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이런 게 행복 아닐까.

연재소설

by Blue Page

"……."

해미가 아무 말이 없자 코치님은 해미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

해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말을 없었지만, 읽을 수 없었던 표정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떠오르고 있었다. 코치님은 그대로 해미 곁에 누웠다. 코치님이 눕자 해미는 자신의 주위에 물이 코치님이 누움으로써 조금씩 움직였다는 것을 느꼈다. 해미는 모든 것이 끝난 마음으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발을 가만히 두었다. 그러면 몸이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길 바랐다.

"코치님!"

그때 1 레인 아이들이 코치님을 불렀다. 불린 코치님은 눈을 떴다. 코치님의 시야를 1 레인 아이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왜 누워있어요?"

"몇 바퀴 돌아요? 죽겠네!"

"쌤, 얘는 중간에 계속 걷는데요~"

"코치님이라고."

"아, 맞다."

"그리고 내가 언제 걸었냐?"

"아까 걷……."

"아, 어쩔."

1 레인 아이들은 시끄러웠다. 무척.

수영하는 동안 하고 싶은 얘기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너희……."

해미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수영 안 힘드냐'하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아이들의 대화에 끼고 싶었다. 1 레인 아이들처럼 시끄럽게 떠들고 웃고 싶었다. 하지만 해미는 그러지 못했다. 해미는 알았다. 아이들이 겉으로 보기엔 제대로 하지도 않고 떠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영도 제대로 한다는 걸.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노는 조금 시끄러운 아이들이라는 걸. 그리고 그러다가도 코치님이 '너희들 수영 안 하냐? 빨리 가서 자유형 뱅뱅이 돌아.' 하면 또 가서 하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해미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아직 수영은 자유형도 할 줄 모르고, 가뜩이나 물 트라우마도 극복하지 못했는데……. 어쩜 아이들은 저렇게 기운이 나는지…!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저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야, 우리도 저렇게 눕자."

"강해미, 너 자냐?"

"해미 건들지 말고 너나 잘해."

"아, 진짜 어쩔? 나 이미 여기서 2빠야!"

"1빠가 아니잖아, 내가 1빤데…!"

"야, 자고로 2빠가 제일 안전……."

아이들은 다시금 떠들기 시작했고, 뒤이어 하나 둘 해미와 코치님을 따라 눕기 시작했다. 코치님이 대답을 하든 말든 자기들끼리 떠드는 것을 해미와 코치님은 아무 말 없이 TV 보는 느낌으로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헉.

해미가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코치님을 불렀다. 아까 아이들이 그렇게 말할 때는 가만히 있던 코치님이 자신이 부르면 들어줄 거라는, 그리고 대답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해미를 도와주었다.

"코치님!"

코치님은 의외로 해미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눈은 뜨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리 다정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왜."

아주 짧고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해미는 코치님이 자신의 말에 '대답했다'라는 사실에 너무 신이 나서 따발총처럼 다다다다 말을 쏟았다. 그리고 그런 해미를 코치님과 1 레인 아이들은 TV 보는 느낌으로 가만히 들었다.

"와~ 대박, 대박. 코치님 말이 진짜 맞았네요? 그 왜, 코치님이 아까 제가 발버둥 칠 때 저한테 '그러면 더 가라앉는다'이런 느낌으로 얘기했잖아요, 그렇죠? 네, 그럴 거예요."

해미는 코치님이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거……. 진짜네요…? 와~ 대박, 진짜 레전드!"

그러다가 갑자기 해미는 눈빛을 바꾸었다. 아까는 팔짝팔짝 뛰고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니라고 부정하는 얼굴이었다.

"솔직히 말해요? 솔직하게 말하면……. 아니, 저는… 코치님을 못 믿었다기보다는… 그냥… 과연 이렇게 무거운 내가 물에 뜰까…? 하는 그런 생각이었던 거죠, 그래서… 발버둥을… 친 거고, 뭐…. 알다시피… 그렇게…… 된 거죠. 제가 선생님을… 아, 뭐래. 코치님, 코치님이 맞죠…. 선생님이 아니라……. 그니까 그래서 제 말은! 코치님을 못 믿은 게 아니라……. 어… 저를! 아, 이거야, 제가 저를 못 믿은 거죠! 아시겠죠……?"

해미의 말이 끝났다. 해미는 그동안 말하면서 코치님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고, 코치님은 지금 어지러워서 죽겠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서려있었다. 해미의 말이 끝난 다음에 할 놀이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코치님이 놀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코치님은 해미의 말이 끝나자 물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코치님의 몸에서 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속에서 거대한 괴물이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몸 위에 잔뜩 붙어있던 흙이나 돌덩어리들이 떨어지는 모습 같아서 해미는 잠시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포개어 입을 막아야 했다.

"그래, 잘 알겠다. 그럼……!"

해미의 말에 여전히 짧은 대답을 한 코치님이 코치님과 해미 주위에 누워있거나 서 있는 1 레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몇몇 아이들은 1 레인과 2 레인 사이 레인에 몸을 걸치고 있기도 했다.

"다시 수영하자!"

코치님의 말에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더 놀고 싶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마음을 본 코치님이 시계를 보았다.

4시.

수영부 수업은 4시 10분에 끝나니까…….

"10분 남았네."

코치님의 말을 아이들은 코치님이 '그래, 그럼 10분 밖에 안 남았으니까 놀아라'라고 한 거로 알아들었다. 아이들은 자기끼리 물을 뿌리고,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아도 레인을 건너 해미에게로 왔다. 해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코치님을 보았다. 코치님의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코치님, 진짜로 노나요? 해미가 눈으로 물었다.

"아니. 당연히 아니지! 야, 왜 놀고들 있어?"

해미는 눈으로 물었지만, 코치님은 입으로 대답해 주었다. 참 친절하시지……! 못 알아듣기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레인 별로 서서, 자유형 5바퀴 돌고 끝."

코치님의 가혹한 말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아, 10분 동안 어떻게 5바퀴를 돌아요!"

"그럼 3바퀴 돌아."

코치님이 5바퀴를 3바퀴로 줄여도 아이들의 불만은 여전히 컸다.

"아, 진짜!"

"아까 코치님도 물에 떠 있었으면서!"

"왜 우리한테만 그래요?"

"진짜, 첫날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하면 어떡해요?"

아이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던 코치님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 크큭.

처음에는 좀 참는다 싶었더니, 코치님은 곧 수영장을 구를 기세로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풉, 푸하하하.

영문을 모른 아이들은 코치님만 쳐다보았다.

"왜요?"

"바람에 허파 들었어요…?"

"야아, 코치님이 우리 가르치다가 숨넘어가시겠다……."

갑작스러운 코치님의 웃음에 장난치는 애들도 있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말에 아이들 모두가 입이 귀에 걸리게 생겼다.

"난… 그냥, 풉. 놀리… 려고… 푸흣. 한 건데… 이렇게 진심…. …으로…. 크하하. 반응하면…. … 너무 푸하하. … 웃기잖… 큭, …아!"

"아!"

아이들은 여전히 배를 잡고 있는 코치님을 보더니, 눈을 마주쳤다.

"그럼……."

"… 놀자!"

아이들은 말과 동시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유다!"

"Free!"

"야호."

"코치님 짱."

해미가 중얼거렸다.

"이런 게 행복 아닐까."

그렇다, 해미는 지금 행복했다. (물이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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