇 시간 지켜보자. 배가 아프면 수돗물은 앞으로 빠이빠이다. 그게 아니면, 아니면... 땡큐지 뭐. 


창문밖을 바라봤다. 10층 높이라서 제법 높지만 사람들이 어떤 색 옷을 입고 다니는 정도의 디테일 까지는 눈에 들어왔다. 푸른 잔디밭 옆에 테니스 장이 보였다. 듬성듬성 있는 주차 공간, 산책하시는 어르신과 그 옆에 강아지,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조용했다. 알고 보니 토론토 최북단이었다. 단지는 대로변에 위치해 있지만 막상 건물은 대로변에서 제법 멀었다. 이 대로 반대편은 지역번호도 다르단다. 북적이는 도심에서 많이 벗어난 동네였다. 


집에서 한참 멍하니 있을 때 아버지가 오셨다. 여기저기 구경하자며 나가자 하신다. 캐나다에서 첫 외출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오자 응접실 쪽에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인사를 건네신다. 어색하게 고개를 꾸뻑이며 '하이'를 응용해 본다. 어른들께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게 당연히 어색하다. 그  후로 뭐라고 몇 마디 더 건네셨지만 수줍게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 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 걸 아셨는 눈치인지 더 이상 말을 안 건네셨다. 


현관을 열고 밖에 나섰다. 날씨가 예술이다. 햇빛도 그렇고 공기도 그렇고, 또 모든 게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온 사방에 잔디다. 잔디를 안 밟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런데 아주 잠시 후에 알게 됐다. 여기에서 잔디는 밟으라고 있는 거다. 가만히 보니 많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잔디 위를 걷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잔디에 들어가지 마라고 푯말이나 라인을 쳐 놓지도 않았다. 용기를 내어서 잔디를 몇 발짝 밟아본다. 마치 죄의식을 처음 갖고 나쁜 짓을 행하는 사람 마냥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부드럽고 푹신했다. 한국 잔디는 딱딱하고 아삭 거리는 느낌이었던 거 같은데. 


단지 안 시설 중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수영장이었다. 와... 단지 안에 수영장이 있다니. 내가 마지막에 갔던 곳은 그냥 사람 바글바글한 풀장이었는데. (그렇다. 요새는 다 워터파크지만...) 아직 개장 전인 듯했다. 안내문을 보니 7, 8월 두 달간 운영하는 거 같았다. 


우리 동 앞에 있는 테니스 장과 그 앞에 자그마한 광장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 놀기 정말 좋을 거 같은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여기 아이들은 그냥 집에서만 노나? 혼자 중얼거리자 아버지께서, "다들 학교 갔지." 아, 맞다. 나도 그저께까지만 해도 학교에 있었지.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학교에 가는 거지? 영어만 따로 공부하고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가는 건가? 아버지랑 좀 더 구경하고 있는 와중에 또 훅 들어오신다. 


"너도 내일부터 학교 간다."


놀랍지도 않았다. 그냥 나도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오늘부터 안 간 게 신기할 정도다. 나는 그냥 차분히 "어.. 아니, 네"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시 우리 동 안으로 들어왔다. 현관도 파란색 카드키를 센서 패드에 갖다 대니까 '삑'소리와 함께 문이 딸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렸다는 신호다. 이게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당시에는 정말 신기했다. 21세기가 다가왔구나라는 걸 체감하게 된 첫 경험이라고나 할까... 1층 로비에도 문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한 곳에 카드키를 갖다 대니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유리창으로 작은 도서관, 통로를 따라 좀 더 걸어가니 양쪽으로 사우나 시설과 헬스장이 있었다. 계단으로 지하 1층으로 가니 스쿼시 코트가 있었다. 여기 와서 첨 보는 스포츠였다. 


아파트, 아니, 콘도 시설을 다 둘러보고 집에 다시 올라왔다. 정말 좋은 집으로 이사 왔구나. 그런데 문득 '이 집을 우리가 산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흠, 할머니가 옆에 계신다. "할머니, 이 집 우리 거야?" 할머니가 대답하셨다. "나도 몰러, 아마 아닐껴." 뭐, 그렇지. 한국에서 나름 그럭저럭 살았어도 이 정도 집은 무리겠지. 어려서 경제관념은 없어도 이 집이 비쌀지 쌀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린아이는 우리 집이 어디고 차가 뭐냐에 따라 금전적인 요소가 가져다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그럼 이 집에서는 얼마간 사는 것일까? 지금에서야 생각이지만, 이땐 정말 몰랐지만, 여기 콘도에 있는 모든 시설을 더 이용하고 할 걸 그랬다. 왜냐하면, 이 집이 나의 캐나다에서의 첫 집이자 가장 좋았던 집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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