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하나의 사건이 있긴 있었다. 5학년 때 나를 잠시 괴롭혔던 '마젤란'과 한 번 더 붙게 된 것.
투닥투닥, 그다지 격렬하지 않았던 몸싸움 끝에 마지막 죽방은 내가 날린 직후 누군가가 우리 몸을 잡고 싸움을 말린 터에 내가 비공식적으로 승자가 되었다.
교장실 앞 벤치에 우리는 나란히 (혼날) 대기를 하고 있었고 마젤란은 나를 째려보며 입으로 잽을 날렸다. 교무실 선생님에 의해 그놈의 주둥아리 마저 제지를 받긴 했지만... 나는 딱히 반응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카운터를 날린 건 나니까. 하하.
둘이 사이좋게 교실 책상 청소 및 점심시간 후 교실 청소를(급식실이 따로 없었다) 2주 간 부여받았다.
이 외엔, 딱히 에피소드랄 만한 게 없었다.
요새 부모는 뭔가 계속 분주하다. 둘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걸 본적이 언제였지? 그렇다. 서로 질세라 쌍욕을 퍼붓는 그런 격한 대화가 아닌 무언가 해결 방안 같은 취지의 생산적인 대화 같은 것이었다. 뭘 결정해야 하는 문제인 듯한데...
이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아버지는 여전한 말투로 나에게 한 마디 툭 던진다.
"우리 곧 이사 간다."
이사라... 익숙했던 것을 한 동안 잊고 지냈다. 한국에서 지낼 때 한 곳에 쭉 눌러살았던 기억이 없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대략 2년은 살았으니, 뭐, 나름 오래 살았다.
그런데 왜 이사를 왜 하지?
여느 때와 비슷하게 이유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알 필요 없다는 거겠지. 그렇지만 나도 나름 이 동네에서 터전을 이루고 산 것인데 대충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최종 결정으로 정해진 집이 지금 집과 별로 멀지 않단다.
아버지와 스쿨버스 정류장 쪽에 나왔다. 저 멀리 높은 아파트 건물 하나를 가리킨다. 이 자리에 걸어서 한 20분 정도 걸릴 거란다.
"그런데 왜 이사가?"
역시, 노답.
의문이었다. 지금 멀쩡히 살고 있는 집에서 왜 굳이 저만치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가는 거지?
원래 이사를 일요일로 계획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이사가게 될 집 둘 다 유대인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는 아파트였다. 동네 자체가 유대인이 많은 곳이니 아파트에 유대인이 많이 사는 건 당연하겠지.
그런데 이게 이사랑 무슨 상관이냐?
바로 엘리베이터 사용 때문이다.
아파트에 엘리베이터에 서 너 대가 있다면 이 중 하나는 이삿짐을 옮길 수 있는 엘리베이터다. 평소에는 일반 엘리베이터지만 짐이 들어오는 아파트 후문과 연결될 수 있도록 문이 뒤로도 열린다. (대형병원 가면 볼 수 있는 앞 뒤 다 열리는 그런 엘리베이터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는 일요일에 아예 운행을 안 한다.
유대인의 안식일인 일요일, 즉 사람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처음 듣는 한국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이곳의 문화라면 문화이다.
그러고 보니 이삿짐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여기저기 집집마다 문틀에 어떤 장식이 붙어져 있었는데 하도 궁금해서 같은 아파트 친구에게 (이 친구네 집도 이게 붙어져 있었다) 물어보니 '메이즈자'(mezuzah)라는 것이었다.
색상, 디자인도 제 각각이다.
보통 메이즈자에는 유대인 경전인 '토라'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집에 들어설 때 이 메이즈자를 손가락으로 한 번 만지고 그 후에 손가락에 가벼운 입맞춤을 한다.
성당에 들어설 때 성수를 손가락에 찍고 성호를 긋는 행위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름 종교인이라 이해가 빨랐다.
나는 이사 당일 앞으로 살 게 될 집을 처음 접했다.
단지라고 할 거 없이 그냥 나 홀로 아파트인데 그 바로 옆에 쌍둥이처럼 똑같은 아파트가 하나 더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연식이 있어 보였다.
로비로 들어섰을 때 전제척으로 조금 어두운 느낌이었고 전에 집과 다르게 인기척이 드물었다.
21층. 10층에 비하면 정말 높은 곳에 살게 되었다.
집 안으로 들어섰다. 첫인상이 그리 좋진 않았다. 어두 칙칙한 카펫에 창문도 작았다. 전 집과 같이 방은 두 개였지만 화장실은 하나였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청소를 잘 안 했는지 부엌은 각종 기름 때로 끈적거렸고 여기저기 찌든 때의 흔적이 보였다.
전에 살던 집 창문은 시작이 내 무릎쯤부터였다면 여기는 내 목 정도부터 시작, 까치발을 들고 해야 밖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바깥에 보이는 건 넓은 들판과 공원, 송전 탑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넓게 보이는 들판이 공동묘지였다.
한강 뷰, 오션 뷰, 센트럴파크 뷰, 공동묘지 뷰...
아버지의 잡동사니(?)를 제외하면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후다닥 이사를 마쳤다.
새방에 누워 천장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긴 부대시설도 딱히 뭐가 없는 듯했고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사시는 아파트 같았다. 조경에 신경 써야 될 땅도 적었고 아이들도 별로 없는 듯했다.
갑자기 머리가 번쩍였다.
'아... 혹시, 이제 돈이 별로 없나?'
하긴, 이민 와서 아버지는 주로 한국만 왔다 갔다 했는데, 일 때문이라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하여튼 캐나다에서 무엇을 할지 이래저래 알아본다는 맹목하에 여태껏 경제 활동을 하지는 않았으니. 게다가 어머니는 동생도 어리고 나도 학교 다니는데 누가 봐줄 사람도 없고, 어디 맡기자니 비용도 만만치 않고.
어린 나이에 우리 집이 힘들구나라는 걸 알 수 있는 신호 중 가장 큰 게 집이 아닐까... 객관적으로 이사 온 집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전에 집이 너무 좋았던 거다.
동네 근처를 둘러보았다. 집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넓게 펼쳐진 잔디 들판 저 멀리 공동묘지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캐나다 공동묘지는 그다지 공포스러운(?) 느낌은 아니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큰 길가로 걸어 나가니 '세븐일레븐'이 보였고 저 멀지 감치 처음 갔었던 맥도날드, 바로 그 뒤에 전 집이 보였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저기서 자고 있었는데...'
새로 온 집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았다. 그러고 멀리 보이는 예전 집을 번갈아 보았다.
괜스레 우울해졌다. 어린 나이에 태어나서 첨 느껴보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새로 이사 왔으니 좋든 싫든, 여기서 얼마나 살지는 모르겠으나 정 붙이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어두운 느낌의 건물만큼이나 나도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지금 이 아파트의 내부는 여러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밝고 깔끔하고 나름 고급진 인테리어로 탈바꿈한 듯하다.
그래도 외관만큼은 변한 게 하나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딴딴하게 잘 지어진 건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