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하아…….
한숨을 쉰 해미의 시선이 언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는지 벌써 물에 들어가 있는 아이들에게 가서 멈췄다.
‘아니다. 오히려 좋아. 이런 분위기에 무슨 수업을 하겠어?’
생각해 보니 그랬다. 해미는 자신의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지아의 등에 손을 얹었다.
“가, 너 이러려고 신청했어? 나랑 같이 뭐, 물멍이나 하려고?”
흔들리는 지아의 눈에 현준의 모습이 비쳤다.
“야! 한지아, 너 빨리 와. 안 그럼 내가 밀어버린다?”
“봐, 쟤가 너 부르잖아. 나는 눈치껏 먼저 집에 가면 돼.”
‘그냥 최현준보고 냅다 지아를 밀어버리라고 말할까?’ 하고 해미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할 때쯤 지아가 영원히 안 열릴 것 같았던 입을 열었다.
“진짜? 그래도 집엔 같이 가야지. 그리고…….”
“……아 빨리 가.”
동시에 해미는 정말로 지아를 밀었다. 양심이 있어 차마 수영장 쪽으로는 못 밀고 탈의실 쪽으로 밀었다. 지아는 해미를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종종거리며 탈의실 쪽으로 뛰어갔다.
“빨리 갈아입고 올게!”
어차피 빨리 갈아입고 오면 최현준이 수영장으로 밀 텐데. 해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수영장 물만 봐도 소름 돋고 토할 것 같고,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는데……. 지금 해미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나 정상이었다. 지금 코에 들어오는 냄새라고는 수영장 냄새밖에 더 없는데 해미는 지금, 이 냄새에 거의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고, 이 냄새가 이젠 싫지 않았다.
“이상해, 그냥 이상한 게 아니라 아주. 제발 정신 차려!”
해미는 자신의 목소리가 다시 자신에게 들려서 자신이 꿈에서 깨듯 정신이 차릴 수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와!”
탄성과 함께 지아가 나오고, 지아가 물속에 들어가 다른 애들과 수영 레이스도 하고 물싸움하는 동안 해미는 한동안 굳어있었다. 해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물에 들어가서 놀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깔깔대는데 비극의 주인공처럼 수영장 밖으로 뛰쳐나갈 수도 없었다. 방황하는 해미의 눈동자에 세 글자가 보였다. 멀리서도 잘 볼 수 있게 아주 크게 써 놓은 글씨였다.
‘사무실’
무슨 사무실? 하고 머리를 굴리는 해미가 밑에 있는 조그만 글씨를 읽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 태양초등학교 학생들아? 수영부에 들어오고 싶거나, 아니면 반대로,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만 나가고 싶을 때 마음 편히 하고 들어와도 되는 곳이야. 선생님이 너희 얘기를 들어줄게, 음…… 공감도 해주려고 노력할게. 이런 말이 있단다?’
짧은 설명 밑에는 화살표가 있었다. 화살표 밑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NEVER SAY NEVER’
‘DO! OR DIE’
이 설명을 읽고 나서야 해미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해미는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설명을 읽다 보니 어느새 해미는 사무실 문 앞에 바짝 붙어있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자신 있게 문을 두드리려던 해미는 문 앞에서 멈칫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안 계시면 어떡하지? 내 얘기를 듣고 그러면 그냥 때려치우라고 화내시면?’
나중에 보니 그건 다 부질없는 걱정이었지만 꽤 오래 멈칫거렸던 해미는 선생님이 써놓은 명언을 5번이나 읽고 겨우 문을 두드렸다.
“네.”
문 안에서는 적어도 한 3시간 동안은 한마디도 안 한 것 같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다시 말했다.
“들어와…… 담당 선생님 아니죠?”
해미는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뭔가 문에서 ‘끼익’ 소리가 날 것 같았는데 문은 그런 것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저…… 안녕하세요. 전…….”
“해미라고.”
수영부 선생님이 씩 웃었다. 그렇게 웃는 선생님을 마주 보니까 왠지 선생님이 친구같이 느껴진 해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잖아.
“나, 너희 이름, 다 알아. 네가 지아랑 같이 와서 지아만 수영장에 들어간 것도 안다고. 그러니 너무 그러지 말고.”
선생님이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노트북을 내렸다.
“근데 무슨 일 있어? 수영복 필요한 거면…….”
해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선생님을 앉히는 투로 말했다.
“아니요!”
“어……. 응, 그래. 그렇다면…… 무슨 일이야?”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낸 선생님이 해미의 손에도 음료수를 쥐여줬다. 이러면 더 말하기가 힘들어지는데……. 해미가 음료수를 바라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선생님이 먼저 말했다.
“그래, 가벼운 얘기는 아니구나.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공평하게 만드는 거야. 너랑 내 사이를. 그런 다음에 다시 얘기해 봐, 지금 너랑 내 사이는 너무 불공평해. 나만 네 정보를 너무 많이 갖고 있거든. 난 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성적을 다 알고 있고, 네 친구 관계…….”
친구 관계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자신이 1학년 때 누구와 제일 친한지 알고 싶기도 하면서 어떻게 그걸 1학년 담임선생님이 파악했는지 궁금했다.
“……전화번호, 트라우마…….”
해미가 움찔했다.
“……봐, 많이 알고 있지? 그러니, 나도 너에게 내 정보를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 일단 첫 번째, 난 ‘수영부 담당 선생님’이 아니야. 처음에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너희들 나를 보면 ‘담당 쌤’ 이러거나 ‘수영부 담당 쌤!’ 이러거든? 난 코치야. 그러니 이제부터는 음……. 코치님이라고 불러. 근데 코치님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긴 한다. 그리고 두 번째. 뭘 알려줄까……?”
고민하던 선생님이 눈을 빛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또래 같아서 해미는 눈을 깜박였다. 또래라니, 선생님께!
“아! 있잖아, 해미야. 난 살면서 절교를 259번 해봤다? 그리고 난 절교한 뒤에 관계가 회복된 적이 한 번도 없어. 꽤 의외지?”
해미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봐, 이제 좀 괜찮아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