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2)

by 이삼오


계속 달린다. 정말 끝이 없는 듯했다. 전담 드라이버인 D형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래도 하루에 7~8시간 밖에 안 되니 할 만하시단다.



이 땅덩어리 큰 나라의 사람들은 생각 자체가 다르다. 훨씬 개방된 사고를 지니고 사는 게 분명하다.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을 보면 갸우뚱할 때가 많을 것이다.



"아휴 추워! 이 끔찍한 겨울은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럼 겨울이 춥지, 영하 5도밖에 안 되는데 왜 이리 호들갑이지?)



"몬트리올 놀러 가자고? 아니, 토론토에서 몬트리올 까지 차로 7시간이나 걸린다고?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보다 훨씬 더 걸리네. 가지 말자"


(7시간? 한나절도 안 걸리는구먼, 밴쿠버 가는 것도 아닌데... 바람이나 쐬러 갔다 올까?)



"이 놈의 눈은 치워도 끝이 없네."


(오랜만에 운동하게 생겼네. 겨울이라 계속 안 움직였더니 찌뿌둥했는데.)





주변 풍경이 슬슬 변하기 시작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무, 숲, 잔디, 낮은 언덕들만 무한 반복으로 눈에 들어왔는데 저 멀리 다른 경치가 보였다.



"오! 강인가? 호수?"



"아니야! 바다야 바다!"



D형도 내색은 안 했지만 어지간히 지겨웠나 보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는 게 신기했나 보다.



그럴 법도 한 게 토론토에서 제대로 된 바다를 보려면 비행기를 타지 않는 이상 우리가 온 루트대로 몇 날 며칠이 걸리는 여정을 소화해야지만 가능하다. 한국처럼 동해, 서해, 남해가 아닌 대서양, 태평양, 북극해로 분류 해야 하니 정말 어마무시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핼리팩스 공항에서 D형 아버님 지인과 조우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했던 공항과 전혀 다른 느낌의 조그마한 공항이었다.



핼리팩스는 노바스코샤 주에서는 대도시이지만 캐나다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소규모의 도시이다. 공항을 비롯해 있을 건 다 있는 도시라고 들었다.



지인분의 집은 핼리팩스 외곽에 위치한 2층 짜리 주택이었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4인 가족이 살기에 딱 좋은 크기였던 거 같다. 이 집에는 나와 동갑인 친구와 세 살 많은 형이 있었다.



여기 형은 기숙사 생활을 해서 주말에만 집에 온다고 했다. 이민 온 시기가 비슷해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 형제와 우리는 비슷한 고충을 서로 얘기하며 짧은 시간에 급 친해졌다.



형이 얘기해주는 노바스코샤의 학교 생활은 토론토와는 많이 달랐다.



우선, 동양인은 형을 포함 두 명이라고 했다. 한국인 한 명. 중국인 한 명.



백인이 주를 이루는 학교였지만 인종 차별은 크게 느끼진 못했다고 했다. 다만 처음엔 영어가 서툴고 하니 무시당하고 놀림당하는 일이 처음엔 비일비재했다고. 그렇지만 기숙 생활을 하다 보니 영어도 빨리 늘었고 쾌활한 성격 탓에 이제는 학교 생활이 편하고 즐겁다고 했다.



또 여자애 몇과 친해졌는데 스킨십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조금 친해졌는데 달려와 와라락 안기지를 않나 인사할 때마다 볼키스를 하지를 않나... 여기서는 나름 자연스러운 행동인 거 같은데 너무 어색하다고 했다.



형 얘기를 듣고 있으니 같은 나라지만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야기 꽃이 식을 줄 몰랐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바다낚시를 가기 위해 잠을 자야 했다.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한 스무 명 정도 탈 수 있는 배에 탑승했다. 우리와 다른 일행까지 합해서 15면 정도 탔다. 그래도 배가 작지는 않아서 제법 여유로웠다.



배를 타고 항구가 안 보일 정도로 멀리 나갔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적절하게 부는 바닷바람은 상쾌하다 못해 몸에 있는 병도 나아질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게 주변 풍경을 구경하던 차에 주변을 둘러봤다. D형 아버님이 안 보이셨다. 화장실 가려고 선실 안 쪽을 들어갔는데 방안에 누워 계셨다. 멀미가 심하다고 하셨다. 안타까웠다. 이런 환경을 못 즐기시니...



선장님과 그의 보조가 낚싯대와 다른 장비 이것저것 꺼내서 세팅을 마무리했다. 한 낚싯대에 바늘을 하나가 아닌 대 여섯 개를 설치했다. 한 번에 여섯 마리까지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고기가 그렇게 많이 잡히나?



선장님은 대구랑 고등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이라고 했다.



커다란 파란색 비닐봉지를 여러 개 건네어주었다. 여기서 잡은 물고기는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 되고 풀어주어도 되고, 잡는 사람 마음이라고 했다.



모두 들뜬 마음으로 낚싯대가 반응하길 바랐지만 시원찮았다. 우리 일행은 1시간가량 지났는데 다해서 열 마리도 못 잡은 것 같다. 이럴 거면 낚싯바늘을 굳이 여섯 개씩이나 달아놨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선장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2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넨다.



선장님은 매우 흡족해하며 알았다는 신호를 주더니 배를 급하게 어디론가 몰고 갔다.



몇 분 지났을까? 배를 다른 지점에서 멈춰 세웠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꿈쩍도 하지 않던 낚싯대가 여기저기 동시에 미친 듯이 반응했다.



낚싯대를 힘껏 들어 올리니 물고기 세 마리가 한꺼번에 같이 올라왔다. 대박이다.



고기가 온 사방에서 잡히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난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하기로 했다.



고등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왔고 대구가 그다음을 이었다.



그 사이사이 정체 모를 물고기들도 올라왔는데 익숙한 것도 눈에 보였다.



멍게다. 선장님은 멍게를 집더니 칼로 껍질을 도려냈다. 그러고는 바닷물로 대충 헹구어 통통한 멍게 살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우리 일행을 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운다. 마치 이 징그러운 걸 내가 한 입에 탁 털어 넣었다고 자랑하는 듯했다.



선장님은 한국인이 멍게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 같았다.



아저씨 한 분이 아이스박스에서 초장을 꺼내 오시더니 멍게를 몇 개 손수 손질해 썰어 주셨다. 선장님에게도 초장이 잔뜩 찍힌 멍게를 입에 넣는다. 선장님은 내가 졌다는 표정과 함께 흡족하게 멍게를 몇 점 더 자기 입에 넣었다.



역시, 낚싯배에 초장은 빠질 수 없다.





고등어와 대구를 정말 산더미만큼 잡아 왔다. 절반 이상을 다시 놔주고 들고 온 양이라는데... 핼리팩스 지인 집은 순식간에 어판장 느낌이 났다. 모두 모여 고기 배를 갈라서 내장을 제거 후 지인 댁 냉동고로 향했다. 그렇게 손질 후 남은 고기는 고등어 회, 대구 매운탕으로 그날 밤을 장식했다. 막상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회를 잘 못 먹었기에 피자를 메인으로 먹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물론 중간중간 캠핑도 하며 즐거울 때 도 있었지만 차 안에서의 지루함이 오늘 바다낚시로 깨끗하게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은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빨강머리 앤 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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